참여정부 시기 거대 보수 언론 및 ‘건설족’들은 ‘강남 중·대형 아파트 공급을 확대하자’는 주장을 자주 폈다. 이들의 주장을 거칠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서울 강남벨트(강남·서초·송파구)에 중·대형 아파트 수요가 차고 넘친다. 공급은 너무 모자란다. 한때는 이런 수요-공급의 불균형을 판교 신도시의 중·대형 아파트 공급 증가로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판교의 공급 물량이 당초 계획보다 크게 줄어들면서, 강남·서초·송파구 소재 아파트 가격이 중·대형 위주로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승세가 분당과 용인, 평촌 등으로 확산되고 있기까지 하다. 정부는 이제라도 세금을 통해 주택 가격을 안정시키려는 생각을 접고 강남, 판교 등에 중·대형 평형 아파트를 공급해야 한다.”

ⓒ연합뉴스고형권 기획재정부 제1차관(왼쪽)이 6월19일 주택시장 안정 방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서울 강남 지역의 중·대형 아파트 부족 때문에 ‘강남벨트’ 등에서 국지적 집값 상승이 초래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대안은 물론 규제 완화로 아파트 공급을 크게 늘리는 것밖에 없다. 이른바 ‘공급확대론’이다. 


수도권 주택 가격 상승은 투기적 가수요 때문

공급확대론은 참여정부 때 거대 보수 언론과 건설족 등 ‘주택 건설 규제 완화’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집단이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발명’한 것이다. 당시에도 수도권 집값이 급등했다. 다만 주택보급률을 감안하면, ‘서울 등 수도권 전체의 아파트 총량이 부족하기 때문’은 아니라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건설족들은 어떻게든 주택을 추가로 지을 명분을 얻어야 했다. 건설족들이 집을 지어야 엄청난 광고비를 얻을 수 있는 거대 언론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당시에도 ‘(수도권 전체는 아니지만) 강남의 중·대형 아파트 부족으로 나타난 집값 급등이 강남을 넘어 확산되고 있다’라는 주장이 퍼졌다. 전형적인 곡학아세였다. 참여정부 당시 수도권 주택 가격 상승은, 시중의 풍부한 유동성을 실탄으로 삼아 벌어진 투기적 가수요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후 분명해졌다.

놀랍게도 거대 보수 언론과 건설족은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버젓이 공급부족론을 천명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7월10일자에 문재인 정부의 첫 부동산 정책인 ‘6·19 대책’을 비판하는 기사(‘보름 만에… 부동산 6·19 이전으로’)를 썼다. 정부가 투기꾼 발호를 막기 위해 서울 전 지역에서 택지 아파트의 분양권 매매를 금지하는 6·19 대책을 발표했지만, 아파트 시장이 2주일 정도 잠잠하다가 다시 오르고 있으니 “인위적인 특정 지역 압박보다 차라리 규제를 완화해 공급을 늘리”자는 내용이다. 거대 보수 언론과 건설족의 이런 주장은 몇 가지 통계만 확인해봐도 쉽게 허점이 드러난다.


첫째, 서울시 전체뿐 아니라 이른바 강남벨트에 주택 실수요를 촉발할 만한 두드러진 인구 증가가 눈에 띄지 않는다. 서울시 통계에 따르면, 서울시 인구는 2003년 1017만4086명에서 2016년 993만616명으로 오히려 24만3470명이나 줄었다. 단, 가구 수는 2003년 371만4697가구에서 2016년엔 418만9839가구로 47만5142가구 늘었다. 인구가 줄어든 데 비해 가구 수가 크게 늘어난 것은 1인 세대의 증가 때문으로 풀이된다. 1인 가구 중 절대다수는 주택을 구매할 능력이 없다.

강남벨트의 경우 인구가 늘어나긴 했다. 서울시 통계를 보면 2003년 52만8977명이던 강남구 인구가 2016년 56만7115명으로 3만8138명 증가했다. 같은 기간 서초구와 송파구의 인구도 각각 5만2000여 명, 3만8000여 명 늘어났다. 가구 수로 따져도 각각 강남구는 3만7000여 가구(현재 23만4080가구), 서초구 2만9000여 가구(현재 17만3970가구), 송파구 3만8000여 가구(현재 25만8382가구) 증가했다. 그러나 이런 수치만으로 공급확대론을 주장해서는 안 된다. 서울에서 강남 지역은 고시촌이라 불리는 관악구 신림동과 함께 1인 가구가 압도적으로 많은 지역이기 때문이다. 공급확대론자들은 강남의 실수요를 좀 더 확실한 근거 자료를 통해 입증할 필요가 있다.

ⓒ연합뉴스분양권 전매 제한이 시행되지 않는 부산 지역의 견본주택에는 여전히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위는 6월16일 부산시 수영구 ‘e편한세상 오션테라스’ 견본주택 행사장을 방문한 시민들 모습.

둘째, 주택보급률(일반가구 수 대비 주택 수의 비율) 및 자가소유율(일반가구 수 대비 자가 소유 주택의 비율) 통계를 봐도 유의미한 실마리를 잡을 수 있다. 통계에 따르면, 서울시의 주택보급률은 2005년 93.7%에서 2014년 97.9%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강남구의 주택보급률은 93.7%에서 97.4%로, 서초구는 94.9%에서 100.1%로 각각 늘었다. 송파구만 같은 기간 0.4%포인트 줄었다. 반면 서울의 자가 소유율은 2006년 44.6%, 2008년 44.9%, 2010년 41.2%, 2012년 40.4%, 2014년 40.2% 등으로 오히려 떨어졌다. 서울의 경우, 주택은 늘어났는데 소유자는 줄어든 것이다. 다주택 소유자들이 주택 소유를 더욱 늘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런 경우를 ‘투기’라고 부른다.


셋째, 가계신용 가운데 주택담보대출의 비중과 규모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주택담보대출은 2008년 311조1584억원에서 2016년 545조8396억원으로 폭증했다. 부동산담보대출은, 경제정책이라곤 부동산 경기 활성화뿐이던 이명박 시대에 93조원 정도 증가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 4년 동안엔 무려 141조원 이상 폭증했다. 박근혜 정부 때 ‘빚내서 집 사라’는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초이노믹스’가 빚은 결과였다.

물론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사람이 전부 투기를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일부는 저금리를 이용해 투기에 골몰했던 것으로 보인다. 굳이 주택을 소유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시장 참여자 중 상당수도 전세를 구하지 못해 혹은 집값이 더 오를까 봐 쫓기듯 주택을 구입했을 것이다.

더 정밀한 데이터와 정교한 분석이 나와야겠지만, 몇 가지 통계만 살펴보더라도 근래의 주택 가격 상승은 투기적 가수요와 저금리의 결합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자칫 문재인 정부가 공급확대론에 현혹되어, 보유세 등으로 투기적 가수요를 억제하는 대신 공급확대론으로 부동산 정책 방향을 정하거나 어설픈 절충에 나설까 우려된다.

문재인 정부는 좌고우면하지 말고 ‘부동산 공화국’과 맞서 싸워야 한다. 이를 위한 가장 핵심적인 과제는, 개인과 법인이 소유한 각종 부동산 소유 현황을 최대한 구체적이고 투명하게 파악하고 이에 따라 보유세를 강화하는 것이다.

기자명 이태경 (토지정의시민연대 사무처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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