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부터 매일 이사 가는 소리가 들린다.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는 최근 관리처분계획 인가를 받았다. 7월 말부터 본격적인 이주를 시작해 내년 1월이면 모든 가구가 이곳을 떠난다. 1980년 1월 입주를 시작한 이 아파트 단지에는 모두 5930가구가 살았다. 대로변에는 5층짜리 낮은 아파트를, 중심부에는 10층짜리 고층 아파트를 배치해 어느 곳에서나 햇볕이 고루 들고 바람이 잘 통했다. 그리고 이제는 ‘국내 최대 재건축 단지’가 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2022년 초고층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다.
어디나 마찬가지이지만 둔촌주공아파트도 사람만 사는 곳은 아니었다. 지난 6월22일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는 작은 모임 하나가 열렸다. 아파트 주변을 오고 가는 길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챙겨주던 캣맘· 캣대디들과 강동구청 동물복지팀, 서울시 동물보호과, 〈안녕, 둔촌주공아파트〉의 저자 이인규 작가,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의 정재은 감독이 머리를 맞댔다. 이들은 ‘길고양이 생태적 이주를 위한 사전 연구 모임’을 꾸리고 주기적으로 모여 대책을 논의하기로 했다. 우선 단지별로 돌보는 길고양이 현황을 조사해 지도를 만들어 공유할 예정이다. 길고양이들에게도 안전한 이주지 및 입양처를 찾아주기 위해서다. 이 과정은 영화와 출판물로 기록된다.
그런가 하면 서울대공원은 최근 길고양이 51마리를 동물원의 ‘정식’ 식구로 받아들였다. 사육사가 개별적으로 돌보거나 관람객이 주는 먹이를 먹으며 지내던 동물원 내 길고양이들이 전부 포획·격리된 건 지난해 12월이었다. ‘최악의 AI’가 발생해 고양이도 AI에 감염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돌던 때였다. 서울대공원 종보전연구실은 포획된 길고양이 모두를 대상으로 건강검진 및 백신 접종, 중성화 수술을 진행했고 AI 발생 상황이 종결됨에 따라 7월4일 원래 있던 곳으로 방사했다. 동물원 내에 설치한 고양이 급식소 10곳은 사육사들이 직접 챙긴다. 센서 카메라를 설치해 고양이들이 먹이를 잘 먹고 있는지도 확인한다. 수컷에게는 갈색 목걸이를, 암컷에게는 적색 목걸이를 걸어주어 동물원이 관리하는 고양이임을 겉으로도 알 수 있게 했다.
동물원에서 가장 자유로운 동물은 고양이다. 날이 더운 탓인지 낮이면 통 보이지 않다가도 선선한 이른 아침과 밤에는 활동을 재개한다. 각각 관리번호가 새겨진 목걸이를 달고 있는 고양이들은 사육사 앞에서 발라당 드러눕거나 골골대다가 여유롭게 사료를 찾아 먹고 그늘을 향해 유유히 사라지곤 했다. 서울대공원은 신규 개체 관리 역시 지속적으로 해나갈 예정이다. 7월6일 아침에는 목걸이 없는 고양이 한 마리가 급식소를 찾았다. “저 녀석 요새 자주 오네. 너도 우리 식구 되고 싶니?” 사육사가 고양이에게 말을 걸었다.
고양이 처지에서 도시를 바라보면…
재개발이나 젠트리피케이션의 가장 직접적인 피해자는 그 지역에 살던 사람이지만, 함께 뿌리내리고 살고 있던 동물이거나 식물이 될 수도 있다. 본격 고양이 문예지 〈젤리와 만년필〉 창간호를 준비 중인 문학 중심 창작집단이자 출판사 ‘유음’의 편집인들의 문제의식도 거기에서 출발했다.
유음의 지하나·최창근·정현석· 김보민씨는 지난해 10월 서울 신촌 공씨책방에서 처음 만났다. 공씨책방은 45년 역사를 자랑하는 헌책방이다. 2014년 서울시가 지정한 ‘서울미래유산’ 중 한 곳이기도 하다. 그런 공씨책방도 젠트리피케이션을 피하지는 못했다. 건물주의 임차료 인상 요구와 명도소송으로 쫓겨날 위기에 처한 이곳에 연대하는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책방을 지키기 위한 반상회가 조직됐다. 네 사람 역시 매주 일요일 오후 4시 열리는 반상회에 참여했다가 만나게 됐다. 유난히 죽이 잘 맞던 네 명의 ‘문학청년’은 공씨책방이 내던 계간지 〈옛책사랑〉 복간호를 내는 것을 계기로 출판사를 차리기에 이르렀고, 지난 3월부터 본격적으로 문예지 〈젤리와 만년필〉 창간을 준비했다.
“이사는 당연히 2년에 한 번 하는 거라고, 월세는 당연히 비싼 거라고, 나만 그런 게 아니고 다들 힘들게 산다고 자조하지만 사실 그거 문제잖아요. 집만 그런가요. 가게도 마찬가지예요. 연남동이니 익선동이니 동네가 조금 뜬다고 하면 무지막지한 자본이 들어와서 헤집어요. 이걸 어떻게 이야기해보면 좋을까 고민하다 보니 고양이가 생각났어요. 고양이는 영역 동물이잖아요. 어떻게 보면 고양이도 젠트리피케이션의 피해자더라고요. 근데 이 친구들은 힘들다고 발언할 수도 없고, 연대를 청할 수도 없으니까(웃음). 우리가 대신 얘기해줄 수 있지 않을까….”
편집인 최창근씨는 지금은 문 닫은 서울 연남동 독립출판 전문 서점 피노키오의 주인을 떠올렸다. 길고양이를 살뜰히 챙겨주던 분이었다. 연남동에 사람들이 많이 오기 시작하면서 밥 먹으러 오는 고양이는 되레 줄었다고 했다. “한 집 걸러 한 집 공사를 하고, 밤에도 시끄럽고 하니까 고양이가 다른 곳을 찾아 떠난다고 하더라고요. 고양이 처지에서 도시를 바라보면 좀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길고양이가 당하는 일이나 이 땅에서 약자와 소수자가 당하는 일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없는 존재’로 취급당하고 밀려나기 일쑤다. 그래서 〈젤리와 만년필〉 창간호의 주제는 ‘우리는 귀엽고 강하다’이다. 고양이도 청년도 누군가에게 귀여움을 당하는 존재만은 아니라는 것을, 실은 강하다는 것을 문학을 통해 드러내는 원고들을 실었다. 이를테면 문예지를 여는 권두언은 ‘고양이 대담’이다. 편집인 네 명이 고양이를 페르소나 삼아 쓴 엽편소설(콩트)을 바탕으로 합평한 내용이다. 소설은 학대와 내몰림과 혐오와 유기를 당하는 고양이가 주인공이다.
없는 살림이지만 원고료만은 대형 출판사가 내는 계간지 수준으로 맞췄다. 〈젤리와 만년필〉 창간호를 준비하며 지급한 원고료만 해도 500만원이 넘는다. “문단이 이렇게 된 게 문인의 노동에 정당한 대가나 원고료 대신 ‘명예’를 지급했기 때문이 아닐까. 원고료 혁신이 문예지 혁신이라는 데 편집인들이 뜻을 모았어요.”
창간호는 ‘부모 찬스’를 통해 원고료를 충당했지만, 당장 2호가 걱정이다. 유음은 고양이에게 포용적인 도시는 인간에게도 포용적인 도시라고 말한다. 이들의 뜻에 공감하는 독자들은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텀블벅을 통해 후원할 수 있다. 후원금은 10월에 발행될 〈젤리와 만년필〉 2호 원고료로 쓰이고, 수익의 10%는 고양시캣맘협의회와 우리동물병원생명협동조합에서 진행하는 TNR(길고양이 중성화 수술 사업) 매니지먼트 사업에 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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