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황망부패 관리를 응징하는 내용의 중국 드라마 〈인민의 이름으로〉는 최고 시청률이 8%에 달했다.

지난 4월28일 드라마 〈인민의 이름으로〉가 막을 내렸다. 55부작인 이 드라마는 검찰 기관이 거대한 부패 커넥션을 파헤치고 부패 관리들을 응징하여 정의를 실현하는 내용이다. 중국의 텔레비전 시청률은 1%가 넘으면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데, 이 드라마는 최고 시청률이 8%에 달했다. 중국의 대표 스트리밍 플랫폼인 아이치이(iqiyi)와 유쿠(youku)에서도 줄곧 조회수 1위를 기록했다. 시청자들은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와 짜임새 있는 스토리에 열광했다. 가십과 풍문의 대상이던 공산당 내부의 권력투쟁, 정경유착의 실태가 드라마에 생생하게 그려졌다. 등장인물 중심으로 팬덤이 형성되고, 드라마가 끝난 후 원작 소설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인민의 이름으로〉는 최고인민검찰원이 제작했다. 즉 정치적 목적이 담긴 드라마다. 국민에게는 당의 반부패 의지를 보여주고, 고위 관리들에게는 경고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서다. 드라마에는 중국 정부가 원하는 관료의 모범상도 제시되었다. 극중 젊은 검사관 허우량핑은 사업가인 친구한테 중화담배, 마오타이주, 맞춤정장 등 끈질긴 뇌물 공세를 받지만 단호하게 뿌리친다.

중국에서는 반부패 관련 프로그램들이 지속적으로 방영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중국 관영 CCTV는 반부패 8부작 다큐멘터리 〈영원히 길 위에서〉를 방영했다. 〈인민의 이름으로〉 종영 이후, CCTV에서는 또 다른 반부패 드라마 〈국가행동〉을 준비 중이다. 이런 프로그램은 국가의 홍보 방송일 수 있다. 또 비슷한 드라마나 다큐멘터리의 인기는 중국의 부패가 심각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민신페이 미국 클레어몬태나 대학 교수는 30년간 중앙정부의 통치 능력이 약해지면서 지방정부에서 관시(관계)의 중요성이 커지고 부패가 만연하게 되었다고 분석했다. 장쩌민, 후진타오 시대에도 반부패가 계속 강조되었지만 부패를 막을 정책이 효과적으로 실행되지 못하면서 오히려 악화되었다는 것이다.

ⓒXinhua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반부패기관인 당 기율위원회의 권한을 강화했다.

시진핑 정부는 ‘전면적 개혁 심화’를 가장 중요한 정치 의제로 설정했다. 반부패 드라마는 시진핑 정부의 정치 의제와 통한다. 시진핑 시대의 반부패 운동은 개혁 동력을 확보한다는 목적도 강하다. 개혁의 가장 큰 걸림돌은 기득권 세력의 저항인데, 이들을 타깃으로 삼아 반부패 전쟁을 벌이고 있다. 실제로 전력방(전력업계 세력), 철도방, 석유방 같은 신조어가 말해주듯 대형 국유기업은 고위 관리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들은 정부의 국유기업 개혁에 저항해왔다. 석유방의 대부로 불리는 저우융캉 전 정치국 상무위원이 부패 문제로 구속되었고, 철도와 전력 부문에 대한 반부패 전쟁도 계속되고 있다. 군부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2015년부터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인 쉬차이허우, 궈보슝 등을 낙마시키며 군부 내 기득권층 제거에 나섰다.

ⓒAP Photo뇌물 혐의로 기소된 저우융캉 전 정치국 상무위원은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중국 당국의 칼날은 최근 금융권으로 향했다. 지난 4월9일 청렴정치공작회의에서 리커창 총리는 “일부 감독기관 인사들이 회사 고위 관리자들, 금융계 비리 세력과 결탁하여 부패를 조장한다”라며 이들을 엄벌하겠다고 공언했다. 같은 날, 보험업계를 관리 감독해온 샹쥔보 전 보험감독관리위원회 주석이 사정기관의 조사를 받았다. 4월10일 은행감독관리위원회의 양자차이 주석조리(차관보급)가 출근하지 않았는데, 〈차이신망〉 보도에 따르면 그 역시 당국의 수사를 받고 있다.


반부패기관인 당 기율위원회(기율위)의 권한도 강화됐다. 그동안 지방 기율위가 동급인 당 위원회의 관리감독을 받아왔기에 기율위가 감독 주체인 당 위원회 간부들을 조사하기에는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정부는 기율위원회의 독립성 보장을 위해 당 위원회의 감독 기능을 축소했다. 상급 기율위가 하급 기율위를 수직으로 통제하도록 조직을 개편했다. 또한 공공기관에 파견되어 공무원의 부정부패를 감찰하는 기율위 산하 중앙순시조의 권한도 강화했다.

반부패 드라이브에 공무원들은 ‘복지부동’

한국에서 논의되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와 같은 반부패 독립기구 설립도 진행 중이다. 지난 1월 제18기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제7차 전체회의는 국무원(행정부)이나 법원과 동등한 독립기구인 국가감찰위원회 설립 추진을 공식화했다. 기존 기율위는 당 기구로서 감찰 대상이 당원으로 한정되었다. 새로 출범하는 국가감찰위원회는 공산당원이 아닌 인사들의 비리도 단속할 수 있다. 또한 이 국가감찰위원회는 수사권과 재산몰수권 등 막강한 권한을 가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국가감찰위원회가 활동에 들어가면 반부패 운동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리라 전망된다.

시진핑 주석의 반부패 드라이브에 관가는 잔뜩 긴장하고 있다. 물론 동요와 불만도 적지 않다. 관료들 사이에 민불료생(民不聊生:백성들이 편하게 살 수가 없다)이라는 사자성어를 빗댄 ‘관불료생’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우리가 일을 하면 정치 위험을 포함한 각종 위험에 노출된다” “일을 덜하면 잘못도 줄어든다”는 말도 관료 사회에 퍼졌다.

이런 분위기가 관료의 ‘부작위(일을 하지 않음)’ 현상을 야기했다. 중국판 복지부동이다. 드라마 〈인민의 이름으로〉 등장인물 중 간부 쑨롄청은 부패하지 않고 탐욕스럽지 않다. 다만 적극적으로 일을 하지 않고 몸을 사린다. 그는 취미인 별을 관측할 때만 의욕적이다. 이 캐릭터는 현실에 존재하는 수많은 쑨롄청들에게 보내는 정부의 경고다. 실제로 5월8일 〈톈진일보〉는 톈진시 공업정보화 부서의 주임 리차오싱을 부작위 혐의로 면직 처리했다고 보도했다. 정치학자 정융녠은 일부 지방의 상호 신고 시스템이 중국판 복지부동 현상을 심화시켰다고 주장한다. 일을 하기보다 남의 흠 찾기에만 몰두하는 간부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정융녠은 중국 관료나 당이 부패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것은 명확하지만 부패의 기준이 불투명하다고 지적한다. 감시나 고발에 따른 적발로 부패를 뿌리 뽑기보다 투명사회를 만들 제도화가 필요하다고 그는 지적한다. 한국의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처럼 반부패의 제도화는 중국 정부가 풀어야 할 과제다. 드라마가 아닌 현실에서는 더 그렇다.

기자명 베이징·정해인 통신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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