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9월9일 열린 ‘대통령과의 대화’(위)에도 불구하고 서민들 마음은 답답하기만 하다.
사업 실패 뒤, 김 아무개씨는 청소년 대상 카드 게임 업소를 운영한다. 게임장을 차려놓고 일본에서 수입한 게임용 카드를 판매해 수익을 얻는다. 지난해 6월 관세법 위반 혐의로 조사할 게 있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만 해도 김씨는 별것 아니겠거니 했다. 5개월 후, 조사관은 밀수를 했다며 7000만원이 넘는 추징금을 물게 될 거라고 했다. 자기 인건비는 고사하고 임대료도 겨우 맞추는 불경기에 생돈 7000만원을 내라는 건 나가 죽으라는 말이었다. 김씨는 정식재판을 청구해 “조세 포탈을 시도하기는 했어도 밀수의 범의(犯意)는 없었다”라고 재판부에 호소했지만, 결과는 낙관할 수 없다.

김씨 재판에 나온 관세청 조사관은 “관세의 부과·징수 및 수출입 물품의 통관을 적정하게 하고 관세 수입을 확보함으로써 국민경제의 발전에 이바지한다”라는 관세법 조문만을 건조한 목소리로 반복했다. 엄정한 법 집행도 좋다. 그렇지만 계도는 없었다. 세금 몇 푼만 내면 부가세로 환급받을 수 있는데, 김씨가 바보같이 거액을 몰수 추징당하는 밀수를 반복할 까닭은 없었다. 조사관이 적발 시점에만, 아니 조사할 게 있다던 6월에만 ‘밀수에 해당된다’고 알려주었어도 거액의 추징은 면할 수 있었다. 카드 수입업체의 인터넷 사이트에 실린 안내문만 믿다가 덜컥 밀수범이 된 것이다. 

이 아무개씨는 최근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고질적인 허리 통증을 고치려면 한 달쯤 쉬어야 하는데, 한 달이나 쉬겠다고 하면 회사는 그만두라고 할 게 뻔했다. 고민 끝에 이씨는 사표를 냈다. 실업자 신세가 된 이씨는 대리운전을 시작했다. 다른 직장을 구할 때까지만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대리운전 신세를 언제 벗어날 수 있을지는 자기도 모르겠단다.

화물차 운전사 박 아무개씨는 지난봄 화물연대 파업으로 운임이 올랐지만, 기름값 인상으로 손에 쥐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한 달에 400만원쯤 벌어도 기름값에 차량할부금까지 내고 나면 집에 가져가는 건 100만원도 안 된다. 그렇지만 할부금이라도 내려면 운전대를 계속 잡아야 한다.

이승엽의 홈런 소식 말고는 희망이 없을까

김·이·박씨의 사연은 추석 연휴에 들은 가까운 친척의 이야기이다. 먹고살 만한지 물으니 돌아온 대답이다. 이명박 정부는 추석 민심을 잡겠다고 공을 들였다. 소득세 환급도 해주고 무리를 해가며 추가경정예산도 편성했다. 대통령은 국민과의 대화에 나서고 여당 지도부는 사진기자들과 함께 복지시설도 둘러봤다. 그런데도 민심은 요지부동이다. 도처에서 들리는 이야기라곤 “너무 힘들다”라는 말뿐이다.
지금보다 훨씬 어려웠을 때, 공동 화장실을 쓰고 한 시간 안팎의 거리는 무조건 걸어다녀야 했던 가난한 시절에는 그래도 꿈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꿈마저 사라진 것 같아 힘들단다. 벌이도 시원치 않지만 아무리 벌어도 물가를 따라잡을 수 없고, 부동산과 교육만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지는 것이다.
즐겨야 할 명절인데, 분위기는 침울하기만 했다. 스무 살 즈음에는 ‘이럴 바에야 확 엎어버려야지’ 했지만, 지금은 세상 물정을 좀 안다며 뭐가 대안인지 고민하는 내게도 실은 희망이란 건 없었다.
“경제를 살리겠습니다.” 이건 그냥 해본 소리 같다. 살아나기는커녕 숨만 컥컥 막혀간다. 하기야 1%의 부자만 생각한다면 경제는 제대로 살아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1%의 부자를 뺀 나머지, 곧 ‘대부분의 우리’는 오늘도 손에 잡히지 않는 희망을 찾아 몸부림친다. 겨우 이승엽의 홈런 소식에나 기댄 채.

기자명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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