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대륙에 가뭄이 덮쳤다. 가뭄은 죽음을 재촉했다. 1983~1985년 에티오피아에서는 100만명이나 굶어죽었다. 같은 아프리카 대륙인데 보츠와나에서는 한 명도 굶어죽은 이가 없었다. 가뭄이 보츠와나만 피해간 것도 아니었다.

희한한 점은 또 있다. 에티오피아에서 대기근이 발생하기 한 해 전 곡물 생산량이 역대 최고였다. 기근이 발생한 해에도 평년보다 곡물 생산량이 높았다. 어찌된 일인지 곡물이 시장에 풀리지 않았다. 오히려 사재기로 가격만 올라갔다. 폭등한 곡물 가격을 감당하지 못한 가난한 주민들만 굶어 죽어갔다. 에티오피아와 보츠와나. 두 나라엔 차이가 있었다.


에티오피아 대통령은 군부 쿠데타로 권좌에 오른 멩기스투 하일레 마리암 대통령이었다. 독재자에게 권력은 표가 아닌 총구에서 나왔다. 시민들에게 표를 구걸하지 않아도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독재자는 굶어죽는 이들에게 관심이 없었다. 반면 1966년 영국에서 독립한 보츠와나는 일찌감치 민주주의를 정착시켰다. 독립 이듬해인 1967년부터 보츠와나에서는 다이아몬드가 발굴되었다. 흔히 아프리카에서 지하자원이 나오면 ‘자원의 저주’라 불리는 내전으로 치닫는다. 아이러니하게도 풍부한 자원이 죽음을 재촉한다. 보츠와나는 달랐다. 다이아몬드에서 나온 수입으로 정부 재정을 튼튼히 한 다음, 그 혜택을 국민에게 나눠주었다. 에티오피아에서 굶어죽는 사람이 속출할 때, 보츠와나 정부는 취약계층에게 직접 식량을 배급했고 일자리를 공급했다(〈민주주의〉 후마니타스, 2016).

너무나 극단적인 비교라고? 경제학자 아마르티아 센은 민주주의와 기근의 관계를 연구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그에 따르면, 민주주의가 정착한 나라에서는 기근이 발생하지 않았다. 즉 기근은 자연재해라기보다는 인재라는 것이다. 누가 자원 배분권을 가지고 있느냐의 차이다. 에티오피아에서는 독재자가 식량 배분권을 쥐고 있었고, 보츠와나는 투표권을 가진 시민들에게 있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내가 투표하는 이유’를 담았다. 촛불집회 사회를 보았던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 고 백남기씨의 큰딸 백도라지씨, 해직 언론인 강지웅 PD, 블랙리스트 반대 농성을 벌였던 가수 손병휘씨를 비롯해 심보선 시인, 조남주 소설가,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등이 글을 보내왔다. 조남주 소설가의 말처럼 ‘투표의 목표와 의미는 유권자마다 다를 것이다’. 독자 여러분도 이 글을 통해 ‘투표하는 손’ 대열에 동참하기를 바란다. 한 표는 주권자에게 주어진 자원 배분권이다.

지난 제487호에 이어 안종범 업무수첩 20권을 추가로 입수했다. 이제는 안 전 수석의 글씨를 ‘즉독즉해’할 수 있는 주진우·차형석·김은지·신한슬 기자가 살폈다. 기사를 읽다 보면 투표로 바꿔야 할 적폐의 실체가 드러날 것이다.

기자명 고제규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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