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안희태

‘개성 동영’으로 불리는 정동영 후보가 10월17일 개성을 방문했다. 대통합민주신당 대통령 후보가 된 지 이틀째 날이었다. 북한 측에서 주동찬 중앙특구개발 지도총국장이 정 후보를 영접했다. 차관급인 주씨는 개성공단의 사실상 총책임자다. 그는 “북조선에서는 개성공단을 ‘동영 공단’이라고 부른다”라며 이례적인 립 서비스까지 선사했다. 정 후보는 북한 측에서 제공한 차량으로 개성 시내를 둘러봤다. 입주공단 대표와 서울에서부터 동행한 중소기업인 30여 명이 그를 수행했다.

 

정 후보의 개성 방문은 올해 들어서만 세 번째이다. 3월 방북 때는 온종일 비가 내렸고, 7월에는 공단만 슬쩍 둘러봤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그는 국빈급 대접을 받았다. 정 후보는 감회 어린 목소리로 “개성공단의 정동영이 반드시 청계천의 이명박을 이기겠다”라고 말했다. 그를 수행했던 캠프 관계자는 “남북 정상회담 때 정 후보의 이름이 한마디도 언급되지 않아서 서운했는데, 이번에 완전히 만회했다”라며 웃었다.

그 전날인 10월16일 새벽, 정 후보는 대통령 후보가 된 뒤 첫 공식 일정으로 서울 동대문 근처 평화시장을 방문했다. 거기서 그는 자신이 대학시절 영세 봉제공장을 하던 어머니를 도와 바지를 납품했던 가게 주인 송도순씨(72)를 만났다. 정 후보는 송씨 손을 잡은 채 “사장님 덕분에 우리 가족이 먹고살았다. 서민을 살리는 대통령이 되겠다”라고 말했다.

 

MBC 기자 시절, 트렌치코트 깃을 세우고 뉴스를 전하는 모습이 코미디 소재가 될 정도로 정동영 후보의 유명세는 대단했다.

개성 방문이 경선 기간 중 강조했던 평화경제 전도사의 이미지를 재확인하는 이벤트였다면, 평화시장 방문은 본선에서 그가 뽑아들 새 카드의 단초를 선보이는 자리였다. 캠프 관계자는 “단순히 서민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평화시장을 찾은 게 아니다. 경선 때의 핵심 구호가 ‘개성 동영’이었다면, 본선 때는 ‘가족’이 핵심 키워드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동영 캠프 곳곳에는 열흘쯤 전부터 새 포스터가 나붙어 있다. 거기에는 ‘차별 없는 성장, 가족이 행복한 나라’라고 쓰여 있다. 정기남 공보실장은 “가족은 삶의 원천이다. 노후, 일자리, 교육, 주택 등에서 서민경제의 주름살을 펴는 정책을 제시하겠다. 이를 통해 정글 자본주의를 선동하는 이명박의 ‘국민 성장 시대’ 구호에 맞설 것이다”라고 말했다.

 

2002년, 정치 입문 6년 만에 대선 후보 출마

정동영 후보가 정치를 시작한 지 올해로 11년째. 연차로만 본다면 이제 막 중견 정치인 반열에 오를 만한 세월이다. 재선 의원을 지냈고, 17대 총선 때는 불출마했다. 하지만 그의 정치 이력은 연차에 비해 화려하다. 두 번 모두 전국 최다득표로 당선했다. 새정치국민회의와 새천년민주당 시절 40개월간 세 차례에 걸쳐 대변인을 지냈고, 최연소 최고위원을 거쳤다. 열린우리당 때는 두 차례나 당의장을 역임했으며, 통일부장관으로 행정 경험을 쌓았다.

정계 입문부터 ‘대선용’이었을 정도로 그는 대통령 선거와 인연이 깊다. 1996년 15대 총선 때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부름을 받았다. 당시 그는 MBC의 뉴스 진행자였다. 트렌치코트 깃을 세우고 뉴스를 전하는 그의 모습이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패러디될 정도로 그의 유명세는 대단했다. 그런 그가 ‘젊은 피’를 구하던 DJ의 눈에 든 것은 당연했다. DJ는 당시 영입한 그를 데리고 당 기자실로 내려와서 “당의 이미지를 쇄신하는 데 크게 기여할 인물이다”라고 소개했다. 그는 15대 총선 때 전주에서 출마해 전국 최다득표로 당선했다. 1997년 대선 때 김대중 후보는 항시 그를 곁에 두었다. 그는 1997년 12월19일 새벽, 경기도 일산의 DJ 자택에서 김대중 후보의 대통령 당선 소식을 들었던 핵심 측근 몇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국회사진기자단2006년 2월 열린우리당 당의장이었던 정동영 후보가 김대중 전 대통령을 방문했다.

그가 정치를 시작한 뒤 두 번째 치른 대통령 선거가 지난 2002년 대선이었다. 그는 이때 대통령 후보로 첫 출마했다. 정계 입문 6년째의 신참이었지만, 그는 정풍 운동을 이끌면서 당의 새 리더로 떠오르고 있었다. 처음 일곱 명이나 되었던 경선 후보자들이 지역 경선이 시작되고 투표함이 열리자 한두 명씩 떨어져나갔다. 이인제 후보가 경선 막바지 “광기 어린 경선 상황에서 끝까지 간다는 것이 무의미하다”라면서 중도 사퇴했을 때 경선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다. 그때 정 후보는 경선 지킴이를 자처했다. 당시 그의 경선 성적은 1승15패. 패장이었지만, 그는 노무현 후보에 이은 두 번째 승자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정동영이 풀어야 할 '4대 과제' 만만찮아

이번은 그가 정치인으로서 맞이하는 세 번째 대통령 선거다. 이번에는 드디어 그가 주인공이다. 상처를 받았지만 완승이었다. 김대중·노무현 두 선배에 이어 이른바 ‘민주평화개혁세력’의 바통을 이어받을 세 번째 주자가 된 것이다. 그가 출전 채비를 갖춤으로써 2007년 대통령 선거전이 비로소 본 궤도에 올랐다. 그의 두 선배는 온갖 신고를 겪었지만 결국 본선 1위로 결승점을 통과했다. 그도 꿈을 이룰 수 있을까. 그의 선거대책본부 명칭이 ‘더 드림(The Dream)’이다. 물론 현실은 꿈처럼 녹록지 않다.

그가 후보로 확정된 직후 각 매체의 여론조사 결과가 쏟아졌다. 여기서 그가 얻은 지지율은 15~19% 사이에 걸쳐 있다. 후보 확정 프리미엄을 생각하면 예상보다 높지 않다. 그는 경선 초반 4연승을 내달리면서 10% 벽을 넘어섰다. 하지만 경선이 혼탁해지면서 지지율도 정체에 빠졌다. 아직 손학규 전 경기도 지사와 이해찬 전 총리를 지지했던 이들의 표심을 완전히 흡수하지 못한 모양새다. 반면 이명박 후보는 여전히 50%를 넘는 확고한 지지세를 유지하고 있다. 정 후보의 잠재 경쟁자로 꼽히는 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사장은 5~8%, 민주당 이인제 후보는 4~5%대로 그를 추격하고 있다. 공식 후보가 되었지만, 또 한 번의 예선을 치러야 할지도 모르는 그의 처지에서 볼 때 낙관하기엔 너무 이르다.

 

ⓒ청와대사진기자단2004년 4월 총선 직후 노무현 대통령이 정동영 당의장 등을 청와대로 초청해 만찬을 가졌다.

정동영 후보가 경선 승자가 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을 묻자, 그의 핵심 전략통인 민병두 의원(전략기획위원장)은 “그가 민주평화개혁세력의 적자로 인정받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정치 분석가들도 “국민들은 ‘개성 동영’으로 상징되는 그의 선거 구호보다는 그가 손학규·이해찬 후보에 비해 김대중과 노무현을 이을 후계자로서 더 적당하다는 점에서 그를 선택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가 여권의 적자로서 선임자들의 바통을 이어받기 위해서는 극복해야 할 점이 한둘이 아니다.

 

의원회관 민병두 의원의 방에는 커다란 화이트 보드가 놓여 있다. 정 후보가 대선 후보로 확정된 직후 민 의원은 화이트 보드에 검은색 매직펜으로 이렇게 썼다. ‘1. 전선과 가치를 분명히 할 것 2. 화학적 결합 3. 당의 지지 확보 4. DJ-노 관계.’ 정동영 후보의 당면 목표가 이 네 문장 속에 모두 녹아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민병두 의원이 생각하고 있는 네 가지 과제 중에서 첫 번째만이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를 염두에 둔 문구다. 나머지 세 개는 모두 당 내부를 겨냥하고 있다. 경선 과정에서 뒤틀린 ‘친노’ 그룹이나 손학규 지지자들과 어떻게 화학적인 결합을 이뤄낼 것인가. 패배주의에 빠져 있고 동력이 형편없이 떨어져 있는 당 소속 의원과 당원, 지지자들에게 어떻게 하면 승리의 확신을 심어줄 수 있을까. 의존할 수도, 그렇다고 외면할 수도 없는 DJ와 노 대통령 간의 관계 설정은 어떻게 할 것인가. 여당의 공식 대통령 후보이면서도 갈 길이 첩첩산중인 그의 처지가 화이트 보드에 갈겨쓴 글자들에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문장들의 행간을 살피기 위해 의원들을 접촉해봤다.

 

ⓒ시사IN 안희태10월15일 대통합민주신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정동영 후보가 손학규·이해찬 후보의 손을 잡고 단상 앞으로 나오고 있다.

“버버리 코트를 입은 정동영 후보의 모습은 개혁 정치의 상징이었다. 그는 과거 정풍 운동으로 새 정치를 선도했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기득권자의 전형 같다. 그가 ‘선거는 조직과 동원 아니냐’라고 말하는 것을 들으며 안타까웠다.” 경선 과정에서 누구 편에도 서지 않았던 386 출신 한 소장파 의원의 말이다. 이 의원의 지적처럼 ‘개혁의 기수’와 ‘기득권자’라는 서로 섞이기 힘든 두 단어가 정 후보의 이미지에 중첩된 것이 사실이다. 이 의원은 “개혁의 리더였으면서 어느새 낡아버린 그의 이미지야말로 정동영이 극복해야 할 첫 번째 과제다. 그가 초심으로 돌아가야만 당내에서 진정한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제 정동영이 뭔가 보여줄 때"

다른 초선 의원은 “김대중 전 대통령은 수평적 정권 교체라는 국민 여망을 대표했고, 노무현 대통령은 지역 갈등 해소를 자신의 정치적 트레이드 마크로 삼았다. 정동영 후보는 평화와 통합을 내걸고 있다. 하지만 너무 추상적이어서 힘이 생기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친노 그룹과의 관계 설정은 정 후보의 또 다른 딜레마다. 선거운동을 위해서는 관계 개선을 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몸을 섞을 수도 없다. 정 후보는 후보 당선 직후 노무현 대통령에게 전화를 거는 등 관계 개선을 모색하고 있지만, 아직 청와대의 반응은 냉랭하다. 친노 그룹에 속하는 한 의원은 “여당 지지율이 바닥까지 떨어진 이유는 노 대통령의 잘못만이 아니다. 당의 정체성이 애매했기 때문이고, 정 후보의 책임도 무겁다”라고 덧붙였다. 노 대통령의 최측근인 안희정씨는 아예 “정 후보가 과거를 반성하지 않으면 진심으로 돕기 어렵다”라고까지 했다.

민병두 의원은 화이트 보드에 쓴 네 문장을 하나하나 읽으면서 “한 가지도 쉬운 일이 없다”라고 말했다. “정동영으로 되겠어?”라는 말은 정 후보가 당의 공식 후보로 확정된 지금도 여의도 정가에서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문국현 대안론이나 후보 단일화는 이런 ‘정동영 필패론’에서 연유하는 발상이다. 민병두 의원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정동영이 되는 이유 다섯 가지’를 꼽아볼 수 있느냐고 주문했다.

 

ⓒ뉴시스정동영 후보가 10월17일 개성공단을 방문해 한 속옷 공장에서 직접 재봉 작업을 해 보이고 있다.

“첫째, 이번 대통령 선거전은 가치와 이성적 판단의 전장이 될 것이다. 정글 자본주의를 택할 것이냐, 평화경제를 택할 것이냐. 나는 국민들의 이성을 믿는다. 둘째, 리더십과 이미지에서 정 후보의 열린 리더십이 이명박의 권위적 리더십을 압도한다. 이미지에서도 저쪽은 이미 이‘경박’으로 불리지 않는가. 셋째, 지난 10년의 경험이 우리 지지자들을 후회하지 않을 선택으로 이끌 것이다. 문국현 현상 또한 우리 지지자들이 어떻게든 집권을 이어가겠다는 반사적 표현 아닌가. 넷째, 정 후보는 자질 면에서 지금 달관의 경지에 올라 있다. 그는 승리의 기억을 가지고 있으며 승리에 대한 집념이 강한 사람이다. 우리는 정치적으로 충분히 단련되었다.”

 

그는 네 번째 이유까지 말한 뒤 잠시 뜸을 들였다. 그런 다음 “이만 해도 되지 않겠어”라며 말을 마쳤다. 다섯 번째 이유를 그는 아직 찾지 못했다. 국민들은 아마 다섯 가지를 다 채우지 않더라도, 충분히 절실한 이유를 필요로 할 것이다. 5년 전의 경선 지킴이가 올해의 대선 지킴이로 머물지 않기 위해서도, 정동영 후보가 이제 뭔가 보여줘야 할 때다. 

기자명 안철흥 기자 다른기사 보기 ah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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