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직인 나도 이런데 보통 엄마들은 오죽하겠어요.” 학교생활과 친구관계 등 이런저런 양육 관련 얘기를 하던 중이었다. 엄마야! 무슨 이런 ‘잘난 말씀’을 7000원짜리 짬뽕을 앞에 놓고 하시는지. 전문적으로 양장피라도 한 접시 시켜놓고 하시던지.
양육자의 자질에는 경험(이라 쓰고 ‘구력’이라 읽는다)이 절대적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성격이나 능력의 좋고 나쁨보다 양육자로서 얼마만큼 시간을 보내고 에너지를 썼는지가 좌우한달까. 특출한 슈퍼우먼이나 남다른 혜안의 소유자가 아니라면, 수없는 시행착오와 번민과 자학과 ‘삽질’의 나날을 보내고 나서야 많이 내려놓고 겨우 자리 잡는 게 이른바 ‘보통 엄마’ 노릇이다.
어릴 때에는 (부모가) 현명하게 이기고 10대에는 현명하게 져야 한다는 양육 지침이 있다. 옳은 얘기다. 그런데 아이의 성장기는 뜻대로 분절되지 않는다. 호르몬이 돌기 시작하는, 아이들마다 발달이 제각각인 시기에는 부모 자식 간에 ‘밀당’밖에 답이 없다. 저절로 되지 않는다. 쉽게 되지도 않는다. 양육자의 양육 외 ‘스펙’이 작동하지 않는 세계이다. 그런 면에서 앞서의 ‘전문직 엄마’는 조금 어린이스럽다. 혹시 친구를 잘못 사귀어서 그런 건 아닐까.
양육자의 또 다른 실수는 ‘아이를 사람으로 여기는 것’이다. 많은 연구와 사례에 따르면 만 12세까지는 ‘인간’이 아니다. 뇌 발달상 그렇다. 적어도 만 18세는 되어야 ‘인간 뇌’의 기초공사가 마무리된다고 한다(참고로 개는 1년, 침팬지는 3년 걸린다). 적극 공감한다. 그때까지는 돌봐줘야 하는 게 인간의 숙명이다. 좀 모자라게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는 것은 괜찮지만 절대 삼가야 할 게 있다. ‘화내는 것’이다.
화가 나는데도 꾹 참고 얘기했다가 아이로부터 “그냥 소리를 지르세요. 더 무서워요”라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지만, 쌓아놓아서도 안 되지만 적어도 아이에게 풀어서는 안 된다. 우리에겐 밟거나 차도 되는 페트병이 있고 언제든 가서 떠들 뒷산 대나무 숲도 있다. 보통 “철석같이 약속을 해놓고는” “정신을 어디다 두고 다니기에” “태도가 그게 뭐냐” 등의 말을 붙인다. 이런저런 명분을 갖다 붙이지만 결국 양육자인 내 기분이 나쁜데 아이도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 화가 치민다. 아이가 어떻게 내 뜻대로 움직이나. 나 자신도 그러지 못하는데(간밤에 먹어치운 김치전은 어쩔 거야). 우리는 개나 침팬지, 돌고래에게 화를 내지는 않는다.
어른도 겪기 싫은 일을 아이에게 강요하지 말자. 장시간 노동이 싫듯이 장시간 학습도 싫다. 기득권과 불로소득이 갑질하는 세상에서 되지도 않는 지위를 만들어주려고 아등바등 부모의 시간과 에너지를 탕진하지 않을 일이다. 그럼에도 험한 세상 어떻게 살아갈지 걱정된다면 학원이 아니라 비정규직 남용과 차별을 막는 단체나 알바노조에 송금하는 게 낫다. 4차 산업과 양극화가 나란히 달리는 시대, 성적보다는 최저임금 인상 폭이 내 아이의 미래를 좌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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