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나라가 이 지경까지 왔는가. 기상천외한 국정 농단으로 대통령은 파면되어 영어의 몸이 되었다. 그를 보좌하던 이들도 감방에 가 있다. 더 한심한 것은 한반도가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인데도 우리 정부가 방관자로 안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민생은 날로 피폐되고 청년실업, 양극화, 그리고 미래 경제에 대한 불확실성 등은 우리 모두를 절망케 하고 있다. 대통령을 잘못 뽑아서 생긴 일들이다.

사람마다 판단 기준은 다를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상식과 순리를 따르고 법을 잘 지키는 ‘보통 사람’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 행사장에서 우연히 만난 아이들을 전용차로 집까지 직접 바래다준 아이슬란드의 젊은 대통령 귀드니 요하네손. 비록 아이슬란드가 인구 35만의 작은 나라이지만 대통령의 이런 모습은 지지율 97%라는 경이적 기록을 가져다줬다. 친절을 넘어서 국민들과 호흡하고 그들과 더불어 사는 ‘보통 사람’ 대통령이기에 가능한 모습이다.

그러려면 새 대통령부터 특권의식이 없어야 한다. 제왕적 대통령은 지도자의 심성에 내재하는 특권의식 탓에 나타나는 것이다. 이 점에서 핀란드의 50대 총리 유하 시필레의 이야기가 마음에 와 닿는다. 2015년 11월 연정 논의 때문에 수도 헬싱키에서 자신의 고향인 핀란드 북부 오울루로 가는 비행기를 놓친 그는, 이륙을 앞둔 응급수송 비행기에 올랐다. 부인은 일반 좌석에 태우고 본인은 화장실에 앉아 한 시간 남짓한 비행을 했다고 한다. 정치 지도자들이 특권의식 없기로 유명한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이야기지만 참으로 감동적이다. 경호와 의전에 구애받지 않고 국민들에게 살갑게 다가가는 그런 대통령을 한 번쯤 가졌으면 하는 게 내 소망이다.

소통을 잘 하는 대통령. 이 또한 내가 바라는 새 대통령의 이상적인 모습이다. 가급적 기자회견이나 타운미팅 같은 것도 수시로 열어 국정의 흐름을 국민과 공유해야 한다. 소통은 민주사회 지도자의 제일가는 덕목이다. 그러나 이러한 형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소통의 내용이다. 감언이설로는 국민을 감동시키지 못한다.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는 계산된 소통보다는 진실을 용기 있게 말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캐나다의 장 크레티앵 전 총리는 안면근육 마비 때문에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있었고 퀘벡 주 출신으로 영어도 서툴렀다. 정적들은 그런 이가 캐나다의 지도가가 될 수 있겠느냐고 비아냥댔다. 그러나 그는 총리직에 당선되었을 뿐 아니라 3선 총리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남겼다. 쇼가 아니라 진실로 국민과 소통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연합뉴스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서울 여의도 자유한국당 당사를 예방, 정우택 원내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왼쪽 부터 자유한국당 이철우 사무총장, 문 대통령, 정 원내대표, 이현재 정책위의장. 2017.5.10

대통령은 국정 운영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다. 개별 정책에 대한 지식과 경륜보다는 유능한 참모와 각료들을 적절하게 충원해 활용하고 이들과 더불어 국정을 조화롭게 다룰 수 있는 지혜가 요구된다. 대통령의 독선은 종종 파열과 재앙으로 이어진다. 차라리 2%가 모자란 대통령, 그래서 참모들과 계급장을 떼고 치열하게 토론하여 결론을 도출해내는 그런 대통령이어야 한다.

또한 새 대통령은 선택과 집중의 국정 운영을 해야 한다. 과거 정부가 그래 왔듯이 100대 국정 과제를 설정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모두를 임기 내 실현할 수는 없다. 우선순위를 정하고 국익과 민생에 직결되는 대표 과제들을 먼저 선정하며, 이를 집중적으로 이행할 수 있는 그런 대통령이어야 한다. 먼저 북한 핵, 그리고 강대국들의 ‘코리아 패싱’을 잘 관리해서 한반도 평화를 구축하는 것이 최우선 국정 과제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경제다. 젊은이에게 희망을 주고 양극화를 극복하는 동시에 성장동력을 잃지 않도록 하는 정책이 시급하다. 적폐 청산도 중요하지만, 자칫 여기에 올인하면 완장 찬 정부가 되기 쉽다. 구조적 적폐가 한칼에 해소되는 것도 아니다.

마지막으로 통합의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이미 이념·세대·계층으로 갈린 지 오래다. 승자독식의 대통령제 아래서 이는 더 심해질 수 있다. 분열과 대립의 상처를 치유하고 조화와 통합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현재 5당 구도에서 대통령 홀로 국정을 운영하기가 쉽지 않다. 협치만이 통합에 이르는 지름길이다. 협치는 소통과 공유, 그리고 고른 인재의 등용에 달려 있다.

헌법을 준수하고 국민을 하늘같이 여기는 동시에 인정과 의리를 중시하는 ‘보통 사람’ 대통령이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기자명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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