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7년 삼성 기사 삭제에 따른 〈시사저널〉 파업 당시 내부 갈등이 적지 않았다. 사소한 다툼도 늘었다. 파업이 길어지다 보니 생긴 후유증이었다. 파업은 생활고를 동반했다. 아이들 학원비, 대출금 이자, 각종 보험금 납입금. 빠져나갈 돈은 정해져 있는데, 들어오는 월급은 한순간에 막혔다. 한 달, 두 달, 석 달… 마이너스 통장의 ‘0’이 하나씩 늘어갔다. ‘무노동 무임금’이 노동자에게 얼마나 큰 부담인지 그때 절감했다. 어떤 선배는 에어컨을 떼다 팔았고, 또 어떤 선배의 형수는 아르바이트 전선에 뛰어들었다. 후배는 학원 강사로 뛰었다. 


다시 기자로 복귀해 검찰과 법원 쪽을 취재하면서 노동 관련 사건을 숱하게 접했다. 노동 사건은 검찰 공안부에서 전담한다. 공안(公安),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시키려는’ 부서가 처리하는 노동 사건이란 늘 결과가 뻔했다. 법원도 마찬가지였다. 간혹 진전된 판결이 나기는 했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그런 판결도 희귀해졌다. 그때마다 이런 상상을 했다.

법정에 높은 법대가 없다. 법관과 원고·피고 등 소송 당사자의 눈높이가 똑같다. 노동자 대표와 사용자 대표(명예판사)도 직업 법관과 나란히 앉는다. 노사 대표도 법관과 똑같이 의견을 개진하고 합의해서 평결을 내린다.

상상 속 법원 풍경만은 아니었다. 독일의 노동법원을 취재할 때 직접 눈으로 목격한 장면이다. 직업 법관한테만 판결을 받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그때 받은 신선한 충격을 법원 고위직을 지낸 이에게 털어놨더니, 그의 답변이 더 신선했다. “고시 패스한 법관만 판결을 내리는 게 사법정의일까요? 우리의 거대한 착각일 수 있어요. 사법 민주화를 위해서도 해외처럼 시민 참여가 보장되는 게 맞죠.”

직업 법관들이 법전의 자구 해석에 그치지 않고, 독일의 노동법원처럼 현장을 알았다면 뒤집혔을 판례가 적지 않을 것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KTX 해고 여승무원들이 코레일을 상대로 낸 ‘근로자 지위보전 및 임금지급’ 소송이다. 법원마저 외면했던, KTX 해고 여승무원들의 4000여 일 투쟁을 커버스토리에 담았다. 아는 이야기일 수도 있고, 또 지겨운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반드시 해야 할 이야기이다. 커버스토리를 쓴 전혜원 기자가 KTX 해고 여승무원들에 대한 스토리펀딩을 준비하고 있다. 또 한 명의 떠난 이에 대한 기록을 담았다. 부산국제영화제(BIFF)의 영원한 수석프로그래머 김지석의 이야기다. 그는 떠났지만 박근혜 정부가 망친 BIFF의 명예는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장일호 기자가 BIFF 정상화를 바라는 고인의 희망을 그의 삶 속에서 재조명했다. 다시 한번 고인의 명복을 빈다.

기자명 고제규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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