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과거의 일이라면 아름답게 기억하려는 경향이 있다. 무엇이든 오랜 시간이 지나면 추억이 된다. 심지어 전쟁조차.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지 어느새 100년이 지났다. 이 전쟁을 실제로 겪은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다. 뒤에 남은 우리는 전쟁을 다양하게 소비한다. 사라예보의 총성과 전쟁의 원인에 관해, 최초의 탱크와 전투기, 최초의 화학전 등 당시 무기가 얼마나 발전했는지, 당시 군인들의 제복은 어떠했는지 따지고 분석하고 떠들어댄다. 그런데 늘 하나가 빠져 있다. 바로 전쟁을 온몸으로 겪어야 했던 당사자이다.

프랑스의 국민 만화가로 평가받는 자크 타르디는 〈그것은 참호전이었다 1914-1918〉를 통해 전쟁을 바라보는 낭만적 시선에 일침을 가한다. 작품은 프랑스군을 중심으로 전쟁에 참여한 군인들의 이야기를 뚜렷한 주인공 없이 에피소드식으로 풀어놓는다. 여기에 국가나 이념 따위 거대 담론은 없다. 오직 참호에서 총알받이가 되어야 했던 개인의 고통에 집중한다. 참호 속 어디에도 미디어가 조작해낸 감동적인 영웅은 없었다.

〈그것은 참호전이었다 1914-1918〉
자크 타르디 지음, 권지현 옮김, 서해문집 펴냄

부자들이 후방 전선에서 놀고먹는 동안, 노예나 다름없는 병사들은 참호 속에서 오직 1시간만 더 살아남기를 바라며 견뎠다. 참호 속은 참혹하다. 쏟아지는 포탄을 피해야 하고, 저격수를 조심해야 한다. 쥐와 이가 들끓고, 제대로 묻어주지 못해 썩어가는 시체가 곳곳에 널려 있다. 악취란 이루 말할 수도 없다.


프랑스 병사든 독일 병사든, 그들의 바람은 오직 하나, 지금 집으로 돌아가 가족과 연인의 얼굴을 보는 것뿐이다. 가슴 끓는 조국애 따위는 없다. 설령 적군이라 해도 아무도 죽이고 싶지 않다는 게 그들의 진심이다.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도 모른다. 병사들은 그저 총동원령에 이끌려 참호 속으로 밀려들어가 한 번뿐인 젊음과 하나뿐인 생명을 빼앗긴 사람들이다.

참호에서 버려진 젊은이들

 

난장판이 된 참호에서 반듯하게 앉아 있는 한 병사의 옆얼굴이 보인다.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도 대답이 없다. 가까이 다가가니 병사의 반대편 얼굴이 없다. 여자와 아이들을 죽인 것 같다는 괴로움에 스스로 독일군 진지로 걸어가 자살하는 병사가 있는가 하면, 대낮에 그 병사의 시체를 가져오라고 명령하는 하사가 있다. 명령을 받은 다른 병사는 그날 오후 휴가를 나갈 수 있었지만 죽었다. 그가 유대인이었기 때문이다. 남의 전쟁에 끌려온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인도·세네갈 출신 병사도 부지기수다. 전 세계 젊은이들이 참호에서 버려졌다.

 


〈그것은 참호전이었다 1914-1918〉은 프랑스군의 관점이지만 국가와 민족은 중요하지 않다. 어느 군이든 참호는 지옥이라는 점에서 평등하다. 타르디는 얼굴은 비교적 간결하게 특징만 그리면서도, 동작과 복장의 중요한 디테일은 살렸다. 포화로 파괴된 건물처럼 복잡한 배경과 전차 같은 사물 묘사도 뛰어나다. 어두침침한 흑백 스타일은 참호 속의 비참함을 담담히 전해준다. 작품 뒤에는 타르디의 스케치와 컬러 표지, 포스터, 일러스트 등이 포함되어 책의 소장 가치를 더욱 높였다.

 

기자명 박성표 (〈월간 그래픽노블〉 온라인콘텐츠 팀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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