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공간에 소파와 탁자만 있었다. 탁자 위에는 화장지가 놓여 있었다. 맞은편에 심리상담사가 앉았다. 그날 처음 만났다. 그의 안내에 따라 그때, 사회 초년생 때, 대학생 때, 중·고등학생 때, 어렸을 때 나를 되돌아보았다. 2007년 〈시사저널〉 파업 당시를 돌아볼 때였다. 맞은편의 상담사가 한마디를 툭 던졌다. “무엇이 그렇게 힘들었을까요?” 그 한마디가 뭐라고 그만 무너지고 말았다. 탁자 위에 화장지가 놓인 이유를 알았다. 눈물이 터졌다. 수년이 지났지만 파업 때 들어왔던 ‘칼’이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박혀 있음을 그때 알았다.  

최근 한 동영상을 보고 그날 속절없이 흘렸던 눈물이 다시 떠올랐다. ‘〈시사IN〉 인터뷰 쇼 시즌 2’에 나왔던 김민식 MBC PD는 7월13일 인사위원회에 출석했다. 인터뷰 쇼에서 한 ‘공약’대로 김 PD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으로 라이브 방송을 했다. 회사의 제지로 인사위 현장 생방송은 불발됐다. A4 55쪽짜리 소명 자료를 준비한 그는 인사위에서 ‘필리버스터’를 감행했다. 인사위 경과를 보고하는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 때, 씩씩하던 김 PD의 목이 멨다. 이 대목에서다. “지난 5년간 저기 임원실, 사장실에 앉아 있는 그 사람들에게 하고 싶었던 그 얘기를 여러분을 대신해서 하고 싶었습니다.” 


인터뷰 쇼 현장에서 김 PD는 ‘김장겸은 물러나라’ 댄스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그는 웃고 있었지만 나는 김 PD의 가슴 한쪽에 꽂혀 있을 칼을 보았다.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선배로서, 한때 파업 집행부로서 늘 웃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 웃음 뒤에 가려진 생채기가 적지 않을 것이다.   

MBC 구성원들은 지난 5년간 ‘저강도 파업’을 벌이고 있다. 최승호·박성제 등 해직 언론인들은 ‘공영방송의 공정성이 중요한 노동조건’이라는 법원의 판례를 들고 복직하고 싶다고 했다. 사장의 기사 삭제로 촉발된 〈시사저널〉 파업 때도 그랬다. “편집권에 관한 편집국장의 권한을 존중하며, 기사에 대한 의견 제시는 편집국장을 통한다는 원칙에 위반되고, 편집국의 질서와 문화를 존중한다는 측면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이 한 구절이 박힌 판결문을 받기 위해 힘든 싸움을 벌였다. 공정방송이 뭐라고, 편집권이 뭐라고…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언론인들에겐 밥그릇보다 소중한 그 무엇이다.

10년 전 파업을 부른 건 삼성과 관련한 기사 삭제 사건이다. 이번 커버스토리에 삼성그룹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줄 기사를 담았다. 문정우 기자는 ‘활자의 영토’에 ‘삼성 반도체 직업병’ 문제도 함께 다뤘다. 올해 〈시사IN〉은 창간 10주년이다. 창간 10주년을 맞아 작은 바람이 있다. 더 이상 공영방송을 위해, 편집권 수호를 위해 밥그릇을 빼앗기거나 거리를 해매는 언론인들이 없기를 나는 소망한다. 김민식 PD를 응원한다.

기자명 고제규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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