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하나 해놓으면 상할 때까지 방치하다 버리기 일쑤이던 자취 시절, 나의 주식은 라면이었다. 만날 같은 음식만 먹을 순 없으니 한 번은 매운 국물 라면, 한 번은 안 매운 짜장 라면으로 바꿔가며 먹었다. 주인집 아저씨가 농심 간부였는데도 삼양 라면만 사 먹던 부모님의 셋방살이부터 시작해, 단언컨대 라면으로 내 인생을 엮을 수 있다.

하야미즈 겐로 지음
김현욱·박현아 옮김
도서출판 따비 펴냄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았다. 하야미즈 겐로라는 저널리스트는 라면(라멘)으로 일본의 현대를 엮었다. 제각각의 지역에서 제각각의 이름으로 불리던 중국
면 요리가 어떻게 라멘이라는 이름으로 묶였는지, 인스턴트 라면은 왜 1958년에 발명되었는지, 왜 라멘집이 국도변을 따라 들어섰는지 등이 미디어의 발달과 표준어 사용, 미국의 밀가루 원조와 혼분식 장려 운동, 자동차 보급과 국토 개발 등에 엮이어 이어진다.

물론 일본에도 라면으로 인생을 엮은 사람들이 많아서, 심야 라디오를 들으며 입시 준비를 하던 이들이 야식으로 라면을 먹은 이야기나, 출세와 꿈을 좇아 도쿄로 온 젊은이들이 라멘집에서 한 끼를 때우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야식으로 끓인 라면을 누가 더 많이 먹느냐로 남동생과 다투던 옛 생각이 나서 애틋한 식욕이 생긴다.

그런데 일본 라멘 이야기에서 한국이 보인다. 일본에서 라면을 발명할 때 같은 원조 밀가루로 우리는 수제비나 칼국수를 끓여 먹었고, 일본의 명예퇴직자들이 프랜차이즈 라멘집을 열 때 한국 명예퇴직자들은 치킨집을 차렸다. 이리 비슷하니, 같은 점보다 다른 점이 눈에 띈다. 저들은 지역 라멘이 날조된 역사라는 걸 알지만, 우리는 아직 비빔밥이 궁중음식인 줄 안다. 한국에서는 식당이든 치킨집이든 프랜차이즈만 살아남지만 일본에서 라멘집의 80%는 개인이 운영한다.

라면 1인당 소비량 세계 1위답게, 우리는 라면 사도신경을 외우고 라면 이단 논쟁을 벌인다. 나만의 사도신경을 쓰고 싶은 분, 라면 논쟁에 이론적 배경이 필요한 분, 그저 좀 색다른 라면이 고픈 분께 이 책을 추천한다. 일단, 재밌다.

기자명 신수진 (도서출판 따비 편집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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