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그닥 딸그닥’ 편집국에 슬리퍼 끄는 소리가 요란했다. 열혈 신자처럼 방언 비슷한 소리도 들렸다. 한손에 휴대전화를 들고 이리저리 오가며 통화했다. 정희상 기자가 특종을 잡을 때마다 벌이는 ‘퍼포먼스’다. 그때도 그랬다.

지난해 6월 정 기자한테 두툼한 A4 용지를 받았다. 전 국정원 직원들과 한 날것의 인터뷰 녹취록이었다. 박원순 공작, 어버이연합 커넥션, 국정원 내부 인사 스캔들, 심지어 국정원 간부의 성추행 내용까지 리얼하게 담겨 있었다. 그때부터 추적이 시작되었다. 지난해 6월11일자 ‘국정원 흑역사’(제456호), 8월6일자 ‘전 국정원 직원들의 자백 박원순 공작’(제464호), 8월20일자 ‘박원순 문건이 국정원 문건인 15가지 이유’(제466호), 9월10일자 ‘어버이연합 국정원이 관리했다’(제469호) 등 국정원 관련 기사를 커버스토리로 4차례나 올렸다. 국정원은 기사가 나가자 보도 자료를 내고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그 국정원이 최근 ‘적폐 청산 TF’를 꾸려 박원순 공작, 어버이연합 지원 등 13건에 대한 조사에 들어갔다. 현직 검사가 파견되어 파헤친다고 한다. 지난해 기사에 담지 못한 게 있다. 국정원과 박근혜 정부 청와대의 ‘국·청 합작’ 공작이다. 이명박 정부 국정원뿐 아니라 박근혜 정부 국정원도 국내 정치에 광범위하게 개입한 의혹을 샀다. 심증은 차고 넘쳤다. 하지만 사실 확인이 쉽지 않았다. 


이번 청와대 캐비닛에 담긴 문건 방출로, 어느 정도 국·청 합작 공작이 확인되고 있다. 문건에 나오는 내용을 보면, 박정희 시대 중앙정보부를 청와대로 옮겨놓았다는 착각이 든다. 보수 단체를 지원하고, 서울시 청년수당 정책을 탄압하고, SNS나 포털도 통제 대상으로 삼았다. 박근혜·김기춘 피고인 등은 범법이라는 의식이 전혀 없었던 것 같다. 그랬기에 자신들의 범죄를 날것 그대로 회의록에 남겼다. 법은 법전에만 머물렀다. 자신들의 말이 곧 법이라고 여긴 게 아닐까.

기록은 어떤 말보다 힘이 세다. 〈시사IN〉이 박근혜·최순실 법정 중계를 이어가는 이유이다. 법정에서 박근혜·최순실 피고인은 혐의를 일절 부인하고 있다. 이번에 단독 입수한 안종범·박헌영 업무수첩을 분석해보면 박근혜·최순실 피고인의 주장이 거짓임을 알 수 있다. 박근혜는 최순실을 자신을 도와주는 집사로 여겼지만, 안종범·박헌영 업무수첩에 따르면 박근혜야말로 ‘최순실의 집사’였다.

지난해 국정원 커버스토리를 올릴 때, 독자들에게 약속했다. 반드시 끝을 보겠다고. 이제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진실이 드러나면 국정원은 사실이 아니라는 보도 자료에 대해 반드시 사과하길 바란다. 사과를 받고 싶어서 이렇게 기록으로 남긴다.

기자명 고제규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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