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omberg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왼쪽)과 그 아들 하워드 버핏(가운데), 손자 하워드 워런 버핏(오른쪽). 워런 버핏은 올해 86세이다.
2015년부터 거론되기 시작한 세계적 ‘투자 귀재’ 워런 버핏의 은퇴 여부가 올해도 오리무중이다. 5월 첫 주말, 버크셔해서웨이의 제53회 연례 주총이 주주 약 3만명이 참석한 가운데 버핏의 고향인 미국 네브래스카 주 오마하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서도 버핏은, 지난해 유령 계좌 스캔들에 휩싸여 사회적 공분을 산 웰스파고 은행의 경영진을 신랄히 비판하고, 아마존과 구글에 투자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세계 최대의 유지 제품 회사인 유니레버에 대한 인수 의사를 밝히는 등 은퇴와 거리가 먼 정력적인 모습을 보였다. 은퇴에 대해서는, 버핏이 살아 있는 동안 후임을 임명할 것이라고 재확인했을 뿐이다. 천재적 투자 실력과 기부 활동으로 ‘오마하의 현인’이라 불려온 올해 86세의 버핏은 과연 언제쯤 은퇴할까? 후임은 누구일까?

버핏은 의류 및 가구에서 식품과 보험·에너지·금융 부문에 이르기까지 총자산 6200억 달러에 달하는 버크셔해서웨이 그룹을 52년째 이끌어온 경영인이자 투자의 귀재다. 지난 3월 현재 개인 자산만 787억 달러로, 빌 게이츠 전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다음가는 세계적 부자다. 계열사가 60여 개에 달하는 버크셔해서웨이 그룹은 독립경영제를 통해 각 계열사 사장이 회장(CEO)인 버핏에게 직접 보고한다. 버핏은 특정 기업을 인수하면 기존 사장을 그대로 앉혀 경영 안정을 기했고, 그 덕에 경영 실적이 좋은 사장은 수십 년째 자리를 유지하기도 한다. 실제로 버핏은 그룹 회장임에도 계열사 사장에게 거의 100% 자율권을 부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도 그룹의 핵심 결정은 버핏의 몫이기에 그의 은퇴, 나아가 그가 없는 그룹의 앞날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언제나 뜨겁다.

현재 그룹 차원에서는 버핏의 후계자가 결정된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버핏이 물러나면 버크셔해서웨이 그룹이 계열사별로 해체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지만 확인되지 않았다. 한 가지 확실한 점은 만일 내일이라도 버핏이 사망하거나 물러날 경우, 그룹 이사회는 곧바로 후임을 지명해 업무를 이어나가게 할 것이라는 점이다. 워런 버핏의 아들 하워드 버핏은 그룹의 비상임 회장으로 취임할 것이다.

기업 분석가 대부분은, 후임이 누구든 그룹의 경영이 흔들릴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다양한 계열사들이 꾸준히 실적을 내고 있으며, 단기 채무도 없고, 200억 달러 상당의 유동성 자금까지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버크셔해서웨이는 금융위기 상황인 2008~2009년에도 흑자를 냈다.

버핏의 은퇴 여부가 세간의 관심을 모은 시기는 2010년 5월이었다. 버핏의 80회 생일을 석 달 앞둔 시점이었다. 당시 그는 자신이 은퇴하면 계열사 사장 한 명과 투자이사 3~4명으로 이뤄진 팀이 그룹을 떠맡는 일종의 집단 경영 체제 구상을 밝혀 큰 화제를 모았다. 실제 5개월 뒤 그룹 측은 헤지펀드 회사 ‘캐슬포인트 캐피털’의 톰 콤스 이사, ‘페닌슐라 캐피털 어드바이저’ 창립자 테드 웨슬러를 영입하는 등 후계 작업에 박차를 가하는 듯 보였다.

2015년 2월 버핏은 은퇴 계획을 더욱 구체화했다. 주주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후임의 자질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구체적 기준을 제시한 것이다. 첫째, 외부 영입이 아닌 그룹 내 인사 중에서 발탁한다. 둘째, 후임은 10년 이상 경영에 전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버핏이 비교적 젊은 인사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일기도 했다. 셋째, 오만·관료화·자만 등 3대 악폐를 물리칠 결의가 확고해야 한다.

“돈 버는 식견을 갖춘 사람이어야 한다”

버핏이 ‘후계자의 자격’에서 ‘외부 영입자’를 제외함에 따라, 관측통들은 버크셔해서웨이 그룹의 두 사람을 주목했다. 한 사람은 인도 출신으로 그룹 내 최대 수입원인 보험회사를 총괄해온 아지트 자인. 다른 한 사람은 그룹 내 에너지 사업 부문을 떠맡은 그레그 아벨이다. 버핏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자인과 아벨 가운데 누구를 후계자로 임명할지 언급한 바 없다. 그러나 버핏의 의중에 있는 사람을 유추할 만한 단서들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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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 Photo워런 버핏의 후계자로 지목되는 버크셔해서웨이의 아지트 자인(위)과 그레그 아벨(아래)

단적으로 버핏은 이번 주주총회에서 자인을 극찬했다. “자인이 회사를 떠나거나 은퇴한다면 아무도 그를 대신할 수 없을 것이다. 자인은 나보다 더 많은 돈을 그룹에 벌어줬는지도 모른다.” 2015년 ‘주주에게 보내는 서한’에서도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남겼다. “나(버핏), 찰스 멍거(동업자), 아지트 자인이 탄 배가 침몰하게 되었다고 치자. 주주 여러분이 한 사람만 구조해야 한다면 누구를 선택하는 것이 좋을까? 아지트 자인을 구해라.”

버핏이 자인을 ‘보험 계열사 총괄자’로 발탁한 것은 지난 1986년이다. 그는 입사 당시부터 탁월한 경영 능력을 입증해 버핏의 총애를 받았고, 2014년 보험 부문에서 무려 425억 달러의 실적을 올렸다. 이를 바탕으로 버핏은 사업을 다각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름난 금융자문사인 모틀리 풀은 ‘자인 후계자론’에 회의적이다. 무엇보다 ‘후임이 최소 10년은 경영에 전념할 수 있어야 한다’는 버핏의 기준을 감안하면, 자인은 나이가 너무 많다. 올해 7월이면 만 66세다. 오히려 올해 54세인 경쟁자 아벨이 자인보다 유리하다. 그룹을 이끌 후계자로 자격을 갖춘 인물이 자인만은 아니라는 점도 ‘버핏 후계자=자인’이라는 등식을 어렵게 만든다. 특히 다년간 그룹의 최대 효자 구실을 해온 보험 업무에서 자인을 빼는 건 너무 위험부담이 큰 만큼 오히려 아벨이 후임으로 더 적합하다는 관측도 나온다. 후계 구도에서 일단 멀어진 외부 영입 투자전문가 콤스와 웨슬러가 아직 건재하다는 점도 또 다른 변수다.

이런 엇갈린 관측에도 불구하고 버핏의 가장 유력한 후임으로 아지트 자인이 1순위라는 점에는 월가의 이의가 없는 것 같다. 문제는 버핏이 언제 어떤 식으로 후임 발표를 결심하느냐이다. 그런 점에서 올해 주주총회에서 버핏이 내던진 한마디는 꽤 시사적이다. “후계자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자질 가운데 하나는 회사가 보유한 현금을 현명하게 투자할 수 있는 재능이다. 최고경영자는 무릇 ‘돈 버는 식견을 갖춘 사람(money mind CEO)’이어야 한다.” 그룹에 가장 많은 돈을 벌어준 사람은, 누가 뭐라 해도 단연 자인이다.

기자명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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