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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산업 위기 초래한 사행성 마케팅

게임 산업 전반에 위기의식이 팽배하다. 사드 배치 때문에 중국 정부는 한국 게임의 신규 유통 허가를 금지했다. 각종 규제와 잘못된 마케팅도 산업을 위축시켰다.

이상원 기자 prodeo@sisain.co.kr 2017년 06월 02일 금요일 제50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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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 취임을 누구보다 반기는 이들이 있다. 게임 산업 종사자들이다. 문 대통령은 ‘게임 친화적’ 행보를 보여왔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인 4월14일에는 직접 모바일 게임 <샐리의 법칙>을 시연했다. 이 자리에서 “아들이 게임을 즐겨 했다. 새 정부에서 게임에 대한 인식 개선을 돕겠다”라고 말했다. 취임 후 정무수석으로 앉힌 전병헌 전 의원은 한국e스포츠협회장을 지냈다. 게임대회에 참석해 직접 게임 캐릭터 ‘코스프레’를 선보여 ‘게임 대통령’이라고 불린 인물이다. 결정적으로, 영상 디자이너라고만 알려졌던 대통령의 아들이 게임 개발자라는 사실에 업계는 환호했다.

ⓒ연합뉴스
4월14일 문재인 대선 후보가 '디지털경제 국가전략 초청 포럼'에서 모바일 게임을 직접 해보고 있다.

대통령 행보가 주목받는 배경은 게임 산업 전반에 퍼진 위기의식 때문이다. 발등에 떨어진 불은 사드 배치다. 게임 산업도 직격탄을 맞았다. 중국 내 미디어를 총괄하는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은 3월 초 ‘한국 게임 신규 판호(유통허가) 금지’ 방침을 밝혔다. 실제로 3월과 4월 중국에서 판호를 발급받은 한국 게임은 단 하나도 없다. 2015년 기준 중화권 국가들(중국, 홍콩, 타이완)은 국내 게임 수출액 3분의 1(약 1조2000억원)을 차지하는 최대 시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만 바라보는 제작사도 많다. 중소 게임 개발사들이 미래를 잃었다”라고 밝혔다.


수출만 문제는 아니다. 한국에서 게임은 내수가 수출에 비해 두 배 이상 높은 산업이다. 전문가들은 수출 이상으로 심각한 내수 적신호를 염려한다. 국내에서 한국 게임의 인기는 꾸준히 떨어지고 있다. PC방 점유율 1위 <리그 오브 레전드>가 30%에 달하는 반면, 10%를 넘기는 국산 게임은 오래전 자취를 감췄다. 전성기 18.5%에 달하던 게임시장 성장률은 2%대로 주저앉았다. 산업 종사자도 계속 줄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콘진원)의 <2016 대한민국 게임백서>를 보면, 게임 산업 종사자 수가 매해 6~8%씩 감소하는 추세다. 한때 콘텐츠 산업의 총아로 첫손에 꼽히던 한국 게임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익숙한 설명은 ‘정부 규제에 따른 산업 위축’이다. 게임에 부정적이던 전임 정권들이 연이은 규제를 도입해 산업을 얼어붙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2011년 시행된 ‘셧다운 제도’가 대표적으로 지목된다. 청소년보호법 개정으로 도입된 셧다운제에 따라, 16세 미만 청소년들은 밤 12시부터 오전 6시까지 인터넷 게임을 할 수 없다. 게임 업계의 강력한 저항으로 헌법재판소에 위헌 확인 청구 소송이 제기됐으나 2014년 합헌 결정이 내려졌다. 실제로 셧다운제 시행 이후 게임 산업의 성장률은 점진적으로 떨어졌다.

그런데 게임 산업의 위기를 셧다운제 때문이라고 단정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실효성이 의심스러운 법이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이 셧다운제를 피하기 위해 부모 명의로 게임을 하는 것은 비밀이 아니다. 한 게임사의 마케팅팀 직원은 “유료 결제 회원 가운데 1968년생, 1972년생 등 미성년자의 부모로 보이는 목록이 많다”라고 말했다. 게다가 급성장하고 있는 모바일 게임은 셧다운제 적용 대상이 아니다. 지난달 여성가족부는 모바일·태블릿 PC·콘솔 게임을 셧다운제 범위에서 제외하는 기존 방침을 유지했다.

한국대중문화예술산업총연합 최승훈 정책보좌역은 산업 침체를 셧다운제와 결부하는 것이 ‘착시효과’라고 주장했다. 그는 “셧다운제만 폐지한다고 게임 업계가 살아나지는 않는다. 2011년 이후 게임 산업의 침체는 정부의 모바일 게임 정책 미비 탓이 더 크다. 성장 가능성이 큰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 국내 기업은 후발 주자로 출발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게임 이용자들이 외면하고 업계 종사자들은 떠나는 근본 원인이 따로 있다고 덧붙였다. 양극화다.

국내 게임 회사들 간 매출 격차는 천문학적이다. 콘진원의 <2016 대한민국 게임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온라인 PC·모바일 게임 매출 49%를 상위 3개 회사가 올렸다. 게임 업체 82%는 연매출 1억원 미만인 반면, 업계 1위 넥슨은 올해 1분기 매출만 7570억원에 이른다. 같은 책에서 콘진원은 ‘앞으로 대형사와 중소형사 격차는 더 벌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게임시장 ‘갑’은 ‘비싸고 좋은 게임’ 원치 않아

게임 업체 간 양극화가 질적 저하를 불러오는 이유는 단순하다. 넥슨, NHN, 카카오 등 수위권 업체들은 대부분 게임 유통사인 데 비해, 고사하고 있는 중소기업은 개발사이기 때문이다. ‘갑’의 위치에 있는 유통사는 굳이 ‘비싸고 좋은 게임’을 원하지 않는다. 제작에 많은 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돈이 벌린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아서다. 2010년대 들어 그래픽이나 시나리오에 신경 쓴 ‘대작’ 게임들은 대부분 맥을 추지 못한 반면, 제작비 대신 마케팅에 방점을 둔 게임들은 히트했다. 기술력 있는 중소 개발사 인력들이 업계를 떠난 이유는 정부 규제가 게임 산업의 평판을 떨어트려서가 아니다. 품질이 아니라 마케팅에서 승부가 갈리는 게임 시장의 생태 탓이다.

ⓒ연합뉴스
2015년 5월29일 국내 최대 규모의 게임 축제인 '굿게임쇼 코리아 2015' 현장 모습.

어떤 마케팅 전략이기에 이용자들이 게임의 품질을 아랑곳하지 않게 만들었을까? 바로 사행성 강화다. ‘확률형 아이템’ 판매가 대표적이다. 확률형 아이템이란 ‘뽑기’라고 생각하면 쉽다. 게임 이용자는 현금을 지불하고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품을 산다. 좋은 상품이 나올 확률은 극히 낮다. 축구 게임 <피파온라인 3>은 확률형 아이템 마케팅이 가장 성공한 게임 중 하나다. 이용자는 선수를 사기 위해 돈을 쓴다. 선수 수십명이 들어 있는 ‘패키지’를 사서 까고, 나온 선수들을 다른 사람들과 서로 거래한다. 같은 선수 둘을 합쳐 더 좋은 선수로 만들 수도 있다. 강화가 실패하면 돈을 주고 산 선수들은 사라진다. <피파온라인 3>의 확률형 아이템 콘텐츠는 중독성이 크다. 정작 축구 경기는 하지 않고 선수 패키지 구입과 강화만 하는 이용자가 많다. 2014년 누적 가입자 4000만명을 넘겼다.


주된 게임 플랫폼이 PC에서 모바일로 바뀌며 게임 산업은 더욱 사행화되었다. 모바일 게임은 규제 사각지대이기 때문이다. 게임물관리위원회(게관위)는 이용자가 월 50만원 이상 유료 아이템을 결제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 확률형 아이템 과소비를 막는 유일한 강제 조치다. 그런데 모바일 게임은 예외다. 게관위 관계자는 <시사IN>과 한 통화에서 “모바일 게임은 구글 마켓이나 애플 앱스토어를 통해서만 유료 아이템 결제가 가능하다. 게임사가 결제 한도를 제한하기가 어려운 구조다”라고 밝혔다.

게임 업계는 영업 비밀을 이유로 ‘뽑기’를 통한 아이템 획득률을 공개하지 않아왔다. 그러나 정부 규제 전반에 부정적인 게임 이용자들도 사행성 규제에는 대부분 찬성한다. 지난해 녹색소비자연대 ICT소비자정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90.3%(936명)가 확률형 아이템 강제 규제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비판이 일자 2015년 7월 한국게임산업협회는 자율 규제를 시작했으나 그 효과는 미미했다. 결국 지난해 7월 노웅래·정우택 의원 등은 확률형 아이템의 종류와 획득률을 공개하도록 하는 게임진흥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한국게임산업협회는 강화된 자율 규제 세칙을 발표했으나 노웅래 의원 측은 ‘자율 규제와 무관하게 소관위 심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한국게임산업협회는 오히려 게임머니 결제 한도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게임산업협회 관계자는 <시사IN> 서면 인터뷰에서 “결제 한도를 비롯한 여러 규제들로 사업 모델이 한정된 상황” 때문에 게임의 질이 떨어졌다고 답했다. 확률형 아이템에 대해서는 꾸준히 ‘자율 규제’ 견해를 고수하고 있다. 이용자는 더 많이 결제하고, 관리는 게임사 자율에 맡기겠다는 의미다. 게임 ‘문화’를 즐기던 사람들은 점점 국산 게임에서 손을 뗀다. 대신 사행 ‘사업’의 고객들이 대박을 꿈꾸며 게임 아이템을 결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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