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는 정책에 따라 시장이 크게 출렁이는 분야다. 뉴타운, 부동산 규제 완화 등 지난 대통령 선거 때마다 주거 이슈가 표심을 흔들곤 했다. 이번 대선은 좀 이상하다. 선거판을 흔들 만한 대형 주거 공약이 보이지 않는다.

그 와중에 가장 눈에 띄는 공약을 내놓은 쪽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다. 지난 4월9일 문 후보가 발표한 ‘도시재생 뉴딜정책’은 ‘전면 철거 후 아파트 단지 건설’로 요약되는 기존 뉴타운·재개발 위주 사업과는 결이 다르다.

간단히 말해 다가구와 저층 주택 위주로 지어진 오래된 마을을 아파트 단지처럼 편리하게 만들겠다는 발상이다. 도시재생 구역마다 마을 주차장, 공공 어린이집, 무인 택배센터 등을 설치할 계획이다. 노후된 다가구주택 4~5채를 매입해 지하에 주차장을 만들고, 지상에 어린이집을 짓는 식이다. 임기 5년 동안 전국 500여 곳에 이런 사업을 펼친다는 계획이다.
 


현재 진행 중인 모델도 있다. 서울 종로구 창신동·숭인동이 대표적이다. 봉제골목이 밀집했던 이 지역의 경우 2007년 뉴타운 사업을 추진했다가, 주민들의 뜻이 모여 2013년 서울시에서 처음으로 뉴타운 지역에서 해제됐다. 이후 서울시가 도시재생 사업구역으로 중심 육성하면서 새로운 ‘패션 거리’로 주목받고 있다.

문재인 후보의 도시재생 뉴딜정책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추진 중인 도시재생 사업의 연장선에 있다. 그 규모와 질이 비약적으로 확대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실제로 서울시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했던 김수현 특보(전 서울연구원장) 등이 문재인 캠프에서 정책을 디자인했다. 도시재생 뉴딜정책은 확실히 새로운 주거정책이다. ‘철거→원주민 축출→고분양가 논란→집값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건설사의 배만 불리는 악순환 구조를 바꾸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돈이다. 문 후보 쪽은 매년 10조원씩, 임기 5년 동안 5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박근혜 정부에서 국토부가 도시재생 활성화 사업에 쓴 돈이 연간 1500억원 수준임을 감안하면 엄청난 액수다. 문재인 캠프는 정부가 매년 2조원을 지원하고, 지자체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기업이 3조원을 충당하는 것으로 설계했다. 나머지 5조원은 국민주택채권, 청약저축 등 주택도시기금을 활용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방안으로 재정이 충당될지는 미지수다. 이들 공기업이 안고 있는 부채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문재인 캠프 측은 정부가 다양한 지원책을 보장한다면 여러 공기업에서 3조원 투자를 확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본다.

하지만 도시재생 사업이 첫발을 디딘 단계에서 대규모 사업을 확장하는 건 무리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해관계가 다른 주민의 뜻을 통합하는 일도 과제다. 문재인 캠프에서 도시재생 정책을 계획한 이주원 두꺼비하우징 대표는 “건설사는 기술적 파트너일 뿐, 실질적인 사업은 마을 주민과 함께 추진한다. 마을공동체를 도시재생 사업의 컨트롤타워로 세울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라고 말했다.

문재인 후보와 달리 홍준표·안철수·유승민·심상정 후보 등은 눈에 띄는 도시재생 공약을 발표하지는 않았다. 4월21일 현재까지 구체적인 주거 공약을 발표하지 않은 후보도 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부동산 시장 규제를 풀고 재개발·재건축 사업을 활성화한다는 입장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공공임대주택 공급 확대와 부동산 보유세 인상을 큰 틀로 잡았다.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는 저소득층 주거복지 강화, 소형 분양·임대주택 공급 확대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매년 15만 호 반값 임대주택 공급, 전월세 상한제,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등을 발표했다.

“장기 비전이나 구체적인 내용에서 미흡”

4월17일 경실련, 민달팽이유니온,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전국세입자협회, 참여연대 등 17개 주거·시민단체가 발표한 내용을 보면 각 후보의 주거정책을 들여다볼 수 있다. 이들 단체는 ‘주거안정 실현을 위한 정책 요구안’을 각 후보 캠프에 보내고 회신 결과를 발표했다(왼쪽 표 참조). 문재인·안철수·심상정 후보가 답변을 보냈고 홍준표·유승민 후보는 수차례 요청했음에도 회신을 보내지 않았다.

 

 

 

ⓒ연합뉴스문재인 후보의 도시재생 뉴딜정책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추진 중인 도시재생 사업의 연장선에 있다. 2014년 5월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 후보가 창신·숭인 도시재생활성화사업 추진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이들 단체에 따르면 문재인 후보는 공공임대주택 확대 등을 약속하면서도 높은 임대료와 기업 특혜 논란을 빚고 있는 뉴스테이(기업형 임대주택) 사업은 계속 유지하겠다는 방침이다. 뉴스테이를 유지하는 대신 공공성을 강화하겠다고 밝혔지만, 구체적 방안은 나오지 않았다. 현행 2년으로 된 민간주택 임대차계약 갱신 보장 문제와 임대료 상한제에 대해서도 집주인 권리 보호 등을 위해 점진적으로 확대하겠다고 했다. 분양가 상한제 및 분양원가 공개에 대해서도 향후 검토 입장을 밝히는 등 2012년 대선 공약 및 민주당 당론에 비해 후퇴했다는 것이 이들 단체의 지적이다.

안철수 후보는 가구 소득에 따라 임차료를 깎아주는 공공임대주택 정책을 제시했지만, 공공임대주택을 어떻게 확대하겠다는 것인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못했다. 주택 임대차계약 기간 갱신 보장 및 임대료 상한제에 대해서는 찬성 의견인 반면 분양가 상한제와 분양원가 공개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검토하겠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LTV(주택담보인정비율)·DTI(총부채상환비율) 규제 강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들 단체는 안철수 후보의 공약이 국민의당의 다른 정책에 비해 진일보한 것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정책 회신 과정에서 중요한 정책이 바뀌는 등 바람직하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심상정 후보는 이들 단체 요구안에 모두 찬성 의견을 나타냈다. 뉴스테이 폐지 또는 초기 임대료 규제(시세 80% 이하), 임대차계약 기간 갱신 보장(계약 기간 3년, 계약 갱신 1회 보장), 분양원가 공개 등에 찬성 입장을 나타냈다. 이들 단체는 심 후보가 주거복지 문제에 공감하는 후보라고 평가했다. 다만 주택분양제도 개선 같은 큰 계획에 대해 구체적 실현 방안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최승섭 경실련 부동산·국책사업감시팀 부장은 “과거에 비해 각 후보들이 주거정책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장기 비전이나 구체적 내용에서 미흡한 답변을 보내왔다”라고 평가했다. 조기 선거에 따른 급박함을 감안하더라도, 각 후보 캠프가 이상하리만치 주거정책에 무관심하더라는 것이다. 야권의 한 대선 캠프 관계자는 “보수 세력을 빼면 주거정책은 큰 틀에서 비슷하다. 차별성 있는 이슈를 뽑아내지 못하기 때문에 순위에서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이번 선거가 정치권은 물론 유권자에게도 아주 낯설게 펼쳐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기자명 이오성 기자 다른기사 보기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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