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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닭구이가 아프리칸 치킨이 된 사연

환타 (여행작가) webmaster@sisain.co.kr 2017년 06월 28일 수요일 제5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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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나라 대다수는 안타깝게도 16세기부터 20세기까지 식민지 경험을 가지고 있다. 빛나는 독립투쟁으로 독립을 쟁취한 곳도 있고, 국제 정세 덕에 어느 순간 독립된 나라도 있다. 그들 모두가 공유하는 경험은 지배했던 자들에 대한 증오다.

독립 후 제국주의 국가와 관계가 좋은 나라는 거의 없다. 수탈의 책임을 지우고, 학살의 상처를 끄집어내며, 한스러움이 증폭되는 건 식민지 국민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아픔의 한 구석이다. 그런데 그 아픔 이면에 자의든 타의든 지배했던 이들의 문화가 이식되는 과정이 수반된다. 이런 융합의 지점에는 언제나 요리가 맨 앞에 서 있다.

일본 문화가 개방되기 전, 우리는 매년 가정의 달 5월이 되면 연례행사처럼 일본 문화 콘텐츠들을 한데 모아놓고 불을 질렀다. 화형식이 끝난 후 짜장면에 ‘단무지’를 곁들여 먹으면서도 일본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지는 않았다. 국가보안법이 서슬 퍼렇던 시절 위쪽 사람들에게 우호적인 발언이라도 할라치면 냉큼 잡아 가두던 경찰도 빨갱이를 두들겨 팬 후엔 시원한 ‘평양’ 냉면을 먹으며 열을 식혔다. 그렇게 식성의 이적성은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물론 아들 조지 부시 시절, 프랑스와 티격태격하다가 프렌치프라이를 ‘프리덤 프라이’로 바꿔 부르는 촌극을 연출한 적도 있었지만, 최소한 음식이 정치적 이유로 금기시된 적은 없다.

ⓒGoogle 갈무리
한국에서도 아프리칸 치킨을 맛볼 수 있다.

새로운 요리 혹은 맛이란 늘 문명의 충돌 지점에서 탄생한다. 고려 시절 몽골과의 조우가 없었다면 한국의 식문화 중 보기 드문 유제품 요리인 타락죽은 존재하지 않았을 테다. 조금 더 나가볼까? 일본 요리에서 단맛이 두드러진 건 사쓰마 번이 오키나와를 대리통치하기 시작한 이후부터라고 한다. 당시 오키나와는 동아시아에서 드물게 사탕수수가 나는 곳이었고, 사쓰마 번은 오키나와를 대규모 사탕수수 농장으로 만들었다. 일본이 오키나와를 지배하지 않았다면, 일본 요리는 간장의 짠맛에 갇혔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 마카오도 빼놓을 수 없다. 알다시피 마카오를 지배했던 포르투갈은 대항해 시대 초기의 반짝 주연이었고, 그 덕에 전 세계에 해안 식민지를 보유할 수 있었다. 수에즈 운하가 없던 시절, 리스본을 출발한 마카오 연락선은 대략 1년에서 1년6개월이나 항해를 해야 했다. 짭짤한 염장 대구인 바칼라우를 즐겨먹던 포르투갈인의 입맛은 연락선을 따라 그들의 식민지를 거치면서 변해갔다.

포르투갈 식민지의 식문화가 두루 반영된 요리


먼저 희망봉을 돌아 아프리카 동쪽 해안 모잠비크에 도착한 마카오 연락선이 피리피리 고추를 만나면서 포르투갈 요리에 매운맛이 스며들었다. 배는 항해를 시작한 지 8개월쯤 되어서야 인도의 고아에 도착하게 되는데, 여기서 포르투갈 요리는 향신료와 조우한다. 영향은 일방적일 수 없다. 포르투갈에서 가져간 와인은 이때쯤 다 상해서 식초가 되어버린다. 고아의 인도인들은 이 식초를 자신들의 커리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맵고 톡 쏘는 신맛이 일품인 고아 지역 전통 커리 빈달루에는 와인 식초인 빈하(Vinha)가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연락선의 종착지는 마카오, 즉 중국 요리의 꽃이란 꽃은 모두 피어 있는 광둥 지역이다. 요즘 한국에서도 맛볼 수 있는 아프리칸 치킨은 포르투갈식 닭구이인 ‘프랑고 그렐랴두’가 모잠비크의 피리피리 고추와 땅콩소스, 인도의 코코넛밀크와 향신료, 그리고 중국의 화력 좋은 석탄이 만나서야 완성된 요리다. 즉 포르투갈의 모든 식민지들이 모여 만든 하나의 걸작인 셈이다. 아프리칸 치킨에 대항해 시대의 황홀함을 함께 선사하는 가장 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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