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16~18일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한국을 다녀간 뒤 사드 배치 문제는 오리무중에 빠졌다. 펜스 부통령 측이 한국에 올 때와 떠날 때 얘기가 달라 미국의 진의가 헷갈렸다. 4월16일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펜스 부통령과 동행한 백악관 관계자는 ‘변화된’ 태도를 처음 밝혔다. 이 관계자는 “사드 배치가 진행 중이지만 다음 달 초 한국 대선까지는 유동적이며 솔직히 한국의 차기 대통령이 결정할 일이다”라고 말했다.

사드 배치를 밀어붙이다시피 해온 미국 방침에 틈이 보인 것이다. 앞서 4월6~7일 미·중 정상회담 때 사드 배치 문제에 대해 양국 정상이 담판을 지을 것이라는 관측이 있었다. 당연히 미·중 정상회담으로 시선이 모였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중국의 역할 강화와 미국의 무역보복 조치·사드 배치 연기 사이에 빅딜이 성사된 것 아니냐는 것이다. 미국이 중국의 북핵 문제 해결 노력을 재촉하는 인센티브로 ‘사드 카드’를 활용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했다. 중국과 협상하는 과정에서 사드 배치가 연기된 것이라면 굳이 ‘한국의 새 대통령’을 언급했을까? 한국의 체면을 배려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는 ‘사드 배치 연기’가 아니라 ‘한국 새 대통령의 결정’이라는 말에 주목해야 한다는 해석이 퍼졌다.
 

ⓒ연합뉴스4월17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오른쪽)과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면담을 마친 뒤 공동 발표를 하고 있다.


펜스 부통령의 방한 일정은 4월16일 국립 현충원, 용산 미군기지, 비무장지대 방문 등을 거쳐 4월17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면담과 공동 발표로 이어졌다. 그사이 외교부 당국자는 “급속히 고도화되고 있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여 주한미군 사드 배치를 차질 없이 추진한다는 것이 한·미 양국의 공동 입장이다”라고 밝혔다. 펜스 측의 기내 발언에 대한 반박이었다.

황교안 권한대행과 면담한 뒤 나온 공동 발표에서 펜스 부통령은 한국 외교부 당국자 발언과 같은 취지로 말했다. “방어적 조치인 사드를 한·미 동맹을 위해서 계속 배치할 것이다.” 기내에서 백악관 관계자의 입을 통해 발언한 내용을 수정했다. 국내 언론도 이를 두고 ‘펜스 부통령이 직접 혼란을 수습했다’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면밀히 따져보면 애초의 기내 발언이 완전히 취소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황 권한대행과 만나 대화했을 때까지 미국 방침은 동맹을 위해 계속 배치하는 것이라는 점을 확인한 셈이다. 미·중 정상회담 직후인 지난 4월8일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황 권한대행에게 전화를 걸어 “사드 배치 문제에 대한 미국 측 입장도 (시진핑 주석에게) 전달했다”라고 전한 바 있다. 이때까지만 해도 기존 방침에 변화가 없었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전한 입장 역시 사드 배치로 해석이 가능했다. 미국 대통령이 언급하고 얼마 되지도 않아 부통령이 와서 똑같은 사람에게 다른 얘기를 한다는 것도 이상하다.

그렇다면 미국의 진의는 무엇일까? 이런 의문에 답을 찾으려면 ‘한국의 새 대통령이 결정할 일’이라는 발언의 의미를 살펴보아야 한다. 발언 그대로 한국의 새 대통령은 사드 배치 여부를 아무 부담 없이 소신껏 결정할 수 있을까? 펜스 부통령은 4월18일 주한 미국상공회의소 연설에서 한·미 FTA ‘개선(reform)’ 문제를 언급했다. 외교가에서는 그동안 미국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을 최우선 과제로 보았기 때문에 한·미 FTA는 올가을에나 협상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보았다. 미국 정부는 ‘개선’이라고 약화된 표현을 쓰긴 했지만 상당히 앞당겨 쟁점화한 것이다. 이날 펜스 부통령은 “한·미 FTA 이후 지난 5년간 미국의 무역 적자가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는 사실이 우려된다는 점에도 우리는 솔직해야 한다. 미국 산업이 진출하기에 너무 많은 진입 장벽이 있다”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사드 배치와 한·미 FTA 재협상 연동?

이 같은 미국의 한·미 FTA 재협상 조기 쟁점화에는 사드 문제로 인한 복잡한 심사가 얽혀 있다. 미국 측 분위기에 밝은 한 인사는 “사드 문제가 아니면 한·미 FTA 재협상은 지금 테이블에 오를 이슈가 아니다. 한국의 새 대통령이 사드를 배치하지 않겠다고 하면, 미국도 FTA에서 자국이 보고 있는 적자 문제를 짚겠다는 뜻이다”라고 해석했다. 한·미 FTA 체결 후인 지난 5년간 한국의 대미 상품 수지 흑자는 116억 달러에서 233억 달러로 증가했다고 한다. 반면 미국의 서비스 수지 흑자도 109억 달러에서 141억 달러로 증가했다. 서로 이익을 봤다. 사드 배치 비용과 한·미 FTA를 통해 벌어들인 이익을 견주어서 판단하라는 무언의 압력인 셈이다.

 

 

 

ⓒAP Photo4월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정상회담을 마친 후 함께 걷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그동안 나온 해석에 따르면 미국이 사드 배치를 유보하는 것은 미·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주석과 타협한 결과여야 한다. 한국의 새 대통령에게 배치 여부를 결정하라고 한다면, 미국은 중국에 생색만 내고 사드 배치 책임을 한국에 뒤집어씌우려는 것 아니냐고 볼 수도 있다. 즉 중국과 합의한 대로 사드를 철회하려 했지만 동맹국 한국의 새 대통령이 배치를 고집해 어쩔 수 없다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사드 철회를 한껏 기대해온 중국이 약속을 어긴 미국에 쏟아내야 할 분노를 한국에 퍼부을 것이고, 한·중 관계는 더욱 꼬이게 된다. 과연 미국이 한국 새 정부와의 첫 관계를 그런 식으로 맺고자 할까? 미국 처지에서 한국 새 정부가 기존 ‘친미 보수’와는 결이 다르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동맹국 정부를 함정에 빠뜨리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무엇보다 먼저 사드가 과연 미·중 정상회담의 협상 테이블에 오르긴 했는지, 올랐다면 어떤 맥락에서였는지 점검해봐야 한다. 세 가지 가능성을 따져볼 수 있다. 첫째, 북핵 문제와 관련한 협상 테이블에 올랐을 가능성이다. 그동안 가장 많이 거론되었다. 중국이 북핵 해결을 위해 열심히 뛰는 대가로 미국이 사드 배치를 연기한다고 합의했을 가능성이다. 둘째, 북핵 문제가 아닌 다른 문제와 연계됐을 가능성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중 정상회담에서 과연 북핵 문제를 주요한 이슈로 꺼냈을까 하는 의구심이 적지 않았다. 북핵 문제는 회담 주변에서 분위기만 조성하고 실제로는 투자 유치와 일자리 창출을 통한 경제 살리기에 중국의 협조를 끌어내는 게 우선순위가 아니었을까 하는 문제 제기다. 미·중 정상회담의 유일한 합의사항이 (무역 불균형 시정을 위한) 중국의 ‘100일 계획’이라는 점에서 보면 설득력이 없는 얘기는 아니다. 미국산 상품의 수입을 늘리거나 미국 내 인프라에 대해 중국이 투자하는 내용으로 이뤄졌다는 정도로만 모호하게 알려진 이 100일 계획과 사드 배치가 교환됐을 가능성도 있다.

 

 

 

 

ⓒ시사IN 조남진4월13일 사드 배치 예정지인 경북 성주군 소성리 마을 상공으로 미군의 헬리콥터가 관련 장비를 실어 나르고 있다.

 


이 두 가지 중 어느 쪽이라도 한국의 새 대통령이 사드 배치를 강행하겠다고 하는 순간 깨지게 된다. 한·중 간의 문제 이전에 미국의 처신이 국제적으로 문제가 된다. 또 미국이 그렇게 해서 얻을 이익이 별로 크지 않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하나의 가능성이 남는다. 사드 문제는 미·중 정상 간 협상 테이블에 적어도 교환의 대상으로 오르지 않았을 가능성이다. 앞의 소식통은 “사드는 중국의 남중국해 인공섬 매립 문제 대응 차원에서 추진된 것이다. 중국이 이 내용을 뻔히 아는데 미국에 협상하자고 할 수 없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사드 배치 재검토, 할 테면 해봐라?

그렇다면 미국은 왜 한국의 새 대통령에게 마치 사드 배치 결정권이 있는 듯 얘기를 흘렸을까? 대선 정국에서 사드 배치 재검토 얘기가 나오는데, 재검토를 할 테면 해보라는 게 미국의 본심일 수 있다. 한국의 새 정부가 과연 미국과 같이 가길 원하는지 판단하는 척도로 삼겠다는 얘기다. 그동안 사드 배치 문제가 시끄러웠던 것은 북한 핵을 막는 데 도움도 되지 않으면서 중국의 보복 조치를 당해야 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는 배치 결정만 발표하고 손을 놓아버렸다. 미국 역시 한국 국민들에게 설득력 있는 태도를 보여주지 못했다. 사드로 북한 핵을 확실하게 막을 수 있다든지, 아니면 중국의 보복조치를 막아주든지, 중국으로부터 오는 피해를 상쇄해주겠다는 식의 동맹으로서 갖는 상호 관계가 사실상 결여되었다.

트럼프 정부는 지난 20년간 미국 역대 정부와 달리 북한 문제를 비롯해 동북아 및 세계 질서의 축을 바꾸고자 한다. 그 가운데 북한 문제는 중국에 ‘외주’를 주었다. 북한 문제를 다룰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과 차관보, 국방부 차관 등 실무책임자급 인선이 완료되는 7월까지 앞으로 3개월 동안 중국이 북한에 압력을 넣든 설득을 하든, 일단 기다려보겠다는 의중이다. 한국의 새 정부는 바로 5월 초에 시작해 약 3개월의 완충기를 맞게 될 것이다. 그 국면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트럼프 정부가 주도하려는 판의 구도를 정확하게 읽어내고 대북정책의 큰 방향을 잡아내는 일이다. 사드 배치 문제는 그런 큰 방향의 일부일 뿐이다.

 

기자명 남문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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