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엿새 앞둔 5월3일, 문재인·홍준표·안철수·유승민·심상정 후보의 일정을 취재하며 곁에서 지켜본 김동인 기자, 김형락·나경희·전광준·김민수 인턴 기자가 한자리에 모여 못다 한 이야기를 풀었다. 솔직한 방담을 위해 별명을 사용했다. 별명은 대선 국면에서 화제가 된 문구 등에서 따왔다.


주적은저쪽(주):경선 과정부터 취재했다. 벌써 옛날 일처럼 아득하다.

일분쓰겠다(일):국민의당 광주 경선 때 식당에 점심을 먹으러 갔는데 아저씨들이 전화 돌리느라 정신없더라. ‘주민등록증만 들고 오면 되니 한 번만 찍어주소’라고. 손학규 지지자들이었는데 결과는 안철수 1위, 박주선 2위였다.

이보세요쫌(이):국민의당 광주 경선 때 원광대 학생들이 불법 동원되는 현장을 목격했다. 입구에 대학생들이 서 있기에 처음에는 다른 행사가 있는 줄 알았다. 스마트폰을 보며 삐딱하게 앉아 있고 딱히 정치에 관심 있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백바지’를 입은 남성이 바람을 잡으니까 재밌는 듯 다 같이 따라하더라. 굉장히 이상한 광경이었다. 결국 선관위가 고발했다.
 

ⓒ연합뉴스5월3일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가 전북 남원시 유세에서 지지자들에게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광주 경선에서 안희정 후보 연설을 듣다가 깜짝 놀랐다. 연설 말미에 뜬금없이 “서천 앞바다 꼴뚜기가 제철입니다. 전라남도 바닷가에 봄 도다리가 제철입니다. 2017년 제철, 제 음식 저 안희정의 도전입니다” 하는데 응? 도다리쑥국 먹고 싶어지는 연설이었다(웃음).

따뜻한보수(따):스피치라이터가 쓴 느낌이 아니었다. 원래 준비했던 원고는 세대교체를 강조하는 메시지였는데 연단에 올라 안 후보가 즉흥적으로 평소 생각을 이야기했다고 한다. ‘안희정 마크맨’ 단톡방이 난리가 났다. 준비된 연설이 아니라서 공보 쪽에서 기자들에게 완성본을 바로 보내주지 못했다. ‘사고 아니냐’는 말에 공보 담당자는 허허 웃으며 ‘잘했잖아’라고 얼버무렸다.

:이재명 후보 연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올리게 하는 힘이 있더라. ‘욕설 논란’ 같은 자신의 치부도 먼저 이야기했다. 호응이 대단했다. 지지자들이 현장 분위기와 다른 경선 결과에 항의하며 물건을 던졌다. 홍재형 선관위원장이 ‘안정희’ 등 안희정 후보 이름을 계속 틀려 조용하던 안 후보 지지자들이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 광주 경선에서 안희정 후보 장남 안정균씨를 〈시사IN〉이 처음으로 인터뷰했다. 정균씨가 “아버지가 집에서도 민주주의 얘길 많이 한다. 제가 늦잠 자는 사소한 문제로 100분 동안 잔소리를 하신다. 듣다 보면 정신을 잃…(웃음)”이라고 말했다. 안희정 후보가 ‘문재인 후보와 캠프의 비뚤어진 태도가 사람을 질리게 한다’고 격정적인 글을 페이스북에 올린 적이 있는데, 당시 집에서 경선 토론을 보다가 썼다는 비화도 공개했다. 정균씨는 더불어민주당 유세단에 합류해 활동했다. 이때 한 번 더 인터뷰했는데 이후 더불어민주당에서 따로 정균씨를 인터뷰해 보도자료로 뿌렸다.

:경선 직후 안철수 후보 지지율이 오르면서 문재인·안철수 후보 유세를 비교하는 기사도 많이 나왔다. 실제로 어떻게 다른가?

누굽니꽈아(누):지지자 연령대가 확 차이 난다. 안 후보와 문 후보가 하루 차이로 연이어 부산 서면을 찾았다. 현장에서 보니 안 후보 유세를 보러 온 분들은 40대, 50대 300명 정도였다. 나머지는 지나가다가 ‘와, 안철수다’ ‘신기하다’ 하며 멈춰선 유동인구다. 문 후보 유세에는 확실히 일부러 찾아온 2030 여성이 많았다. 유세 전 카페에서 기다리는데 여성 지지자 2명이 색종이를 오려서 응원 팻말을 만들고 있더라. 멘트는 ‘달님 취뽀’. 지금 백수니까 대통령으로 ‘취업 뽀개기’하라는 의미다. 다른 하나는 ‘대깨문’. 대가리가 깨져도 문재인.

:2012년 대선 때 안철수 후보 지지자들은 대부분 젊은 세대였다. 격세지감이다. 지지자 수나 밀도는 어떤가?

:안 후보 유세 때는 어느 정도 움직이면서 찍을 수 있었다. 문 후보 유세에선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민주당 유세의 경우 한 시간 전부터 지역 의원들이 나와서 사전 유세를 한다. 문 후보는 꼭 주제곡과 함께 ‘모세의 기적’처럼 뒤에서 지지자들을 가르며 등장하도록 동선을 잡아둔다. 유세차 앞 발판에 올라 꽃다발을 받거나 아이를 안는다. 스마트폰 플래시 퍼포먼스도 꼭 한다. 안 후보는 상대적으로 지지자 스킨십을 덜 한다고 느꼈다. 경호원과 수행원에게 둘러싸여 사진기자도 제대로 접근하기 힘들었다. 선거가 진행되면서 스킨십도 늘고 퍼포먼스가 점점 문 후보와 비슷해지는 것 같다.

 

 

ⓒ시사IN 신선영5월3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당사 앞에서 사전투표 참여 독려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맞다. 안철수 후보도 꼭 아이를 들어올린다. 서울 유세에서 비서진들이 아이를 섭외해 올려놓았는데 안 후보 연설이 길어져 곧바로 율동으로 넘어갔다. 결국 아이를 다시 내려보냈다. 그리고 ‘떴다 떴다 안철수’ 율동을 하는데… 안 후보가 계속 같은 쪽 팔다리를 동시에 올렸다(웃음).

:문재인 후보 유세에 가면 각종 ‘굿즈’를 판다. 하늘색 응원봉이 하나에 1만원인데 엄청 잘 팔리더라. 상인들이 수요를 잘 파악했다. 문 후보 유세는 아이돌 콘서트를 보는 듯하다. 지지자들의 열광적인 반응은 단연 압권이다.

:반박하겠다. 여러 면에서 더 압도적인 건 조원진 새누리당 후보 지지자들이다.

:아, 그건 이길 수 없다(일동 웃음).

:박근혜 전 대통령이 수감된 서울구치소 앞 유세에 갔다. 지지자도 울고 조원진도 울먹였다. 조 후보는 자신의 유세 현장인데도 자기 이름이 아니라 박근혜 이름을 불러달라고 했다. ‘(박)정희곰 근혜곰 원진곰’으로 시작하는 새누리당 선거송 ‘곰 세 마리’를 ‘떼창’하면서도 아무도 율동을 하지 않더라. 조 후보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절하는 걸 앞에서 영상으로 찍다가 지지자들에게 끌려나왔다. ‘(구치소로 가는) 기운 전달을 막는다’고(웃음).

:조원진 후보 유세는 특이하다. 보통 ‘신촌 유세’ 하면 신촌에 있는 지지자를 대상으로 한다. 그런데 조 후보는 시청 앞에서 ‘자, 시청 유세가 끝났습니다. 우리 모두 신촌으로 갑시다!’라고 한다. 시청에서 신촌까지 한 시간 동안 걸어간다. 신촌 유세가 끝인가 했더니 ‘자유한국당으로 갑시다!’라고 하더라. 지지자들 사이에서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와 단일화 여부를 두고 싸워서 난리가 나기도 했다.

 

 

 

 

ⓒ시사IN 인턴 기자 김민수 3월25일 국민의당 광주 경선에 불법 동원된 원광대 학생들이 관광버스에 오르고 있다.


:다른 후보는 카메라로 찍으면 의식하면서 살짝 흐트러지는 모습을 보인다. 홍준표 후보는 예외다. 영상을 대놓고 앞에서 찍어도 전혀 신경을 안 쓴다(웃음). 카메라뿐 아니라 관중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강남 유세에서 ‘12월9일 대선’이라고 말실수를 했다. 현장에서 지지자들이 ‘5월9일이에요!’라고 했는데도 전혀 듣지 않고 반복했다. 결국 캠프 관계자가 알려줘 바로잡았다. 박근혜가 아직 대통령하는 줄 알고 그랬다고(웃음). 이날 나경원 의원과 복당한 이은재 의원이 지원 유세에 나서기도 했다.

:홍준표 후보는 어딜 가든 하고 싶은 얘기만 하는 것 같다. 5월3일 마포경찰서 홍익지구대를 격려차 방문했는데 ‘범죄 발생이 많다’는 애로사항을 듣더니 결론이 ‘집권하면 폭력시위는 용서 안 한다’고(웃음). 4월21일 관훈토론회가 끝난 뒤 ‘돼지흥분제’ 논란 해명을 할 때도 뜬금없이 ‘그 하숙집에 있던 S대 사람들이 한국 경제를 쥐고 있는 분들’이라고 했다. 뒤에 있던 민경욱 미디어본부장 표정이 몹시 안 좋았다. 홍 후보 지지율이 오르자 사인을 받거나 사진을 찍으려는 지지자들이 자주 보였다. 하지만 ‘개그감’이 있는 것과 별개로 홍 후보의 ‘성범죄 모의’나 혐오 발언은 심각했다.

:그런 점에서 심상정 후보의 존재가 돋보였다. 4월26일 심상정 후보가 울산 현대중공업 정문에서 조선산업 노조연대 협약식을 할 때였다. ‘기자분들 질문 있으세요, 없으면 정리할까요?’ 하는데 갑자기 한 청년이 구석에서 앞으로 걸어 나왔다. 기자는 아닌데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다고, “어제 토론에서 성 소수자 위해 1분 써줘서 고맙다. 그 말 하려고 시험공부도 안 하고 왔다”라고 말했다. 부들부들 떨며 양손을 꽉 쥐면서 말하는데 얼마나 긴장했는지 전해졌다. 그때 심 후보가 “아유, 안아줘야지”라며 일어서서 앞으로 나왔다. 다른 주요 후보보다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던 후보가 이런 희망도 줄 수 있구나 싶었다.

:〈시사IN〉 페이스북에 올라온 그 영상을 보고 울었다는 이들이 많았다. 800회 넘게 공유됐다. 다음 날 심 후보가 성신여대를 찾았는데 성신여대 성 소수자 모임 ‘Qrystal’ 회원들도 감사의 뜻을 전했다. 우는 회원들을 심 후보가 안아주었다. 심 후보를 만나면 소수자가, 2030 세대가 우는 게 하나의 ‘현상’으로 주목받았다. 심 후보는 연설 때 ‘애드리브’도 많이 했다. 시장에 가면 끊임없이 먹으면서 캠프 사람이나 기자에게도 권했다. 전도 뒤집고(웃음). 인간적 매력이 있더라.

 

 

 

 

ⓒ시사IN 인턴 기자 나경희 4월26일 심상정 후보가 자신을 응원하기 위해 찾아온 성 소수자를 안아주고 있다.


:‘동성애 발언’이 있던 토론회 다음 날인 4월26일 문재인 후보 일정 중에 성 소수자들이 항의하는 일이 있었다. 물론 경호가 허술했던 부분도 없지 않다. 하지만 ‘항의자들이 후보 멱살을 잡았다’는 잘못된 정보가 꽤 오래 바로잡히지 못한 채 돌았다. 캠프에서 경찰에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는 했지만, 빠른 대처가 아쉬웠다.

:안철수 후보의 ‘대형 단설 유치원 설립 자제’ 발언 후폭풍이 거셌다. 이후 안철수 후보가 4월14일 ‘학부모와 함께하는 육아정책 간담회’를 열었는데 그 자리에 온 학부모들이 좀 이상했다. 병설·단설 등 국공립 유치원 확충이 아니라 사립 유치원 지원 확대를 요구했다. 정책을 설명하려고 참석한 이옥 교수가 “원장님이세요?”라고 되묻기도 했다. 학부모들에게 어디서 오셨냐고 물어보니 사립 유치원에서 연락을 돌렸다고 했다. 이해관계자보다는 진짜 현장에서 어려움을 느끼는 학부모 목소리를 들어야 했는데 기획을 어설프게 한 것 같았다.

:유승민 후보가 4월21일 열린 ‘희망페달 자전거 유세단 발대식’에서 너무나 해맑게 자전거를 탔다. 발대식 직후 의원총회 소집 요구가 있었다고 주호영 원내대표가 백브리핑을 했다. ‘웃픈’ 장면이라 기억에 남는다. 바른정당 후보 선출 때 랩배틀 공연이 있었는데 김성태 의원이 손으로 ‘피스’ 모양을 만들며 선글라스 끼고 춤을 췄다. 김무성 의원은 가수 노래에 맞춰 리듬을 타고 손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었다. 바른정당 의원들의 탈당 사태가 일어나고 보니, 신나게 몸을 흔들던 두 의원의 그때 모습이 자꾸 겹쳐진다.

:촛불집회가 탄핵으로 이어져 시작된 대선인데 중간에 안보 국면으로 접어들더니 홍준표 후보가 떠오르면서 ‘촛불 대선’이라는 점이 잊히는 것 같다.

:그래도 지금과 같은 구도와 지지율은 촛불 대선이 아니었다면 달랐을 거라고 생각한다. (진동 소리) 방금 문자가 왔는데, 안철수 후보가 걸어서 120시간 동안 유세를 한다고 한다.

:하아….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