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 걱정 없는 초등사용설명서
제1강(3월14일) 구본창 아깝다 학원비-학원 상품 분별 능력 기르기
제2강(3월21일) 최수일 초등수학 완전정복-수포자 예방을 위한 재미있는 수학공부
제3강(3월28일) 김승현 초등영어 완전정복-영어, 이젠 이렇게 하세요
제4강(4월4일) 백화현 초등독서 완전정복-독서로부터 자유로워지면 독서가 가능해진다
제5강(4월11일) 김형태 초등학생을 위한 스마트폰 리얼스토리
제6강(4월12일) 윤다옥 멀지 않은 사춘기, 우리 아이 발단단계와 관계 맺기
제7강(4월25일) 윤지희 사교육 걱정 없이 우리 아이 키우기

스마트폰이 애물단지라는 부모들이 적지 않다. 스마트폰에 탐닉하는 자녀들과 갈등이 끊이지 않아서다. 그렇다고 ‘스마트폰 중독’을 운운하며 겁을 주거나, 강력한 관리 프로그램으로 자녀의 스마트폰 사용을 감시하는 것이 해답일까?
초등학생들에게 인기만점 선생님으로 통하는 김형태 ‘깨미동(깨끗한 미디어를 위한 교사운동)’ 전 대표는 그것이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은 해법이라고 말한다. 그보다 부모 스스로 자신의 미디어 사용행태를 돌아보고, 디지털 시대에 걸맞는 미래지향적인 사용 규칙을 자녀와 함께 정하려 노력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사교육 걱정 없는 초등사용설명서’ 다섯 번째 강사로 나선 그의 강좌를 지상중계한다.

김형태 교사는 스마트폰을 새로운 문화로 보는 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형태(초등학교 교사, ‘깨미동’ 전 대표)

학기 초 학부모 상담을 하다 보면 특히나 자주 거론되는 주제가 스마트폰 문제다. 많은 부모님들이 이 문제 때문에 고민이 많으실 거라 생각한다.
그런데 저는 스마트폰 문제를 고민하기에 앞서 아이들의 생활이 어떤지 부모님께서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초등학생들이라 해서 결코 어른들이 생각하는 매뉴얼대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그러니 아이들을 매뉴얼대로 가이드하겠다는 생각보다는 아이가 어떤 방식으로 생각하고 움직이는지 이해하려 들 때 아이들과 훨씬 더 잘살 수 있을 것 이라는 말씀을 먼저 드리고 싶다.

스마트폰을 보는 새로운 관점

나는 깨미동(깨끗한 미디어를 위한 교사운동)이라는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교사, 사회운동가 등이 모여 미디어에 대해 공부하는 한편 아이들 교육에 어떻게 미디어를 적용시킬까 고민하는 단체다. 만들어진 지 올해로 17년째인데, 초창기에는 주로 보호주의적인 관점에서 미디어에 접근했다. 아이들이 집에서 PC로 인터넷에 접속하던 당시만 해도 어느 정도는 미디어를 통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는 우리 스스로 관점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더는 부모나 교사가 아이들을 컨트롤할 수 없는 시대가 된 만큼 아이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다가갈지에 대해 다른 방식으로 고민하게 된 것이다.

요즘 아이들이 학업․성적 스트레스로 심하게 시달린다는 사실은 익히 아실 것이다. 너나 없이 지속적으로 힘들고 고통스럽다. 오죽하면 ‘헬조선’이라는 말이 나왔겠나. 올해만 해도 지난 1월에서 3월까지 발생한 청소년 자살자만 21명에 달한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아이들은 어떻게 풀까? 닭장 속에 꼼짝달싹 못할 만큼 밀집시켜 닭들을 키우면 닭이 서로를 쪼아댄다고 한다. 자기가 죽지 않으려고 옆에 있는 닭을 공격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한때 학교폭력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됐다. 오랜 시간 머무는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 각자 살겠다고 서로를 괴롭히는 일이 벌어졌던 셈이다.

학교와 사회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학교폭력은 서서히 줄어들고 있다. 학교폭력이 감소한 더 큰 원인은 아마도 ‘내가 상대방을 쪼면 상대방이 다치고, 상대방 또한 나를 다치게 한다’는 것을 아이들이 알게 되면서일 것이다. 그러면서 상대방을 다치게 하는 일 없이 스트레스를 해소할 돌파구로 찾아낸 것이 스마트폰 곧 미디어다.

내가 이렇게 자신있게 말씀을 드릴 수 있는 것은 십 년 전까지만 해도 나 자신이 게임 중독자였기 때문이다. 나의 사춘기는 대학 때에야 찾아왔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통상 세 번의 행운이 주어진다고 하는데, 내 경우는 수능 볼 때와 임용고시 볼 때가 그랬던 것 같다. 평소보다 수능 점수가 100점 가까이 더 나와 원하는 대학에 무난하게 진학한데다, 임용고시 때는 내가 지원한 지역이 미달이어서 과락만 면하면 선생님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시기 나는 모의고사 총정리 문제집조차 제대로 풀지 못했다. 점심 시간이면 친구들과 헤어져 혼자 햄버거를 사 들고 PC방에 갈 만큼 게임에 미쳐 있었기 때문이다. 남들 눈을 의식해 도서관에는 다녔지만 말 그대로 의자에 앉아 있을 뿐, 도서관을 마치자마자 다시 PC방으로 달려갔다. 그런 내가 임용고시에 붙었으니 정말 운이 좋았던 셈이다.
교사가 된 뒤 시작된 학교생활은 너무도 즐거웠다. 왜냐? 아이들 사이에 내가 신이 됐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디아블로’라고 아이들과 같은 게임을 하고 있었다. 나와 같은 게임을 하는 아이들 대부분이 서버에서 쓰던 내 아이디를 알았다. 그러니 아이들 입장에서는 온라인에서만 보던 사람이 현실에 강림한 것마냥 보일 수밖에(웃음).

내 경우는 칠판에 떠든 사람 이름을 적어놓거나 할 필요가 없었다. 말 잘 듣는 아이에게 주겠다며 아이템 목록을 죽 적어놓으면 아이들이 알아서 절대복종을 맹세했다. 심지어는 옆반 아이가 우리반에 와 앉아 있는 경우도 있었다. 자기도 그 아이템이 필요하다면서(웃음). 그래도 말을 안 듣는 아이들은 따로 모아놓고 게임을 한 판 하기도 했다. 그러고 나면 아이들은 “우리 선생님이 짱이야!” 하면서 나를 떠받들곤 했다.

게임이 스마트폰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기존의 ‘중독’ 잣대 또한 무색해졌다. 사진은 할리우드 배우가 출연한 스마트폰 게임 광고.

그런 내가 게임을 끊은 결정적 계기가 있었으니, 바로 군대를 가면서다. 재미보다는 목숨이 중요한지라 입대 후에는 자연스럽게 게임 생각이 거의 나질 않았다. 휴가 때 나와 보니 아이템이 활성화가 안돼 있어 더 이상 게임을 할래야 할 수도 없었다. ‘내가 다시 이 게임을 하려면 그 많은 시간과 노력과 돈을 투자해야 할텐데, 그 짓을 또 어떻게 해?’ 싶었던 것이다.

게임이 가르쳐 준 인생의 법칙

그 뒤 더 이상 내 인생에 게임은 없었을까? 그렇지도 않다. 그 뒤에 나온 스마트폰 게임도 즐겨 했다. 이런 개인적 경험이 있었기에 부모님들께 게임의 속성에 대해 나름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이다. 아마 부모 입장에서는 “도대체 왜 그까짓 게임을 하는 거야?” 싶으실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경험한 바로, 게임에는 삶의 희로애락이 모두 담겨 있다.
무슨 얘기냐. 무엇보다, 게임의 특징은 노력한 만큼 돌아온다는 것이다. 세상 어느 것도 노력한 만큼 돌아오지는 않는다. 특히 공부가 그렇다. 국영수 위주로 열심히 공부한다고 해서 백점을 맞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반면 게임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한 만큼 레벨이 올라간다. 내가 한 만큼 뭔가를 얻게 돼 있는 것이다.

게임을 하다 보면 도박의 심리도 알게 된다. 성인들이 도박에 처음부터 빠질까? 결코 그렇지 않다. 도박중독은 내가 돈을 딴 순간 시작된다. ‘바로 이 맛이군’ 하면서 빠져드는 것이다. 게임도 마찬가지다. 대박 아이템을 한번 얻고 나면 자신감이 상승하면서 ‘내가 계속 이렇게 하다 보면 또 다른 아이템이 나오겠지?’ 하고 기대하게 된다. 그러면서 충성심이 생기는 것이다.
‘누군가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또한 게임에 빠져드는 요인이다. 현실세계에서의 나는 찌질하다.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 그런데 온라인에서는 내가 신이다. 때로는 이 관계가 현실세계에까지 이어진다. 정기모임을 할 때면 레벨이 높은 사람이 주도권을 갖게 된다.

게임에서 높은 레벨에 오르다 보면 사회적 강자의 자세와 배려도 배울 수 있다. 게임세계에서는 ‘고랩’(레벨이 높은 유저)이 ‘쪼랩’(레벨이 낮은 유저)을 도와주는 문화가 형성돼 있다. “여기서는 이런 식으로 해야 하는 거야”라는 식으로 판을 쉽게 깰 수 있는 노하우 등을 알려주면서 쪼랩이 게임을 즐길 수 있게끔 도와주는 것이다.
살다 보면 꼭 필요한 ‘쇼부의 기술’도 게임을 통해 배울 수 있다. 게임에서 서로 아이템을 거래할 때면 파는 사람은 비싸게 이를 팔고, 사는 사람은 값싸게 이를 사고 싶어하는 게 순리다. 이 과정에서 내 마음이 급하거나 불안하면 사기를 당하기 쉽다. 이는 현실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곧 게임을 통해 이 모든 것을 배울 수가 있는 것이다.   

내가 ‘디아블로’ 게임을 하던 때만 해도 ‘게임은 애들이나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PC 자판 위에 놓인 손을 눈보다 빠르게 움직이며 이들 게임을 하곤 했다. 그런데 스마트폰 게임이 등장하면서는 모든 것이 바뀌었다. 특히 나는 ‘애니팡’이야말로 혁명이었다고 생각한다. 손과 눈의 협응만 가능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게임이 바로 애니팡이었기 때문이다. 이로써 게임은 일정한 특이집단이 하던 오락에서 남녀노소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오락으로 바뀌었다.

덕분에 한국에서 광고비로만 200억원을 쓴 스마트폰 게임도 등장했다. 과거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스마트폰 게임이 돈이 될지 이전에는 몰랐기 때문이다. 할리우드 배우를 비롯해 차승원, 정우성, 장동건, 이병헌, 최민식, 류승룡, 황정민, 지드래곤 등도 속속 게임 광고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과거 잘 나가는 여자 연예인이 화장품이나 소주 광고 모델을 했다면 요즘 잘 나간다는 한국 남자 연예인들은 전부 스마트폰 게임 광고 모델을 하고 있다.

그뿐인가. 안드로이드에서 가장 많이 다운로드받은 앱 1~20위 중 카카오톡을 뺀 나머지 19개가 스마트폰 게임이다. 문제는 어른들만 이걸 모른다는 것이다. TV에서 스마트폰 게임 광고를 보면 “도대체 저게 뭐야? 애니메이션이야?” 하면서 아이들에게 “너희는 왜 게임을 하니? 재미있니?” 하는 식으로만 접근하려 든다.

‘디지털 원주민’ 세대의 역설

따지고 보면 이 모든 게 아이러니다. 지금 아이들은 뱃속에서부터 태교를 미디어로 한 디지털 원주민(Digital native)이다. 반면 어른들은 디지털 이주민(Digital immigrant)이라 할 수 있다. 태어날 때는 아날로그 시대였는데, 살다 보니 디지털 시대를 맞은 셈이다.
그래도 나름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았다. 덕분에 삼성 스마트폰 같은 혁신적인 물건을 만들어냈다. 인터넷 초고속망도 깔았다. 다른 나라는 아직 3G에 머물고 있는데, 우리는 이미 5G 시대에 접어들어 있다. 콘텐츠는 또 어떤가? 어마어마한 양의 콘텐츠가 이미 스마트폰에 속속 들어와 있다. 이걸 이용하기 위한 저렴한 요금제도 다양하게 나와 있다.

다시 말해 기기와 인프라가 있고 콘텐츠도 풍부한데 요금제까지 싼 최적의 환경이 마련돼 있는 셈이다. 이런 환경에서 아이들이 스마트폰에 빠져 드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스마트폰 중독으로 아이들의 뇌 균형이 깨지고 있다는 얘기들이 나온다. 쓰라고 기반을 다 만들어 놓고, 막상 쓰니까 문제가 된다니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그뿐인가. 산업계에서는 줄기차게 4차 산업혁명을 얘기한다. 이에 따라 무료 인터넷 강의인 ‘무크’, 스마트폰․인터넷을 통해 미리 강의를 들은 다음 교실에서는 토론․협력수업을 주로 진행하는 ‘거꾸로교실’처럼 혁신적인 교육실험도 등장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스마트폰의 폐해 내지 중독 문제를 얘기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4차 산업혁명을 쫓아가야 한다니,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지금 상황을 비유하자면 맛있는 음식이 잔뜩 쌓여 있는 뷔페에 와 있는 것과 비슷하다. 아이가 그중 눈에 띄는 것들을 골라 먹으려 하면 엄마는 “먹지 마, 살찐다” 하면서 말린다. 이건 고문이나 다름없다.
사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스마트폰을 마구잡이로 사용하지 않는다. 학교에서도 수업시간에 스마트폰을 쓰는 아이는 없다. 오직 교사만이 벨이 울릴 때 전화를 받을 뿐이다. 집에서도 통제받지 않고 스마트폰을 쓰는 사람은 아이가 아닌 부모다. 결국 어른들은 안하면서 아이들한테만 절제를 강요하고 있는 식이다.

사회적으로 봐도 마찬가지다. 조금 전 말씀드린 기기, 기반, 컨텐츠, 요금제 중 하나만 뒤떨어져도 지금보다는 스마트폰을 덜 쓸 것이다. 나도 프랑스․독일을 갔을 때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덜 쓰기에 ‘역시 선진국은 선진국이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그 나라에서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전송하려 시도했다가 속도가 느려 터져 포기하고 말았다. 우리도 국가나 통신사가 학생들의 미래를 위해 인터넷 속도를 2G로만 제한한다면 스마트폰 이용률이 훨씬 떨어질 것이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지 않나? 현대 소비사회에서는 제조물에 대한 모든 사용책임을 소비자가 지게 돼 있다. 곧 아이들이 그 책임을 고스란히 떠안고 있는 것이다.
             
아이 스스로 기준을 정하게 하라

이런 현실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디지털 이주민인 부모세대는 어찌 보면 단군 이래 가장 재수없는 세대라고 나는 생각한다. 살다 보니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문명이 바뀌어 버리는 바람에 남은 삶 동안 새로운 것을 평생 배워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미디어에 관한 한 아이들이 우리보다 훨씬 많이 알고 있다. 우리가 설명서를 참조하며 미디어 사용법을 익히는 데 반해 아이들은 경험으로 이를 깨쳐 버린다.

스마트폰을 뺏는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자녀뿐 아니라 성인도 디지털 시민의식을 갖출 필요가 있다.

그런 만큼 나는 부모들이 먼저 현실을 직시하셨으면 한다. 일단, 아이들이 언제 미디어를 쓰는지 돌아보시라. 통상 아이들은 엄마아빠가 바쁠 때 미디어를 소비한다. 엄마아빠가 바쁠 때 그나마 안전하게 아이를 보호해 주는 게 미디어이기 때문이다. 이런 목적으로 사용되는 건 TV도 인터넷도 마찬가지다. 이런 환경을 먼저 돌아봐야지, 스마트폰만 탓할 일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도 왜 부모들은 스마트폰에 유독 신경을 쓸까? 언제 어디서든 휴대할 수 있는 만큼 중독에 빠지기 쉽기 때문에?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아이들은 예전처럼 게임을 못하게 됐을 때 손을 떠는 등 금단이나 내성 증세를 보이지 않는다. 집에서 안나오거나 PC방에 사는 것도 아니다. 공부를 하는 도중에도 서랍 속에 게임을 자동 플레이 시켜 놓고 몬스터를 잡는 게 요즘 아이들이다. 그러다 보니 과거 방식의 인터넷․게임 중독 척도로는 아이 상태를 제대로 알 수가 없다. 특별히 전문가라 할 만한 사람도 없다. 나는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같은 프로그램을 보고 자기 아이를 ‘잠재적 중독자’인 양 평가하는 것이야말로 굉장히 위험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집마다, 아이마다 상황이 다른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러니 부모세대로서는 중독을 염려하기보다 스마트폰이 하나의 문화 흐름임을 받아들이는 게 훨씬 더 현명한 선택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흔히 부모들이 스마트폰을 문제삼는 건 그것이 공부에 영향을 미쳐서일 것이다. 아이가 대학에 입학하고 나면 스마트폰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상관하는 경우가 거의 없지 않나?
하지만 현실에서 보면 스마트폰으로 나쁜 짓을 하는 건 주로 어른들이다. 인터넷으로 폭주족 놀이나 겨드랑이로 밥 비며 먹는 것 같은 혐오 행위를 중계하는 사람 대부분이 어른들 아닌가. 그런데도 어른들의 스마트폰 사용에 대해서는 터치하는 이가 거의 없다. 시민의식이나 디지털 소양의식을 갖추려면 어려서부터 평생에 걸쳐 생애주기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걸 아이들한테만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 미디어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는 부모세대가 자신의 두려움을 제어하기 위한 방법으로 가장 쉽게 선택하는 것이 통제와 지배다. “하지 마!” “뺏을 거야!” 하면서 그간 익숙했던 방식으로 아이들을 통제하고 지배하려 든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이젠 힘을 다 했다. 지금 아이들은 더 이상 부모와 교사에게만 경험을 제공받는 것이 아니다. 부모나 교사에게 일방적으로 의존하거나 순종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제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할 것 같다. 스마트폰 하면 중독을 떠올리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스마트폰 자체가 달라진 문화의 일부임을 받아들이고, 아이들 스스로 절제하고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나는 본다. 절제하고 조절하는 힘이 어느 한순간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려서부터 꾸준히 길러야 성인이 돼서도 이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

아이가 부모를 속이고 몰래 스마트폰만 하려 든다고 고민하는 부모들이 많은데, 무조건 “하지 마!”라고 하면 아이들은 빠져나갈 구멍을 계속해서 만들어낼 뿐이다. 유일한 해법은 아이 스스로 미디어를 다루는 역량을 키우는 것이다. 그러니 “스마트폰은 ○시부터 ○시까지만 한다”는 식으로 아이가 자기 입으로 기준을 정하게 하고, 부모가 일관된 입장을 지켜 주시라. 아빠랑 아이 단 둘이 있을 때는 엄마 몰래 실컷 스마트폰을 쓰게 하는 식이어서는 곤란하다.

내가 있는 단체에서는 ‘스마트폰 바구니’ 운동을 하고 있다. 집에 오면 가족 모두가 스마트폰을 이 바구니에 넣어놓고 1~2시간이라도 모든 미디어를 끄고 가족끼리 시간을 보내는 습관을 들여보자는 운동이다. 물론 이걸 한다고 하루 아침에 습관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꾸준히 하다 보면 가랑비에 옷 젖듯 자연스럽게 의미있는 변화가 생기면서, 스마트폰이 놓여 있어도 이를 쿨하게 지나칠 수 있는 소양이 키워질 수 있지 않을까.   

부모가 스마트해야 아이들도 스마트하다

더 중요하게는 아이들을 ‘가르쳐야 할 존재’에서 ‘삶의 동반자’로 바라보는 자세의 전환이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살아온 시대와 자녀가 살아갈 시대는 완전히 다르다. 우리가 배웠던 방식으로 아이들을 교육시키면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다. 그런 만큼 아이와 부모가 함께 성장해 나가면서 하나의 온전한 인격체를 이뤄간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할 것 같다.

요즘 북유럽 선진교육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사실 선진적인 제도는 우리에게도 이미 많은 부분 도입돼 있다. 다만 이걸 받아들일 사회 시스템이 되어 있질 않을 뿐이다. 북유럽 사람을 한국에 데려다 놓으면 한국사람처럼 아등바등 살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우리나라는 안돼, 틀렸어”라고 주저앉을 수는 없는 일이다. 다행히도 변화의 조짐은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의 빈소가 썰렁하다는 SNS 글을 보고 그곳으로 달려간 아이들을 보며 나는 희망을 본다. 이 아이들은 더 이상 가르침을 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 시민의식으로 무장한 우리의 훌륭한 동반자들이다.

그간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더 이상 당연하게 여기지 않게 된 것 또한 사회 전반에 나타나고 있는 변화다. 만 18세 참정권 확대 주장에 진지하게 귀 기울이는 어른들이 많아졌다는 것 자체가 달라진 현실을 반영한다. ‘월화수목금금금’ 하면서 살 게 아니라 아이들도 쉬어야 하고, 아이들 스스로 뭔가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들이 서서히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부모들이 먼저 건강한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우리가 촛불집회에 나섰던 것 또한 내가 잘먹고 잘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녀세대가 좀 더 밝고 건강한 대한민국에 살기를 바랐기 때문 아닌가. 스마트폰 사용 문제도 마찬가지다. 무조건 안된다고 할 게 아니라 아이 입장에서 문제를 바라보면서 아이가 디지털 시대에 어떻게 건강한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본다.

나는 부모가 아이보다 낫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는 부모를 통해 배우고, 부모는 아이를 통해 배운다. 부모자식이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더 나은 삶을 이뤄가기 위해 노력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부모가 스마트해야 아이들도 스마트하다.


기자명 김은남 기자 다른기사 보기 ke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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