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수 변호사의 사무실 한편에는 두꺼운 보고서 더미가 책장 두 단을 차지하고 있다. 참여정부 당시 그가 참여한 사법개혁위원회 자료집이다. 그는 2003~2004년 사법개혁위원회(사개위) 위원, 2005~2006년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사개추위) 기획추진단장, 2005~2007년 대통령비서실 사법개혁비서관을 지냈다. 문재인 당시 민정수석과도 호흡을 맞췄다. 공직을 떠나서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 등을 맡으며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사법 개혁의 목소리를 꾸준히 냈다. 5월12일 대한변호사협회는 이상훈 전 대법관의 후임 대법관 후보자로 그를 비롯한 변호사 4명을 추천했다.

김선수 변호사를 만나 참여정부의 사법 개혁을 복기했다. 또 당시 경험을 반추해 앞으로의 검찰 개혁 과제를 짚었다. 5월17일 그가 몸담고 있는 법무법인 시민 사무실에서 만났다.
 

ⓒ시사IN 이명익김선수 변호사는 법 개정 없이 대통령 의지만으로 검찰의 직접 수사 인력을 줄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참여정부 당시 사법 개혁의 성과는?

2004년 사개위가 꾸려져 시작된 논의가 2007년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마무리됐다. 공판중심주의(모든 증거를 재판에 집중시켜, 재판에서 나온 심증만을 토대로 판단하는 원칙) 확립, 피의자·피고인의 방어권 증진 등 형사 사법 절차가 상당 부분 개선됐다. 그런데 막판에 두 개가 뒤집어졌다. 검찰의 이해관계를 건드리는 부분이었다.

검찰의 이해관계를 건드린 두 가지는 어떤 내용이었나?

검찰의 피의자 신문조서(피신조서) 증거능력 제한과 재정신청(검찰이 고소·고발을 불기소할 때, 법원에 다시 판단을 맡기는 절차) 확대였다. 현재 검찰 피신조서는 증거능력이 인정된다. 경찰은 이런 권한이 없다. 검찰은 권한을 빼앗긴다고 보아 굉장히 예민했다. 재정신청은 검찰의 불기소에 대한 견제 수단이다. 이 범위를 늘리려고 했는데 검찰 쪽 의견을 대변한 국회 법사위 위원이 막판에 태클을 걸었다. 권력기관은 모든 단계에서 자기 이익을 확보할 수 있는 틈새를 파고 들어가서 최소한 뭐라도 관철한다.

이번에도 검찰 개혁이 쉽지 않아 보이는데?

단계별로 봐야 한다. 법률 개정이 필요 없는 부분과 법률 개정이 필요한 부분을 나눠서 보자. 당장 할 수 있는 건 법률 개정 없이 대통령 의지만으로 가능한 부분이다. 1차적으로 법무부의 탈검찰화다. 현재 검찰 출신들이 요직을 차지하면서 법무부는 검찰의 이익을 대변하는 기관처럼 되어 있다. 장관 인사를 통해 탈검찰화 메시지를 내야 한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김경한·이귀남·권재진·황교안·김현웅)은 모두 검찰 출신이었다. 또 법 개정 없이 검찰의 직접 수사 인력을 줄일 수 있다. 현재 검사 2000~2500명, 수사관 6000명 정도다. 이렇게 많은 인원이 수사를 할 필요가 없다. 검찰의 수사권·기소권 분리 등을 염두에 두고 인력 배치 조정 등을 진행해야 한다.

ⓒ연합뉴스참여연대 회언들이 2월8일 국회 앞에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를 촉구하고 있다.

법 개정이 필요 없는 개혁은 쉽고 빨리 할 수 있지만, 또다시 정권이 바뀌면 퇴보할 수도 있다.

그래서 법 개정이 필요한 부분을 같이 해야 한다. 2007년 검찰 쪽에서 막았던 형사소송법 개정안 통과가 시급하다. 현재 금태섭 의원의 대표발의안(검찰 피신조서 증거능력 제한 관련)과 박영선 의원의 대표발의안(재정신청 확대 관련)으로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제출되어 있다. 검경 수사권·기소권 분리의 전제가 되는 법안이다. 전문위원 검토도 다 끝났고 이견이 없다. 그다음으로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신설이다. 공수처 신설은 국회예산정책처에서 비용추계서까지 내놓을 정도로 준비됐다. 몇 년 동안 얼마가 들고 사람은 몇 명이 필요한지 어떤 조직을 만들어야 하는지 다 나와 있다. 국회만 통과하면 당장 할 수 있다.

수사권·기소권 분리도 핵심 과제로 제시됐다.

현재 검찰은 수사권·기소권·영장청구권·공소유지권 등을 가지고 있다. 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권한이 집중되어 있다. 이를 분리해서 수사권은 경찰에게 줘야 한다. 이 경우 경찰 권력이 비대해질 수 있으니 자치경찰제가 같이 가야 한다. 경찰도 이원화해서 역할을 분산시켜야 한다. 우선은 공수처 법안 통과까지만 가는 데에도 큰 힘이 필요하다. 국회를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가 핵심이다.

하지만 입법 환경이 우호적이지 않다.

당장 법사위 통과가 쉽지 않다는 지적은 맞다. 국회 법사위원장이 검찰 출신인 권성동 의원이고, 자유한국당 간사도 검사 출신 김진태 의원이다. 그래도 지난 대선 과정에서 자유한국당을 뺀 4당 후보가 공수처 찬성 의견을 밝혔다. 검찰에 대한 문제의식은 모두가 공감한다는 의미다.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은 디테일 차이가 있지만 기본 뼈대인 공수처 신설에 찬성한다.

그렇다면 공수처 신설과 관련해 남은 변수는?

여론이 중요하다. 정치권을 움직이면서 검찰 개혁으로 가는 힘은 시민에게서 나온다. 사법 개혁 관련해서 참여정부 당시 블로그에 글을 썼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비서관들에게 블로그 운영을 권했다. 딱히 쓸 게 없어서 사법 개혁 추진을 하나씩 올렸다. 자연스레 홍보가 되었다. 사실 청와대에서도 모두가 개혁에 대한 단일한 생각을 가진 것은 아니다. 그런데 블로그에 글을 올리며 사개추위 논의 방향을 공유하니, 자연스레 이쪽으로 가야 한다는 공감대가 만들어졌다. 검찰 개혁은 그러지 못했다. 이번에는 여론 지지도 어느 때보다 높으니 여론을 잘 끌고 갈 방법도 모색해야 한다.

꾸준히 준비된 사법 개혁과 달리 검찰 개혁은 참여정부에서 본격 시작됐다.

맞다. 문재인 정부는 참여정부 경험을 토양으로 삼으면 된다. 사법 개혁도 그 전까지 일궈놓은 토대를 중심으로 씨를 뿌렸고 참여정부에서 꽃피웠다. 이제 검찰 개혁이 무르익었다. 검찰은 수사와 기소를 다 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둘 중 하나의 권한만 가져도 엄청나다. 다 가지려다 보니 그 속에서 여러 폐단이 나왔다. 수사기관은 여러 개 있어도 된다. 검찰 권력 분산 차원에서 공수처를 만들고, 수사권과 기소권 분리로 나아가야 한다.

기자명 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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