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3월 수습기자 시절, ‘나 홀로 소방서’를 취재한 적이 있다. 혼자 불을 끄다 소방관들이 순직하는 사고가 잇따르면서 1인 근무 소방서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높아지던 시기였다.
원칙상 소방관들은 혼자 출동하게 되어 있지 않다. 소방차를 옮겨 대고, 무전통신을 하고, 수관(물 호스)을 관리하고, 앞에서 수관을 끌고, 뒤에서 수관을 받치는 일을 여러 명이 나누어 맡게 돼 있다.
하지만 나 홀로 소방서의 1인 소방관은 이 모든 일을 혼자 다 해야 했다. 인근 양계장 화재 현장에서 동분서주하고 있는데 “혼자 오면 어떡해!”라고 소리 지르며 양계장 주인아주머니가 등짝을 두 대 때리더라는 ‘무용담’을 전해주며, 경기도 한 1인 소방서의 윤 아무개 소방관은 숙직실 ‘혼밥’ 상 앞에 앉아 국물에 밥을 말고 있었다.
그때였다. “훅” “훅” 무전기에서 사람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면 번지 화재 발생” 인근 다른 1인 소방서에서 근무하는 동료의 목소리였다. 윤 소방관은 용수철처럼 튀어나갔다. 주차장 한쪽에 벗어둔 방화복을 입고 소방차에 오르기까지 걸린 시간은 20초. 무전기를 통해 상황 보고를 주고받으며 혼자 불을 끄고 있는 동료에게 달려가는 동안 윤 소방관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1년 전 그는 홀로 어두운 창고 안으로 진입했다가 목숨을 잃은 동료의 시신을 손수 옮겼다.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윤 소방관은 수관을 잡고 동료가 들어가 있는 화재 건물 쪽으로 달려갔다.
지난 6월7일 문재인 대통령이 소방관들을 만나 인력 충원과 국가직 전환 등을 약속했다는 보도를 보고 9년 전 취재가 떠올랐다. 장비는 노후하고, 여전히 혼자 출동하고, 불길 속에서 동료를 잃고…. 그때나 지금이나 소방관들이 처한 현실은 별반 달라진 게 없다. ‘소방관이 눈물 흘리지 않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정부의 다짐은 그래서 반갑다.
9년 전 그날, 땀과 물에 젖어 다시 소방차에 올라탔을 때에야 윤 소방관은 비로소 동네 아저씨 같은 웃음을 지었다. “사람이 다친 게 아니라 다행이네요. 남들은 자기 돈 들여서 봉사도 다니는데, 우리는 월급 받으면서 매일 좋은 일 하니까 얼마나 좋아요?” “재난 현장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국민들에게 소방관들이야말로 바로 국가 그 자체”라는 문 대통령의 말이 그의 웃는 얼굴에 겹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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