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충격적”이라고까지 한 사건치고는 싱겁게 끝났다. 실무책임자급에 불과한 위승호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을 보직 해임했다. 위 전 실장은 한직인 육군 정책연구관으로 전보 조치되었다. ‘관계자에 대한 추가 조사’ 가능성을 열어두긴 했지만 더 이상 확대할 것 같지는 않다.

‘사드 추가반입 보고 누락 사건(보고 누락 사건)’은 어차피 사드 문제 전체의 한 부분이다. 이른바 돈봉투 만찬 사건이 검찰 개혁의 물꼬를 터주었듯 이 사건 또한 문재인 정부가 사드 배치 문제를 조기에 들여다볼 실마리를 제공했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6월5일 발표한 내용을 들여다보면, 조국 민정수석이 주도한 보고 누락 사건 조사에서 성과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사드 해법을 찾기 위한 터널의 입구를 찾은 격이다. 바로 환경영향평가 문제다. 윤영찬 수석은 이날 국방부가 사드 배치를 위해 주한 미군에 공여한 성주 기지 면적이 그동안 알려진 32만8779㎡의 두 배가 넘는 70만㎡라고 밝혔다. 이 70만㎡라는 숫자는 처음 공개된 것이다. 성주 골프장 전체의 약 절반에 가까운 면적이다.

ⓒ연합뉴스5월31일 위승호 국방부 국방정책실장(가운데)이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서 사드 보고 누락 경위를 설명한 뒤 밖으로 이동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동안 국방부는 왜 그 절반에 불과한 32만8779㎡만 제공하는 것처럼 밝혀왔을까? 환경영향평가 때문이다. 관련 법에 따르면 공여 면적 33만㎡를 기준으로 환경영향평가의 종류가 달라진다. 33만㎡ 이상이 되면 전략환경영향평가 내지 일반환경영향평가를 받아야 한다. 평가 항목도 많고 기간도 1년이 넘어간다. 반면 그 이하면 평가 항목도 적고 기간도 6개월 이내로 줄일 수 있다.


국방부는 환경영향평가 문제가 불거진 지난해 12월부터 사드 배치에 제공되는 부지 면적을 실제보다 줄여 알렸다는 의혹을 샀다. 지난해 12월 환경영향평가 업체와 당시 공여 면적을 15만4550㎡로 계약했다. 1차 후보지로 거론됐던 성산포대가 14만7000㎡였고 괌의 사드 부지 면적이 15만㎡인 점을 근거로 삼았던 것 같다. 그런데 괌의 사드 부지에는 발사대가 2기밖에 없다. 한국의 경우 1개 포대에 발사대 6기가 배치되어야 한다. 괌을 기준으로 하면 오히려 발사대 1기당 7만5000㎡로 잡아 6기의 경우 최소 45만㎡가 되어야 한다. 괌의 사드와 한국의 사드가 서로 다른 종류라면 모를까 부지 면적에서 크게 차이가 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논란이 일자 국방부는 당시 “15만4550㎡를 환경영향평가 대상지로 설정한 건 얼마만큼 주한미군에 공여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최소한의 면적만 용역을 준 것이다. 부지가 실제로 공여되고 나면 평가 범위를 넓히겠다”라고 해명했다.

국방부는 실제로 지난 4월20일 주한미군에 부지 32만8779㎡를 공여했다며 환경영향평가 대상 부지도 이에 맞춰 확대했다. 그러나 이조차 최소 면적 45만㎡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숫자였다. 당시에도 이미 환경영향평가를 6개월짜리로 받기 위한 꼼수라는 지적이 제기되었다. 33만㎡ 기준을 넘지 않기 위해 부지를 일부러 나눈 ‘쪼개기 공여’라는 것이다.

이번 보고 누락 사건에 대한 청와대 조사 결과 2차 공여 면적이 예상치를 훌쩍 넘어 37만㎡에 이르는 점이 드러났다. 윤영찬 수석의 발표에 따르면 국방부는 이미 지난해 11월25일 작성한 내부 문건에서 전체 공여 면적을 70만㎡로 확정해둔 상태였다. 이 70만㎡를 두 단계로 나누었다. 1단계는 이미 대외적으로 알려진 32만8779㎡다. 6개월짜리 환경영향평가 기준에 맞추기 위해 부지의 가운데 원형 부위를 제외시키는 바람에 전체적으로 말굽 모양(거꾸로 선 U자 모양)이 됐다. 환경영향평가를 손쉽게 통과하고 그동안 발표하지 않았던 37만㎡의 부지를 2차 공여 형태로 제공할 계획이었던 셈이다. 사드 발사대를 일단 2기만 가져다놓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시사IN 이명익4월27일 사드가 실전 배치된 경북 성주군 롯데골프장에서 미군 병사들이 평탄화 작업을 하고 있다.

집권할 경우 사드 레이더나 발사대 등의 배치 시점을 지렛대로 삼아 미국·중국 등과 협상하려 했던 문재인 대통령 처지에서는 4기의 발사대까지 모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은 충격이었을 수 있다. 하지만 사안의 흐름을 보면 청와대가 관련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문재인 청와대는 별도의 군 채널을 통해 어느 정도 핵심을 파악하고 있었다는 흔적이 엿보인다. 보고 누락 사건 발생 초기 문 대통령은 환경영향평가를 피해가기 위한 것은 아닌지 조사하라고 지적한 대목이 바로 그것이다. 조사 결과 대통령 지적이 정확했음이 밝혀졌다.


사드 배치 문제는 한·미 관계 때문에 어디서부터 접근할지 막막한 측면이 있었다. 이번 보고 누락 사건 조사로 청와대는 해법을 찾기 위한 터널의 입구에 성큼 들어서게 되었다. 국방부가 환경영향평가를 ‘편법’으로 진행한 것은 미국과 상관이 없다. 국내법과 관련된다. 쪼개기 공여와 편법 환경영향평가를 누가 지시했고 누가 연루되었는지 밝혀내야 한다. 미국은 자국령 괌의 경우 사람이 살지 않는 허허벌판인데도 2년에 걸쳐 환경영향평가를 했다. 여러 차례 주민 공청회를 통해 의견 수렴 절차를 밟기도 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영구 배치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성주의 경우 벌써부터 X밴드 레이더 가동용 발전기 소음뿐 아니라 발전기용 연료 공급을 위해 하루에도 10여 차례씩 헬기들이 뜨고 내리는 바람에 소음뿐 아니라 대형사고 위험도 존재한다.

‘1+1’ 또는 ‘1+2’ 계약 의혹도 밝혀내야  

환경영향평가만 문제가 되는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윤영찬 수석이 브리핑에서 밝힌 대로 ‘사드 배치 과정에 대한 경위 파악’이 필요하다. 신임 국방부 장관이 임명되면 경위 파악을 실무적으로 진행한 뒤 국방부의 의사 결정 과정에 대해 감사원이 고강도 직무 감찰에 나설 전망이다. 보고 누락 외에 새 정부가 예상치 못했던 또 다른 의혹이 있는지 살펴보기 위한 순서이다. 예를 들어 지난해부터 심심찮게 거론되어온 ‘사드 배치 1+1’ 또는 ‘1+2’ 의혹이다. 즉 1개 포대는 미국 돈으로 들여놓되 그다음 1~2개 포대를 한국이 자체 예산으로 사기로 한·미 간에 합의가 이뤄졌다는 의혹이다. 심지어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올려 그 돈으로 추가 구매를 하기로 했다는 의혹도 제기되었다. 이 경우 돈은 한국이 내지만 명의는 미국이 갖는, 말 그대로 ‘아메리카 퍼스트’식 합의다. 지난해 황교안 전 대통령 권한대행이나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이 같은 분위기를 띄우는 듯한 발언을 한 바 있고, 최근까지도 이런 얘기를 흘리는 인사들이 있다.

이런 의혹이 감찰 과정에서 확인된다면 문재인 정부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렵게 마련해온 사드 해법안이 헝클어질 수밖에 없다. 최근 중국 측은 기존 한 개 포대에 대해서 한국이 중국을 겨냥하지 않는다고 입증 책임을 해준다면 수용할 수 있다는 출구전략을 제시하고 있다고 한다. 더 이상의 추가 배치가 없다는 것이 전제 조건이다. 현재 배치된 것은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므로 사드 배치 자체가 무산될지도 모른다는 미국의 우려를 해소할 수 있다. 다만 이 경우 성주와 김천 주민들에 대한 설득 문제가 남는다. 그런 점에서 환경영향평가를 원칙대로 하는 것은 중요하다. 이렇게 가닥을 잡아가고 있기에 ‘사드 배치 1+1’이나 ‘1+2’ 의혹 같은 돌발 변수가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서라도 협상 과정 전체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기자명 남문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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