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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은 놔두고 왜 나만 갖고 그래?

정희상 기자 minju518@sisain.co.kr 2017년 06월 22일 목요일 제50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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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트라우마센터장을 지낸 가정의학과 전문의 강용주씨(56)는 국가를 상대로 18년째 ‘이유 있는’ 저항을 이어오고 있다.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던 강씨는 시민군에 참여했다. 항쟁 마지막 날인 5월27일 새벽까지 도청을 지키다 탈출했다. 강씨는 “동지들이 죽어가는데 총을 버리고 혼자 도망쳤다는 자괴감에 학교를 그만두고 절간에 들어갔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 충격을 딛고 1982년 그는 전남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했다.

전두환 등 광주학살 주역들의 정권 찬탈에 분노한 강씨는 입학 뒤 학생운동에 앞장섰다.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5년 안기부(현 국정원)는 그를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었다며 체포했다. 안기부에서 모진 고문을 받기도 한 그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준법서약서를 거부한 채 14년간 복역했다.

ⓒ시사IN 신선영

이후 늦깎이 의대생으로 복학한 강씨는 2004년 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했다. 투사에서 의사가 된 그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칠레 등 독재국가의 과거 청산 과정에서 고문치유센터가 큰 몫을 했다는 점에 착안했다. 광주에 트라우마 치유센터 설립을 주도했다. 그는 또 2008년 한국 최초 고문 피해자 치유 모임을 이끈 뒤, ‘진실의힘’ 인권재단으로 발전시키는 데 기여했다.


하지만 그는 이런 활동에도 진정한 자유를 찾지 못했다. 강씨는 모든 행적을 3개월 단위로 관할 경찰에 신고해야 하고, 주거지를 떠나 여행을 하면 사전·사후 신고를 해야 하는 이른바 ‘보안관찰 처분 대상자(피처분자)’다. 2001년 행적 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됐고 묵비권을 행사하자 벌금 50만원을 선고받기도 했다.

군사정권 시절 만들어진 보안관찰법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를 단속했던 ‘조선사상범보호관찰령’에서 비롯됐다. 법무부는 내란죄나 반란죄 또는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3년 이상 형을 받은 사람 가운데 재범이 우려될 경우 보안관찰 처분을 내린다. 보안관찰 대상자는 전국에 걸쳐 2500~2600명이고, 이 가운데 강씨를 포함해 보안관찰 피처분자는 43~46명으로 추정된다. 내란 및 반란죄로 처벌당한 전두환씨도 보안관찰 대상자다. 하지만 전두환씨는 행적을 당국에 신고해야 하는 보안관찰 피처분자는 아니다.

최근 또다시 보안관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그는 신고의무 조항과 관련해 법원에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서를 냈다. 강씨는 “보안관찰법은 근대 시민국가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악법이다. 나에게 보안관찰법을 지키라고 계속 요구하는 것은 근대 시민이기를 포기하라는 요구나 다름없기 때문에 나는 앞으로도 근대국가 자유 시민으로서 이 법을 소신껏 거부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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