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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P PHOTO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위)이 4월15일 김일성 주석 생일(태양절) 기념 열병식에서 군인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아래)이 5월15일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 정상포럼 폐막식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북핵과 관련해 미국이 중국에 준 시간은 100일이었다. 표면적으로는 미·중 간 무역 불균형 해소를 위한 ‘100일 계획’에서 연유한 측면도 있다. 어차피 미국은 이 기간에 북핵 문제를 다룰 실무 책임자들 자리가 공석이다. 7월 초에나 국무부 동아태 차관과 차관보, 그리고 국방부 차관 임명이 마무리된다. 4월6~7일 미·중 정상회담 이후 100일이면 7월 초다. 이 기간에 중국에 기회를 줄 테니 북핵 문제를 해결해보라는 것이다. 중국이 못하면 그다음에 미국이 직접 나서겠다는 게 트럼프 대통령이 미·중 정상회담 전에 했던 얘기다.


100일 후 미국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지는 중국이 얼마나 열심히 뛰는가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결과에 따라 국방부 차관에 강성 인물이 앉을 수도, 온건한 인물이 등장할 수도 있다.

트럼프 정부는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인 ‘전략적 인내’가 끝났다고 선언했다. 대신 지난 4월26일 상원의원 100여 명 앞에서 새로운 대북정책이 바로 ‘압박 전략(Pressure Campaign)’임을 천명했다. 4월11일자 〈뉴욕타임스〉는 이를 ‘최대의 압박과 관여(Maximum pressure and Engagement)’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압박도 최대로 할 것이고 관여도 최대로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압박과 관여 중 어느 쪽으로 추가 기울지는 아직 모른다. 지금은 추가 관여(대화) 쪽으로 약간 기울었다. 중국이 그만큼 열심히 뛰기도 했고 5월9일 한국 대선에서 ‘대화파’인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100일 계획’의 중간결산을 해보자.

북한이 4월 핵실험을 포기한 이유

ⓒ평양 조선중앙통신북한이 5월24일 신형 중장거리 미사일 화성 12호의 시험발사에 성공했다.

4월15일 북한의 태양절과 4월25일 인민군 창건일이 가장 중요한 고비였다. 미국 항공모함 칼빈슨 호가 한반도 해역으로 접근 중이었고 미국의 선제타격 가능성이 많이 거론되었다. 지난 3월 말부터 함경북도 풍계리 핵 시험장에서는 핵실험 준비가 한창이었다. 핵실험용 동굴을 굴착하면서 토사가 배출되고 측정 장비가 반입됐다. 하지만 핵실험은 일어나지 않았다. 4월15일 태양절 행사 다음 날 미국이 KN-17로 명명한 대함 미사일 발사 시험이 있었다. 4월25일에는 대규모 화력 시험만 거행됐다.


조용히 넘어갔다 싶은데 북·중 관계가 이상했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와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상대를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4월21일자 〈조선중앙통신〉이 “북·중 관계에 파국적 후과를 각오하라”는 논평을 게재하자 이튿날 〈환구시보〉는 “북한이 핵실험을 할 경우 핵시설에 대한 미국의 외과수술식 공격에 중국이 군사적 개입을 하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이것이 ‘한반도 문제에 대한 중국의 마지노선’이라는 선언이었다. 중국이 대북 원유 공급을 줄임에 따라 평양 시내 주유소에서 휘발유 판매가 제한되고, 북한 관광이나 국경무역이 통제되는 일이 일어났다.

북·중 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북한의 6차 핵실험을 둘러싸고 양쪽이 물밑에서 충돌했다. 5월14일자 일본 민방 TBS에 당시 상황이 소개되었다. 지난 4월18일 북한이 중국에 “이틀 뒤 핵실험을 하겠다”라고 통고했다. 중국 측은 “핵실험을 감행할 경우 육지와 바다의 국경을 모두 봉쇄하겠다”라고 경고했다. 중국은 북·중 접경지역 공안에다 핵실험에 대비하라고 지시하는 한편 미국에 이 사실을 알렸고, 미국은 다시 일본에 통보했다. 결국 북한은 4월20일 핵실험을 하지 않았다. 무역의 90%를 중국에 의존하는 처지에 국경이 봉쇄될 경우 치명적 타격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중국, 북한과 단교 조치도 불사

ⓒ38노스 홈페이지북한 전문 웹사이트 '38노스'는 풍계리에서 핵실험 징후가 있다며 아래 사진을 공개했다.

지난 3월 말부터 벌어졌던 일련의 내용을 살펴보면 맥락이 좀 더 이해된다. 우선 북한이 언급한 핵실험에 대해 알아보자. 지난 3월 말부터 풍계리 일대에서 핵실험 징후가 있었다. 미국의 북한 전문 웹사이트인 ‘38노스’는 이번에 파낸 토사의 양이 그 전에 비해 엄청나게 많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토사의 양을 토대로 핵실험을 할 경우 폭발력이 280kt 정도 되리라 예상했다. 10kt 정도에 불과했던 5차 핵실험에 비해 28배나 된다. 그렇다면 북한은 무슨 실험을 하려고 했던 것일까? 지난해 12월 NK지식인연대에서 펴낸 〈2016년 북핵 및 WMD 평가〉 자료집에 그 단서가 나온다. 


지난해 9월9일 5차 핵실험 직후인 9월13일 당 중앙군사위원회 비공개 확대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다음과 같이 지시한다. “2017년에 6차 핵실험을 실시하는데, 5대 핵 타격 수단 개발에 대한 최고사령관 명령에 따라 5개의 연구개발 주체들이 마감 단계에서 진행하고 있는 핵탄두들을 동시에 터트려라.” 5대 핵 타격 수단은 수소탄, 이동식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핵어뢰, 핵배낭을 말한다. 이처럼 5가지 핵폭탄을 모두 터트리기 위해 평상시보다 많은 동굴을 팠기 때문에 유출된 토사량이 많았던 것이다. “상상하기 어려운 폭발력을 과시하여 세계를 놀라게 하고 우리를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시했다.  

이를 막기 위해 중국 측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응했는지 좀 더 자세한 내용이 홍콩의 시사월간지 〈동향〉 5월호에 소개됐다.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이 박명호 주중 북한 대사관 공사를 불러놓고 중국 외교부 부부장으로 하여금 북한이 핵실험을 할 경우 중국이 취할 5대 조치를 담은 비망록을 낭독하게 했다고 한다. 첫째, 유엔안보리 경제제재와 기타 조치를 굳건히 지킨다. 둘째, 즉시 석유와 석유 연료의 공급을 중단한다. 셋째, 모든 경협을 즉각 중지한다. 넷째, 북한 주재 중국 대사를 소환하고 이후 진일보한 조치를 취한다. 다섯째, 육상 변경과 해상 수계(육상과 해상의 국경선)를 닫고 사태 추이를 봐서 봉쇄하고 계엄조치도 고려한다. 북한이 핵 개발을 계속 고집하면 전 세계에 ‘중·조 우호협력 조약’ 파기를 선언한다. 사실상 단교 조치까지 불사한다는 내용이다.

지린대학(길림대)의 쑨싱제 국제관계학 교수는 4월29일자 홍콩의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 기고문에서 중국의 석유 공급 중단은 북한의 전략 비축량 때문에 심한 타격을 가할 수 없는 1~2개월 수준이 아니라 최소 6개월을 중단하는 방안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북한은 왜 핵실험을 고집하는 것일까? 그동안 국내외 논의는 주로 핵 기술 발전의 과정이라는 측면에 국한해 분석했다. 1차에서 5차 핵실험까지 이르는 기술적 성과를 바탕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 다중폭발실험(6차 핵실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과 중국 간에는 물밑에서 6차 핵실험을 담보로 북한의 핵 폐기와 보상 협상을 전개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지난 4월16일 타이완 중앙통신(CNA)은 중문에서 북·중 간 만남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북한은 핵무기 폐기 조건으로 경제적 이익과 안전보장이 우선해야 하며, 핵무기 폐기를 위한 시한으로 3년을 요구했으나, 중국은 북한에 3개월 이내에 폐기하라며 2∼3주일 내 이를 수용하라고 압박했다’고 한다. 탈북자 출신 국내 북한 전문가는 지난 4월22일 자신이 운영하는 웹사이트에 북한 대표단이 3월27일부터 3월30일까지 중국을 비공식 방문해 ‘미국과 기타 국가가 무상원조 100억 달러를 포함해 400억 달러를 지원한다면 3년 내 비핵화 노력을 할 수 있다’라는 핵 폐기 조건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지난 5월3일자 홍콩의 화교용 뉴스 사이트 〈아보뤄(阿波羅) 신문망〉이 유력 월간지 〈쟁명〉 5월호를 인용해 북·중 양국이 지난해 8월부터 핵 폐기를 위한 비밀협상을 벌여왔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북한은 핵 폐기 조건으로 중국·미국·일본·러시아·한국이 10년 기한으로 매년 600억 달러 무상원조를 제공하라고 요구했다. 또 유엔의 대북제재 결의 철회와 북·미 평화협정 체결도 조건으로 내걸었다. 이런 조건이 충족되면 3년 기한으로 핵무기를 단계적으로 폐기하고 중장거리 미사일 개발을 중단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고 한다. 보상 액수만 다를 뿐 내용은 비슷하다. 그렇다면 북한이 요구한 정확한 액수는 과연 얼마일까? 그 내용 역시 앞의 NK지식인연대 자료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발언에 나온다. “핵을 포기하는 대신 우리는 미국과 관련국들에게 500억 달러 보상을 요구할 것이다. 그것이면 우리는 모든 공업과 과학기술에 투자하여 세계적인 부흥국가로 단번에 도약할 수 있다.” 북한 핵 개발의 궁극적 목표는 바로 경제개발의 종잣돈 마련인 셈이다.

북·중 간 물밑 대화 시기에 대해 〈쟁명〉은 지난해 8월부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탈북자 출신 국내 북한 전문가는 3월27일부터 3월30일까지 협의했다고 했다. 북한이 풍계리에서 다중 핵폭발 실험 준비에 착수한 시기가 바로 3월 말이다. 지난해 8월부터 진행된 물밑 협상이 3월 말 협상에서도 진전이 없자 6차 핵실험으로 북핵의 위력을 과시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9월13일 당 중앙군사위원회 비공개회의에서 구상한 대로다. 하지만 예상 밖으로 중국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혀 일단 한발 뒤로 물러섰다.

7월까지는 유화 국면

중국의 유례없는 대북 압박으로 4월20일 예정되었던 대규모 핵실험은 막을 수 있었다. 4월20일 트럼프 대통령은 “바로 2~3시간 전에 매우 ‘특이한 움직임(unusual move)’이 있었다. 모든 전문가가 중국이 지금처럼 일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라며 만족스러워했다.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도 4월27일 인터뷰에서 “중국이 북에 핵실험을 감행하면 자체적으로 제재를 가하겠다고 통고했다”라고 밝혔다. 이 같은 중국의 노력에 부응하는 차원에서 미국도 북한에 대해 관여(대화)를 강조하는 쪽으로 기울기 시작한 것이다. 4월26일 상원의원 100명을 백악관에 초청해 압박 전략을 발표할 때만 해도 ‘최대한 압박하되 대화의 문을 열어놓겠다’며 원론적인 언급만 했다. 그런데 4월27일 틸러슨 국무장관은 ‘비핵화를 위한 북·미 양자대화’를 제안했다. 5월1일 트럼프 대통령은 “상황이 적절하다면 김정은을 만날 용의가 있다”라며 워싱턴 북·미 정상회담 발언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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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대화가 이뤄졌다. 한국의 제19대 대통령 선거 하루 전인 5월8일 시작해 5월9일(현지 시각)까지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최선희 북한 외무성 미국국장 등과 ‘뉴아메리카 재단’의 수전 디매지오 국장, 피커링 전 유엔 주재 미국 대사, 로버트 아인혼 전 미국 국무부 비확산·군축 담당특보, 윌리엄 팰런 전 미국 태평양사령부 사령관 등이 만났다. 반관반민(半官半民) 형식의 ‘1.5 트랙’ 대화다. 3월 초에 만나려다 김정남 피살 사건으로 취소된 뒤 재개되었다. 전후 맥락으로 보면 북·미 대화 채널이 빠르게 가동되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4월 초 미·중 정상회담 이후 미국은 북핵 문제를 중국에 ‘외주’를 준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굳이 미국이 북한과 만난 이유를 몇 가지 추론해볼 수 있다. 먼저 중국에 대한 배려다. 중국은 북한과의 관계를 일부 희생하면서까지 북한을 압박해 핵실험을 막았다. 미국도 대화에 성의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한국 대선에서 남북 대화를 중시하는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것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한국이 북측과 접촉을 시도하기에 앞서 선수를 칠 필요가 생긴 것이다.

ⓒ연합뉴스1.5 트랙 회담에 참석한 최선희 북한 외무성 미국국장(위)과 로버트 아인혼 전 미국 국무부 특보(아래).
최근 인질 문제가 자꾸 발생하면서 대화 수요가 발생한 측면도 있다. 북한의 ‘인질 외교’는 미국의 압박에 맞서 북한이 숨구멍을 내기 위해 즐겨 사용하는 수법이다. 최선희 국장이 오슬로로 출국한 당일에도 한 사람이 추가로 억류되었다. 현재 북한에는 미국 시민권자 4명이 억류되어 있다. 1.5 트랙에서 핵문제에 대한 탐색적 대화를 나눴겠지만 실질적 성과는 인질 한두 명의 석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어차피 7월까지는 미국도 유화적인 태도를 보여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기자명 남문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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