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살 때 처음 만난 줄리(매들린 캐럴)는 좀 부담스러운 아이였다. 싫다는데도 자꾸 따라다녔다. 얼레리꼴레리, 아이들이 놀려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렇게 6년이 흘렀다. 어떻게든 줄리를 떼어내려 애쓴 6년이었다.

열세 살이 되어서도 줄리는 계속 성가시게 굴었다. 여전히 싫다고 하는데도 열심히 따라다녔다. 브라이스(캘런 매콜리프)가 마냥 좋은 모양이었다. 6년째 짝사랑만 하면서도 낙담하는 기색이 없었다.

웬만하면 사귀어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줄리는 웬만한 아이가 아니었다. 학교에서도 ‘좀 이상한 아이’로 소문이 났다. 그중 가장 이상한 건 늘 나무 위에 올라가 있는 버릇이었다. 버스 정류장 옆 커다란 플라타너스 나무에 기어올라 하루의 대부분을 보냈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나무에 걸터앉은 줄리. 갑자기 전기톱을 들고 나타난 어른들. 땅주인이 베어내라 했단다. 줄리는 금세 울상이 되었고 마침 나무 밑을 지나는 브라이스에게 소리쳤다. “제발 올라와줘. 더 많은 사람이 올라오면 이 나무를 지킬 수 있을 거야.” 애원하는 줄리와 잠시 눈이 마주쳤지만 이내 고개를 돌렸다. 얼른 버스를 탔다. 나무 위에 줄리를 남겨둔 채로.

브라이스는 몰랐다. 나무 위에서 보내는 시간이 줄리에게 왜 그렇게 중요했는지,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알았다면 그리하지 않았을 텐데. 그렇게 쉽게 외면하지 않았을 텐데. 그때 나무에 같이 올랐다면, 그래서 어른들이 나무를 베어내지 못했다면, 브라이스가 지금처럼 되지는 않았을 텐데. 그날 이후 이상하게 자꾸 줄리에게 마음이 가고 계속 신경이 쓰이진 않았을 텐데. 


여간 잔망스럽지 않은 소년 소녀의 풋풋한 연애담을 그린 영화 〈플립〉은 2010년에 제작됐지만 한국 극장에 걸리지 못했다. 그러나 알음알음으로 찾아서 본 관객들의 호평 덕분에 네이버 영화 평점이 무려 9.45에 이르렀고, 제작 7년 만에 드디어 지각 개봉이 성사되었다. 극장의 큰 스크린으로 다시 본 〈플립〉은 예상보다 훨씬 더, 더, 더, 더, 더 좋았다. 특히 줄리가 나무 위에서 본 풍경이 더, 더, 더, 더, 더 의미심장해 보이는 게 제일 좋았다.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

“소는 그냥 소이고, 초원은 그냥 풀과 꽃이고, 나무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은 그냥 한 줌의 빛일 뿐이지만 그 모든 게 함께 어우러지면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지거든.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큰 거야.” 어느 날 아빠가 들려준 알쏭달쏭한 이야기. 우연히 나무 위에 올랐다가 뒤늦게 그 뜻을 알아챈 줄리. 땅에서 본 것과 다른, 오직 나무 위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을 보다가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는 아빠 말씀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옮겨 온 것이다.

그래서 줄리는 나무에 올랐다. 줄리가 본 것을 브라이스는 보지 못했다. 줄리는 삶의 수많은 비밀 가운데 하나를 맛보았고 브라이스는 맛보지 못했다. 그 차이가 이야기를 더욱 흥미롭게 만든다. 잘려나간 플라타너스 나무 밑동에서 예쁘고 튼튼한 성장영화가 무럭무럭 자라난다.

오직 이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삶의 어떤 풍경. ‘부분의 합보다 큰 전체’로 완성해낸 마법의 연출. 영화 곳곳에 뿌려놓은 사려 깊고 슬기로운 인생 조언들이 마침내 머리에서 가슴으로 옮아오는 감동의 라스트 신. 말하자면 〈플립〉은, 줄리의 플라타너스 나무 같은 영화다. 아이들이 주인공이지만 실은 어른들이 꼭 보아야 할 영화다.

기자명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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