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행정부에서 국제파의 산실을 꼽으라면 단연 국가경제위원회(NEC)다. 국내외 경제정책 관련 사안에서 대통령을 보좌하는 백악관 직속 기구로 1993년 클린턴 행정부 시절 창설됐다. 현재 NEC에는 연구는 물론 정책실무 경험을 가진 쟁쟁한 국제파 인물 30여 명이 웅거하고 있다. NEC 공식 회의에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 등 최고위 관료 9명이 참석하지만, 실질적인 책임자는 개리 콘 위원장(장관급)이다. 콘 위원장은 세계적 투자기관 골드만삭스 사장 출신으로 그동안 트럼프의 국수주의적 대외경제 정책을 되돌리기 위해 안간힘을 써왔다.

ⓒEPA4월26일 세제개편안을 발표 중인 개리 콘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왼쪽).

클린턴 행정부 이후 전임 오바마 행정부 시절까지도 한가하기 짝이 없는 자문기관에 불과하던 NEC는 콘의 취임 이후 트럼프의 경제정책 기조를 바꿀 정도의 권부로 탈바꿈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독일 G20 회의 직전에 유럽산 철강제품 수입에 관세 인상 조치를 취하려다 보류한 것도 NEC의 맹활약 덕분이다. 유럽산 수입 철강제품에 최고 25% 관세를 줄기차게 요구하던 피터 나바로 국가무역위원장 등 국수파 진영은 일대 타격을 입었다.


콘의 최대 성과라면 단연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에 대한 트럼프의 태도 변화이다. 트럼프는 선거 유세 당시 나프타를 미국에 불리한 무역협정이라며 폐기를 공약한 바 있다. 지난 4월에는 나바로와 배넌의 강력한 요구에 힘입어 나프타 폐기 절차에 돌입할 뻔하기도 했다. 하지만 콘을 중심으로 NEC 국제파가 ‘나프타를 폐기할 경우 트럼프 지지 유권자가 많은 주들의 지역경제까지 피폐해질 수 있다’라며 트럼프를 집요하게 설득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폐기가 아니라 재협상 쪽으로 급선회했다.

그러나 ‘미국의 기후변화협약 탈퇴’ 의제에서는 국제파가 밀렸다. 콘 등 국제파는 트럼프의 공약인 ‘협약 탈퇴’를 막기 위해 이산화탄소 감축 비율을 축소하는 등의 타협안을 내놓았지만 대통령의 마음을 돌리지는 못했다. 국제파의 끈질긴 설득에 한때 흔들렸던 트럼프가 “기후협약은 미국에 나쁜 것”이라는 스콧 프루이트 환경보호청(EPA) 청장의 오랜 소신에 결국 넘어갔기 때문이다.

기자명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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