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윤무영박원호(왼쪽) 미시간 대학 정치학 박사. 플로리다 대학 정치학과 조교수를 거쳐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 분야는 유권자 투표 행태, 한국정치, 연구방법론이다.
조석주(오른쪽) 로체스터 대학 정치학 박사. 예일 대학 정치학과 조교수를 거쳐 성균관대 경제학과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 분야는 정치경제학, 비교정치제도이다.

데이터를 다루고 예측 모델을 만드는 사회과학자의 문장에는 보통 “다른 모든 조건이 같다면”이라는 가정이 생략되어 있다. 물론 어떤 연구자도 현실에서 ‘다른 조건’들을 고정시킬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건 물리학이 가정하는 ‘마찰 없는 표면’과 비슷하다. 울퉁불퉁한 변수가 없는 상황을 가정하고 모델을 만든다. 모델이 만들어지면 그때 현실의 울퉁불퉁함을 반영한다. 박원호 교수(서울대)와 조석주 교수(성균관대)는 유권자 행동과 정치제도를 연구하는 정치학자다. 다른 모든 조건을 고정해놓고 하나의 변수를 움직여보았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따지는 접근법이 이들의 핵심 전략이다.

다른 모든 조건은 실제로 같지 않으며, 시점도 방향도 예측 불가능하게 변한다. 그럼에도 유권자 지형이나 경선 결과나 문자폭탄이나 후보 단일화나 텔레비전 토론과 같은 특정 변수의 위력과 방향을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그 외의 나머지 조건을 고정시킨 채 해부해야 한다. 이런 ‘비현실적 가정’에 기반한 엄밀하고 제한적인 접근법이야말로,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전체 현실을 더 잘 예측하게 해준다. 두 연구자와 함께 ①5당 대선 후보 확정(제500호) ②본선 텔레비전 토론(제503호)에 이어 ③본선 당일 개표 과정을 지켜보았다. 5월9일 밤 8시, 지상파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가 공개됐다. 문재인 후보 41.4%, 홍준표 후보 23.3%, 안철수 후보 21.8%였다(실제 개표 결과도 큰 차이는 없었다. 문 후보 41.1%, 홍 후보 24%, 안 후보 21.4%였다). 마지막 대담은 출구조사와 개표방송을 보면서 3시간 동안 진행했다.


세대 투표 경향이 여전히 뚜렷하다. 미국에서는 가족 간 정치 성향이 강하게 대물림되는데, 왜 우리는 한 가족에서도 세대별로 표가 갈릴까?

박원호:한국에서는 가족을 통해 정치 성향이 전승되는지 아닌지, 전승된다면 어느 정도나 되는지, 이런 연구를 하기가 어렵다. 이건 적어도 고등학교 교실에 들어가서 물어봐야 하는데, 정치학 연구자들이 교실에 접근하기가 아주 어렵다. 연구 결과는 아니고 그냥 느낌인데, 우리는 오히려 대학에서 부모의 정치 성향과 반대로 가버리는 경향이 있더라(웃음). 교육 수준과 투표 성향은 대체로 비슷하게 움직이는데, 우리처럼 급격하게 대학진학률이 높아진 나라가 거의 없다. 지금 노령층과 청년·중년층을 비교하면 대학진학률이 꽤 다르다.

출구조사 결과는 대체로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 이전에 예상하던 대로다.

조석주:큰 틀에서는 그렇다. 디테일은 변했다. 문재인·심상정 후보의 득표 합이 50%를 밑돈다는 건 기존 조사 추이보다는 확실히 낮다. 홍준표 후보는 기존 조사 추이보다 좀 더 잘 나왔다. 그 덕분에 지인들끼리 한 내기 몇 개를 지게 생겼다(웃음).

홍 후보의 상대적 선전은 어떻게 봐야 할까?

조석주:박근혜 탄핵 반대파의 결집이 이뤄졌지만, 그것만으로 온전히 설명하긴 어려운 득표력이다. 안보에서나 경제에서나 가장 선명한 보수 포지션, 북한은 제재하고 노조를 때려잡는 보수 포지션 유권자가 갈 곳이 홍 후보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홍 후보가 노동정책은 노조 제압, 교육정책은 전교조 제압, 이런 식의 강경 노선으로 25%를 복원하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한계도 분명하다. 당장 내년 지방선거 때 이 노선으로 수도권에서 단체장을 배출할 수 있을까? 이 극단화 추세를 자유한국당 내부에서 제어하지 못하면 지방선거도 참패할 수 있다.

박원호:지금 자유한국당이 처한 상황에서 홍준표는 최고의 카드였다고 본다. 최고 득표력을 보여줬다. 하지만 바로 그 성공 탓에 자유한국당은 더 오른쪽 구석으로 몰려가게 되었다. 홍 후보의 역사적 역할이 꽤 아이러니하다. 대표 보수 정당의 부활과 고립을 동시에 만들어냈다. 예전 새누리당과 같은 거대 보수 정당으로 빠르게 돌아갈 수 있을까? 그러기엔 오른쪽으로 너무 멀리 왔다. 홍 후보의 24% 득표도 우리가 선거 과정에 몰입한 상태에서는 많아 보이지만, 역사적 관점에선 전례 없는 참패다. 한국 정치의 지형이 크게 흔들린 사실은 변함이 없다.

 

 

ⓒ시사IN 이명익
ⓒ시사IN 조남진
ⓒ시사IN 신선영더불어민주당 선거상황실에서 당직자들에게 손을 들어 보이는 문재인 대통령(맨 위).
자유한국당 선거상황실에서 대선 패배 선언을 하는 홍준표 후보(가운데).
국민의당 선거상황실에서 대선 결과에 승복하는 기자회견을 하는 안철수 후보(맨 아래).

특정 정당의 세력이 쪼그라들수록 극단주의자들이 더 활개 치기 좋은 환경이 된다.

박원호:지금 구도가 특히 그렇다. 자유한국당은 탄핵과 대선 국면을 거치며 극단화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인데, 양당제라면 그것도 어느 정도는 제어가 된다. 양당제에서는 중도로 수렴하라는 표의 압력이 기본적으로 존재하니까. 그런데 지금처럼 다당제 구도에서는 계속 극단으로 끌고 가려는 시도가 힘을 받게 된다. 가운데로 가서 가져갈 표보다 극단 쪽의 표가 더 많아 보이는 상황이 되니까. 지금 자유한국당으로서는 다음 당 대표 선출 등 중요한 정치 일정에서 이 극단화의 압력을 강하게 받기 쉽다.

조석주:지금 야 3당이 다 취약하다. 자유한국당은 탄핵 찬성파와 반대파가 격돌할 것이고, 중도 보수와 선명 보수 간 노선투쟁도 있을 것이다. 다음 전당대회가 대단히 중요할 것이다. 국민의당은 수도권과 안철수 후보를 중심으로 하는 그룹과 호남 그룹의 셈법이 다를 수 있다. 안 후보는 호남에서도 문 후보에게 완패했다. 바른정당도 유승민 후보가 주창한 노선과 김무성계의 노선이 다르다.

박원호:사실상 8당 체제네(웃음).

조석주:특히 미묘한 게, 야 3당의 내부 노선투쟁 결과가 서로서로 맞물려 있다. 예를 들어 자유한국당 노선투쟁에서 극우파와 온건파 중 누가 승리하는가는, 바른정당이 향후 노선을 결정할 때 매우 중요한 변수다. 문재인 정부 집권 첫 1년이 특히 중요한 이유가 그것이다. 야 3당이 고차방정식을 푸는 동안, 어떤 결과물이 집권 세력에 가장 유리할지 미리 내다보고 정치적 전략을 생각해야 한다. 어느 선까지 함께하고 어디서부터 고립시킬 것인가를 총론이 아니라 각론별로, 정당 단위가 아니라 당내 계파 단위까지 쪼개서 계획해야 한다.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 모두 여당이 과반에 못 미친 채로 출발하지만, 결정적 차이는 야당의 상태다. 노무현 정부는 아주 강력한 단일 야당인 한나라당을 상대해야 했다. 문재인 정부가 상대할 야당은 정의당까지 넷으로 갈려 있다. 정부에 맞서서 야당의 목소리를 한데 묶어낼 만한 의회 지도자도 없다. 새 정부가 하기에 따라서 상당한 성과를 올릴 수도 있는 구도다.

박원호:야 4당이 대정부 통일전선을 펴기가 쉽지 않다는 데 동의한다. 서로 노선과 지지층과 이해관계가 많이 달라서 2002년 한나라당처럼 강력한 대정부 전선을 치기는 어렵다. 하지만 하나 변수라면, 개헌이다. 문재인 후보가 내년 지방선거와 동시에 개헌 투표를 약속했는데, 야 4당 처지에서는 개헌 정국이 연대의 거점을 제공해줄 수 있다. 이를테면 국정원 개혁과 같은 이슈에서 야 4당이 단일 대오를 이룰 가능성은 별로 없다. 하지만 개헌 정국이라면 그게 가능할 수도 있다. 문재인 정부는 개헌 문제를 대단히 섬세하게 다루지 않으면 ‘여당 대 야 4당’ 대립구도에 갇힐 수 있다.

ⓒ연합뉴스
ⓒ연합뉴스바른정당 당사에서 당직자들을 격려하고 있는 유승민 후보(위).
정의당 선거상황실에서 노회찬 원내대표와 환담하는 심상정 후보(아래).

 

새 정부에게도 5당 체제에서의 통치는 상당히 새로운 도전이 될 것 같다.
박원호:시간을 좀 거슬러 올라가 보면, 국회의 탄핵소추안 의결 이후 당시 새누리당에서 원내대표 선거가 있었다. 여기서 탄핵 찬성파와 반대파가 붙었는데, 찬성파 후보인 나경원 의원이 반대파 후보 정우택 현 원내대표에게 아슬아슬하게 졌다. 탄핵소추안 가담 의원 수를 생각하면 이길 수도 있는 선거였다. 만약 여기서 탄핵 찬성파가 당권을 잡고, 그 위에 인명진 전 비대위원장 같은 사람이 들어와서 탄핵 반성 노선을 확고하게 하고, 뭐 그런 식으로 갔다면 어떻게 됐을까? 탄핵 반대표가 빠져나가니 대선 성적표 자체는 더 나빴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쨌든 자유한국당·바른정당 분당은 없었을 것이고, 보수당의 극단화 딜레마도 지금보다는 덜했을지 모른다. 그러면 대선 이후의 구도는 지금과는 상당히 달랐을 것이다. 새누리당 내부 경쟁에 불과한 이 원내대표 선거가 의외로 한국 정치사 전체에서 결정적 선거로 훗날 평가받을지도 모른다.

조석주:그러고 정작 나경원 의원은 탈당도 안 했다(웃음). 5당 체제는 변수가 너무 많아서 예측 자체가 쉽지 않다.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다. 당장 지방선거를 몇 개 정당으로 치르게 될지도 알 수 없다. 기존처럼 진보-보수 거대 양당으로 통합되는 흐름이 생길 수도 있다. 반대로 5개 정당이 독자 생존을 위해 선거제도를 다당제적인 방향으로 바꾸는 합의에 도달할 수도 있다. 이후 한국 정치의 경로를 결정하는 중대한 갈림길이다.

새 정부의 집권 첫해 노선을 두고 관측이 분분하다. 개혁 드라이브를 걸 것인가, 협치를 우선할 것인가로 갈리는 것 같다.

조석주:그 이분법은 좀 이상하다. 협치라고 하면 자기 내용을 무조건 양보하는 것처럼 말하는데, 그렇지 않다. 대선 과정에서 자유한국당 외에 4당 후보는 몇몇 개혁안에 대해서 이미 상당히 근접해 있는 상태다. 4당 후보가 합의한 내용부터 풀어나가면 협치와 개혁은 동시에 가능하다. 자기 의제를 양보하지 않는다고 문제인 건 아니다. 지나치게 당파적인 이슈를 던지는 게 문제일 뿐이다.

박원호:박근혜 정부를 되짚어보면 ‘지나치게 당파적인 이슈’가 뭔지 알 수 있다. 박근혜 정부의 몰락에는 박근혜 게이트가 결정적이었지만, 나는 그 이전에 나왔던 두 장면이 특히 상징적이었다고 본다. 하나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다. 보수 정당 지지 기반 중에서도 아주 일부만 열광하는 좁은 당파적 이슈를 던져서, 자신의 지지 연합 중에서도 큰 덩어리를 통치로부터 배제했다. 두 번째는 2015년 6월, 행정부의 ‘시행령 통치’를 제한하자는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장면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유승민 당시 원내대표를 향해 “배신의 정치”라고 독설을 퍼부은 것도 이때다. 이날 박 전 대통령은 야당뿐만 아니라 의회 전체를 배제하고 통치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드러냈다. 이렇게 여당 지지 기반을 배제하고 여당 그 자체마저 배제한 결과가 2016년 총선 참패다. 박근혜 정부는 ‘배제하는 통치’로 기록될 것 같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반면교사다.

조석주:동의한다. 이번 대선은 근본적으로 촛불 민심의 자장 안에서 치러졌다. 그 말은, 촛불을 불러온 ‘배제하는 통치’를 더 이상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기도 하다. 대단히 좁은 의미의 당파적 동원과, 반대파를 절멸시키고 정치적 자유를 박탈하려는 시도가 조기 대선을 불러온 근본 원인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좁은 당파적 이익을 극대화하고, 그를 통해 핵심 지지자만 동원하고, 그 힘으로 뭘 어떻게 해보려는 정치의 시대를 끝내야 하지 않을까.

박원호:그런 것이 정치의 근본 문제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주요 개혁 과제를 최대한 빠르게 풀어내기 위해, 지지세가 가장 강한 핵심 그룹을 확 동원해서 그 힘으로 돌파하려는 유혹이 들 수 있다. 이게 너무 과하면 ‘배제하는 통치’가 된다. 이 힘을 너무 안 써버리면 그건 또 그것대로 운전대를 놓아버리는 결과가 된다. 우리가 쉽게 구분하기는 했지만, ‘다수파를 만들어내는 이슈’와 ‘지나치게 당파적인 이슈’의 구분은 언제나 미묘하다. 그건 정치가의 능력에 달린 문제다. 의회 내에서 다수파를 만드는 이슈, 일반 유권자 사이에서 다수파를 만드는 이슈를 찾아내고, 거기서부터 풀어나가야 하지 않을까.

조석주:김영삼 정부는 출범 직후 찬반양론이 격렬하지 않고 여론 대다수가 동의할 만한 개혁 과제를 밀어붙여 성과를 냈다. 예를 들면 군대 내 사조직인 하나회 청산이나 금융실명제 같은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그런 개혁 과제가 무엇이 있을까. 법치의 복원이라거나 검찰 개혁 같은 과제가 후보가 될 수 있겠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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