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8일 코미 청문회에서는 ‘결정적 한 방’이 나오지 않았다.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분명히 “마이클 플린 국가안보보좌관은 훌륭한 사람이니까 그만 괴롭히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트럼프가 “수사를 중단하라”고 명시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직접적 사법방해’의 증거로는 부족하다는 의미다. 다음 날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로 “내 결백이 완전히 증명됐다”라며 의기양양해했다. 그의 변호사는 “코미가 일방적이고 은밀하게 대통령과의 독대 내용을 언론에 불법 유출했다”라며 법적 조치를 시사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코미 전 FBI 국장 청문회가 끝나자마자 특검을 맹렬히 공격하기 시작했다. 트럼프는 코미의 청문회 증언을 거짓으로 규정하는 한편 그가 사전 허락 없이 비공개 대화 내용을 유출했다고 공격했다. 특히 코미 국장 증언 이후 트럼프 진영(공화당 의원들과 우익 언론)이 일제히 러시아 게이트를 수사 중인 로버트 뮬러 특검의 공정성에 시비를 걸면서 강제 하차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AP Photo6월8일(현지 시각)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가운데)이 미국 상원 정보위원회의 청문회에 출석해 트럼프 대통령과의 독대 내용을 증언했다.

뮬러 특검도 전선을 확대하고 있다. 러시아 게이트뿐 아니라 트럼프의 ‘사법방해(코미 국장에게 수사 중단을 압박)’ 혐의까지 내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포스트〉(6월14일)에 따르면, 뮬러 특검팀은 대통령의 사법방해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대니얼 코츠 국가정보국(DNI) 국장, 마이크 로저스 국가안보국(NSA) 국장 등을 조사하기로 했다. 코츠 국장의 경우, 트럼프로부터 ‘코미에게 마이클 플린(전 국가안보보좌관) 수사를 중단하라고 말해줘’라는 청탁을 받았다는 주장이 나온다. 또한 트럼프는 코츠와 로저스 국장에게 각각 전화를 걸어 ‘트럼프 선거 캠프와 러시아가 협력했다는 어떤 증거도 없다’는 내용으로 공개 성명을 발표하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뮬러 특검이 이런 혐의의 사실 여부를 파헤치기 시작했다면, 코미 증언 이후 대반격을 노리던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치명타가 될 수도 있다. 물론 특검이 트럼프의 혐의를 어느 정도 입증해도 대통령을 기소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의회에 탄핵 명분을 제공할 순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코미에게 한 말이 ‘사법방해’로 간주될 수 있는지 공화·민주 양당은 물론 법조계에서도 찬반양론이 분분하다. 미국 형법상 사법방해란, 특정인이 부정한 의도를 갖고 수사를 방해하는 행위다. 대통령의 사법방해는 탄핵 사유다. 이에 대해 민주당 의원들은 ‘수사 중단을 압박한 것 자체는 분명하므로 사법방해다’라고 주장한다. 공화당 의원들은 ‘부적절한 대화에 불과하다’며 맞섰다. 법조계도 갑론을박 중이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백악관 변호사를 지낸 노먼 아이젠은 “친구를 사사로이 돕겠다는 부정한 의도가 보이므로 사법방해다”라고 말했다. 이에 비해 전직 연방검사 출신인 앤드루 매카시 변호사는 “코미가 트럼프의 발언을 ‘압력’으로 느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압력은 사법방해와 다르다”라며 선을 그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검 조사에 응할 뜻이 있다’고 공개 선언했다. 하지만 특검이 현직 대통령을 조사하려면, 다른 관계자들을 모두 조사하면서 물증 확보까지 마친 상태여야 한다. 트럼프는 이미 코미의 증언 내용을 전면 부인했다. 결국 특검은 트럼프-코미 양자 대화를 녹음한 테이프부터 찾아야 한다. 테이프가 존재한다면 뮬러 특검의 부담도 한결 가벼워질 것이다. 테이프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수사는 산 넘어 산이 될 것이다. 백악관 측에 트럼프 대통령과 코미 국장 간에 이뤄진 대화 노트 등 자료 일체를 요구해야 한다. 코미의 증언에 등장하는 FBI 수뇌부에 대한 조사도 불가피하다. 트럼프가 마이클 플린 해임을 전후해 만난 고위 백악관 참모들도 조사할 필요가 있다. 이런 모든 절차를 마친 뒤에야 트럼프에 대한 대면조사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코미와 친밀했던 뮬러가 공정할까?”

ⓒAP Photo트럼프 행정부의 ‘러시아 게이트’ 조사를 맡은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

우파 진영에서는 ‘뮬러 특검 때리기’에 나섰다. 특히 뮬러 특검과 코미의 ‘막역한 관계’를 들춰내고 있다. 뮬러 특검의 ‘공정성’을 문제 삼는 것이다. 대표적인 트럼프 지지자인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은 6월11일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코미 국장이 〈뉴욕타임스〉에 메모 내용을 유출함으로써 고의적으로 지금의 상황을 조성한 게 명확해졌다. 이제 의회가 특검을 폐지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의회 전문지 〈더 힐〉은 연방 선관위 보고서를 인용, 특검팀 수사관 4명이 ‘친민주당’ 인사라고 지적했다.


우파 언론도 맹렬히 뮬러 특검을 질타하고 있다. 〈폭스뉴스〉 앵커인 그레그 재릿은 “코미와 오랫동안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뮬러가 수집한 증거를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우파 논객인 앤 쿠틀러도 “코미가 트럼프는 수사 대상이 아니라고 시인한 이상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은 당장 뮬러 특검을 해임해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는 백악관에서도 느껴진다. 트럼프 개인 변호인단 가운데 한 사람인 제이 세쿨로는 6월11일 ABC 뉴스에 출연해 “특검 해임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라고 운을 띄운 뒤 “(그러나) 특검팀이 공정하지 않은 것으로 입증된다면, 대통령은 해임 여부를 논의할 수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다음 날에는 트럼프의 오랜 친구인 크리스토퍼 루디 〈뉴스맥스〉 최고경영자가 PBS 공영방송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특검 종료를 고려 중인 것 같다”라는 폭탄 발언을 했다.

1999년 발효한 관련 규정에 따르면, 특검을 임명·해임할 권한은 법무장관에게 있다.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은 지난 3월 이번 특검 임명과 관련해 권한을 행사하지 않았다. 러시아 게이트에 자신이 연루되었다는 의혹 때문이다. 결국 로드 로젠스타인 법무부 부장관이 전직 FBI 국장인 로버트 뮬러를 특검으로 임명했다. 그런 만큼 현재 해임 권한도 로젠스타인 부장관에게 있다. 로젠스타인은 지난 6월의 상원 청문회에서 “정당한 이유 없이 특검을 해임하지 않겠다”라고 다짐한 바 있다.

물론 트럼프에게도 대안은 있다. 로젠스타인을 잘라버리고, 그 후임에게 뮬러 해임을 명하는 것이다. 실제로 1973년 워터게이트 스캔들 당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그렇게 했다. 그러나 이로 인한 정치적 역풍 때문에 닉슨은 대통령직을 떠나게 된다.

트럼프가 뮬러 특검을 해임하면 정치적 후폭풍이 거세질 수밖에 없다. 뮬러 특검이 부정한 수사를 하는 것으로 입증되지 않았는데도 해임을 강행한다면, 해임 자체가 ‘사법방해’로 간주될 수 있다. 특검 해임설을 꺼낸 루디 맥스미디어 회장조차 “트럼프가 뮬러를 해임한다면 매우 중대한 실수가 될 것이다”라고 경고한 이유다. 

기자명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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