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나를 사람 취급하지 않아.” 한국이 아닌 나라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는 아이들이 한국에 돌아와서 많이 하는 말 중 하나다. 피부색도 같고 언어도 같은 고국에 돌아와서 정작 아이들이 경험하는 것은, 고국이라는 편안함보다는 그 어떤 다름도 용납하지 않는 다층적 폭력이다. 학교에서, 길에서, 버스나 전철 등 여기저기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자신을 ‘사람 취급’하지 않는다고 느낀다. 그 아이들이 말하는 사람 취급이란 생물학적 나이와 상관없이 한 인격적 존재로서 존중받는 것을 의미한다. 언어나 피부색이 달라도 사람 취급을 받으며 사는 것에 익숙했던 아이들이, 편하게 느껴야 할 고국에 돌아와서 오히려 자신의 존재가 곳곳에서 함부로 취급되는 고통스러운 경험을 한다. 어떠한 방식으로든 한 인간으로서 자유와 존중의 맛을 본 아이들은, 한 개별적 존재로서의 생각이나 취향은 아예 무시되는 학교생활이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폭력성을 온몸으로 예민하게 느낀다. 그런데 한 번도 자신이 한 인간으로서 존중받는 경험을 해보지 않은 아이들은, 정작 자신들이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한국 사회에서 아이는 ‘절대적 피해자’이다. 절대적 피해자란 자신이 피해자라는 사실조차 모르는 존재이다. 보통 피해자라면, 자신이 어느 특정한 요인들에 의해 피해를 받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자신에게 가해지는 피해에 저항하거나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을 모색하곤 한다. 절대적 피해자는 이렇게 저항할 필요나 방법조차 모른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들어가면서부터 아이들은 언어적·심리적·물리적·제도적 폭력의 절대적 피해자로서 살아가게 된다. 절대적 피해자들이 지닌 공통점이 있다면, 그들은 ‘왜’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는 점이다. 물음표를 박탈하는 사회에서 성숙한 민주주의 시민을 양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연합뉴스 4월27일 오후 대전 동구 쌍청회관에 체험학습을 나온 초등학교 2학년 학생들이 직접 만든 장승을 앞에 두고 환하게 웃고 있다.

반말과 존댓말이 통용되는 한국에서 아이들은, 어른들이 함부로 하대할 수 있는 대상이다. ‘아이답지 못하다’는 표현으로 어른들은 아이들의 그림, 일기장 또는 시 등을 감시하고, 어른들이 생각하는 아이다움의 범주를 벗어나면 처벌 대상으로 삼는다. 2015년 이른바 ‘잔혹 동시’ 논란이 생기게 된 것은 한국 사회가 21세기에 들어서도 여전히 아이들을 감시와 훈육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전형적인 예증이다. 아이들은 언제나 어른들의 감시 아래 어른의 말을 잘 듣는, 공부 잘하고 착한 모범생으로 자라야 한다는 훈육을 곳곳에서 받고 있다. 가정에서, 유치원에서,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에서 이러한 감시와 훈육을 매개로 하는 ‘모범적 아이 이데올로기’의 틀 속에서 숨 막히는 삶을 산다.

이 점에서 한국 사회는 어른들의 사회이다. 어른들이 규정하고 그려내는 다양한 틀 안에서 온 사회가 움직인다. 인간이라는 보편 범주가 있음에도 생물학적 어른들 중심으로 일상적 세계가 돌아가고 있다. 아이들은 그 어른들의 계도와 규정 속에서 액세서리처럼 존재하며, 어른들이 만들어낸 아이다움의 범주에 들어갈 때만 그 존재 의미를 인정받을 수 있다.

‘어른 사람’처럼 ‘아이 사람’도 온전한 인간으로 취급받아야

그런데 우리가 분명히 기억할 것이 있다. 아이란 생물학적 범주이지, 존재론적 범주가 아니라는 점이다. 모든 ‘어른 사람’이 온전한 인간으로서 취급받아야 한다면, ‘아이 사람’ 역시 온전한 인간으로 취급받아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아이란 없다. 다만 몸이 작은 인간과 큰 인간이 있을 뿐이다. 생물학적으로 어른이라고 해서 언제나 성숙한 생각과 책임 있는 행동만 하는 것도 아니듯, 생물학적으로 아이라고 해서 어른들이 일방적으로 규정한 아이다운 생각과 행동만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도 한 인간으로서 수천의 결을 지닌 존재이다. 즉, 여타의 어른들처럼 슬퍼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분노하는 존재이며,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자유와 권리가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어른들이 작은 인간인 아이들을 자신들의 고정관념의 감옥 속에 가두는 것이 아이에 대한 폭력이며 인권유린이다.

매년 어린이날이 되면 갖가지 행사가 펼쳐진다. 어린이날이 표피적인 행사들로 채워지는 날이 아니라, 어린이가 한 인간이라는 사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공고히 하는 인식 확장의 날이 되기를 바란다. ‘아이는 인간이다’라는 가장 상식적인, 그러나 근원적 인식의 변혁을 요청하는 급진적 선언이 등장해야 하는 이유이다.

기자명 강남순 (텍사스 크리스천대학교 브라이트 신학대학원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