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까지만 해보자.” 2013년 미니스톱 가맹점주들이 정종열씨(47)를 찾아왔을 때, 정씨는 스스로 이렇게 되뇌었다. 점주들은 수익이 나지 않는 점포를 폐점하고 싶었지만, 가맹본사는 시설위약금을 전부 납입하라고 요구했다. 점주들이 요청한 조정신청도 소용이 없었다. 87일 동안 본사 앞에서 농성을 벌인 미니스톱 가맹점주들은 참여연대의 추천으로 가맹사업법 전문가인 정씨를 찾았다. 가맹점주 단체와의 첫 인연이었다. 뒤이어 크라운베이커리, 세븐일레븐, 더풋샵, 미스터피자 가맹점주들이 줄지어 정씨를 찾았다. 그렇게 5년이 흘렀고, “이것까지만”이라던 정씨의 다짐은 점점 뒤로 미뤄졌다.

점주들은 정종열씨를 ‘정 거래사’라고 부른다. 공인 가맹거래사. 정씨의 직업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공인하는 프랜차이즈 전문가다. 평범한 직장인이던 정씨는 2010년 뒤늦게 가맹거래사 자격을 취득했다. 당시만 해도 각 지자체가 앞다퉈 유망 업종을 지원할 만큼 프랜차이즈업이 긍정 평가를 받던 시절이었다. 정씨 역시 “괜찮은 프랜차이즈 브랜드를 하나 만들어보자”라는 생각에 전직을 결정했다.

ⓒ시사IN 조남진

처음부터 가맹점주의 목소리를 대변하려던 건 아니었다. 노무사처럼 가맹거래사 역시 사용자(가맹본부) 편에서 일하는 게 안정적 수입을 올릴 수 있다. 전국 가맹거래사는 약 500명. 프랜차이즈 본사 법무팀에서 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맹거래사 중 10% 정도만 개인 사무소를 연다. 정씨는 자격 취득 후에 지인의 사무실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 선택이 정씨의 인생을 바꿨다. 5년이 지난 지금, 그가 일하는 ‘길 가맹거래사무소’ 사무실 한쪽에는 가맹사업법 개정안 자료집, 국회 토론 자료집, 기자회견 때 사용한 각종 피켓과 플래카드가 쌓여 있다. 


새 정부 들어 프랜차이즈 ‘갑질’ 문제가 사회적 관심을 얻었지만, 정 거래사와 점주 단체가 처음부터 응원을 받으며 본사와 대립했던 것은 아니다. 정씨는 “농성하는 가맹점주 단체더러 ‘떼쟁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많았다”라고 말했다.

웬만한 일에는 끄떡 않은 정씨지만, 고비는 있었다. 지난 3월, 미스터피자 가맹점주협의회 회장을 맡았던 이 아무개씨의 자살 소식에 무척 고통스러웠다. 전 미스터피자 동인천점 점주였던 이씨는 본사로부터 재계약을 거절당한 뒤 ‘피자연합’이라는 협동조합형 대안 프랜차이즈를 만들어 막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씨의 점포 인근에 미스터피자가 보복성 직영점을 냈고,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이씨는 끝내 극단적인 선택을 해버렸다. 정씨는 그 이야기를 하다 잠시 눈시울이 붉어졌다.

정씨는 제도적인 개선이 뒤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근 공정위가 자체 개선안을 냈지만, 미흡한 부분이 많다. 감독 기능을 지자체에 폭넓게 이관하고(조사권 부여) 가맹점주 단체의 교섭권을 더 보장해주어야 한다.” 새로 프랜차이즈에 뛰어드는 ‘예비 사장님’에게도 조언을 남겼다. 부실 프랜차이즈를 피하는 방법이다.

“본사 설명회를 듣거나 홍보자료를 보면 80%는 마음이 넘어간다. 본사를 찾기 전에 반드시 공정위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각 프랜차이즈 정보공개서를 꼼꼼히 읽어야 한다. 서류에 나온 출점·폐점 추이를 꼭 살펴보라. 그것만 해도 무턱대고 프랜차이즈에 뛰어들어 피해 보는 걸 어느 정도는 막을 수 있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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