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진 감독의 신작 〈신기전〉을 봤다. 그는 이미 〈약속〉 〈와일드 카드〉 등의 작품에서 메가폰을 잡았다. 얼추 4년에 한 번씩 영화를 만든다 하여 ‘올림픽 감독’이라 불리기도 하는 김유진은, 개인적으로는 호감 충만한 연출가인지라 이번 작품도 기대 만발로 극장을 찾았다. 과연 〈신기전〉은 대단했다. 세종대왕 집권 시기인 1448년, 세계 최초로 개발한 다연발 로켓화포 ‘신기전’을 소재로 한 이 영화는 박진감 있는 이야기 구조나 하이라이트 시퀀스에서의 신기전 발사 장면, 그리고 명나라와 조선 사이에 벌어진 통쾌한 반전 등으로 눈을 만족시키고도 남았다.

그런데 이 영화는 제작 단계에서 참 ‘말이 많았던’ 작품이다. 그 중 대표적인 건, 대대로 한국에서 세종대왕 시기의 이야기는 연극이든 영화든 텔레비전 드라마든 뭘로 만들어도 흥행이 안 된다는 시선이었다. 그다지 갈등도 전쟁도 존재하지 않았던 평화 절정기였다는 선입견 때문일까, 세종 시기는 그리 구미를 당기지는 않는 시절로 인식되어왔던 것 같다. 어찌 됐건 이런 편견(?)은 〈신기전〉 기자 시사회 때 홀라당 깨져나갔으니, 세종이 명과의 화친에서 심각한 위기에 처했었다는 사실은 뜻밖의 놀라움을 주었다. 무엇보다 김유진의 백전노장형 연출 솜씨는 의외의 재미를 만들어냈으니 이 정도면 극장가에 또 한번 돌풍이 일어나리라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다 나처럼 홀딱 반해버렸던 건 아닌 듯하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한 여성 관객이 같이 온 남자에게 투덜거렸다. “뭐야, 이거 순전히 멜로 영화잖아, 걔네 둘은 왜 그렇게 갑자기 좋아 죽어?” 그 뒤에서 한 무리의 사람이 입을 열었다. “야, 이거 뭐 웃겼다 심각했다, 갑자기 또 무슨 로켓 같은 게 날아다녔다 그러냐? 좀 이상해.”

비슷한 시기에 두 편을 더 봤다. 세계적 흥행작 〈맘마미아〉와 한국 영화 〈고고 70〉이다. 〈맘마미아〉는 전설적 팝 그룹 아바의 대표곡 20여 곡을 스크린으로 불러온 뮤지컬 영화이고, 1970년대 대한민국의 대표적 솔 밴드 ‘데블스’를 소재로 한 최호 감독의 〈고고 70〉은 처음부터 끝까지 신나는 음악으로 ‘제껴버리는’ 영화다. 두 영화 모두, 나를 포함해 관객의 반응이 열광적이었음은 물론이다.

ⓒ난나그림
어느 하나도 다른 여럿보다 위에 있지 않은 영화 〈신기전〉

〈신기전〉에 대한 엇갈린 반응과 〈맘마미아〉 〈고고 70〉에 대한 열렬한 호응. 무슨 차이일까. 답은 분명하다. 〈신기전〉에는 여러 개의 씨줄이 엮여 있고, 두 영화에는 ‘음악’이라는 큰 씨줄이 존재한다. 사람들에게 영화란 일종의 ‘대마 플레이’로 인식되는 것 같다. 소재가 무엇이고 주제가 무엇이든, 영화 전체를 끌어가는 ‘대마’ 하나가 존재해야 재미도 감동도 배가된다. 하지만 또 어떤 영화는 대마가 없이도 그 자체의 ‘평등 플레이’로 제 모습을 만들어간다. 〈신기전〉이 그렇다. 국가가 있고, 무기가 있고, 사랑도 있고, 코미디도 있다. 이들은 모두 동등하지 어느 하나에 권좌를 내어주지 않는다. 그런데 바로 그것, 어느 하나도 다른 여럿보다 위에 있지 않다는 점이 바로 〈신기전〉만의 색깔이다. 국가의 자존과 남녀의 사랑, 둘 중 무엇도 우선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요즘 세상도 자꾸만 ‘대마 플레이’를 하려다 뒤통수를 맞는 것 같다. 미국 금융시장 위기에도 한국 경제는 끄떡없다, 안심해라 하면서, ‘대마’를 내세우며 굳이 있는 정보 감추고 분석 자료 숨길 것 없다. 급조된 대마라면 다른 건 보이지도 않게 만들 거다. 그냥 모든 것에 제 가치가 있으니 그 모든 걸 그냥 제자리에만 있게 해주면 좋겠다.

기자명 이지훈 (FILM2.0 편집위원, 영화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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