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4월17일 대법원은 “12·12는 군사반란으로, 5·17 비상계엄 확대와 5·18 광주 유혈 진압은 국헌 문란 목적으로 진행한 내란”으로 규정했다. 대법원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헌법기관인 대통령·국무위원들에 대해 강압이 가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에 항의하기 위해 일어난 광주시민들의 시위는 헌정 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정당한 행위”로 판시했다. 또 대법원은 “헌정 수호를 외친 광주시민에 대한 진압작전 중의 무자비한 살상행위는 내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직접 수단”이라고 판결문에 담았다. 1997년 12월22일 김영삼 당시 대통령은 전두환·노태우씨를 특별사면했다.

2017년 전두환씨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20년 전 대법원 판결마저 부인했다. 그는 “광주에서 양민에 대한 국군의 의도적이고 무차별적인 살상 행위는 일어나지 않았고, 무엇보다 발포 명령이란 것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것으로 밝혀졌다”라고 주장했다. 전씨는 자신을 “(광주사태) 치유와 위무를 위한 씻김굿에 내놓을 제물”로 표현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을 담은 기록물은 2011년 5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85만여 점에 이르는 자료는 현재 광주 금남로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 보관되어 있다.

이 기록을 지키는 사람은 33년 동안 전남대 사회학과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연구해온 나간채 교수다. 나간채 5·18민주화운동기록관 관장을 만나 전두환씨의 역사 왜곡을 짚었다.



ⓒ시사IN 신선영지난 33년간 5·18을 연구해온 나간채 전남대 사회학과 교수(5·18민주화운동기록관 관장)는 85만여 점에 이르는 관련 기록물을 관리하고 있다.

전두환씨 회고록을 보았나?

전두환씨와 이순자씨 회고록을 다 봤다. 한마디로 그들은 회고록을 통해 범죄에 대한 반성은커녕 기본적인 민주 헌정 질서마저 부정했다. 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전두환씨는 군사반란과 내란수괴죄로 처벌받았다. 그런데 회고록에서 대법원에서 처벌받은 것도 정치적 희생양이라 했고, 부당한 투옥과 재산 몰수의 수난을 겪었다는 식으로 주장하고 있더라.

전두환씨가 이제 와서 그렇게 주장하는 이유가 뭘까?

그 배경에는 바람직하지 않은 사면이 자리 잡고 있다고 본다. 대법원 확정판결 8개월 뒤 사면을 받으면서 자신의 범죄에 대해 반성할 기회가 전혀 없었다. 전두환씨나 파면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이나 비슷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에서 파면되었고 전두환씨는 대법원에서 처벌을 받았지만 둘 다 똑같이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두 사람 모두 ‘박정희 유신’의 그늘 아래서 아집과 독단, 폭력성을 보인다. 벌써부터 박근혜 사면론이 거론되는데, 대통령 사면권에 대한 재검토가 분명히 필요하다. 또 전씨의 회고록으로 다시 한번 철저한 과거 청산이 중요한 시대적 과제로 떠올랐다. 2000쪽에 달하는 전두환 회고록을 보면 자기의 행위를 강변하는 말만 쓰여 있지 그 행위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고 죽어갔는지 그 고통에 대한 언급은 하나도 없다.

회고록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해 가장 왜곡된 부분은?

전씨는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마저 부인했다. 가령 회고록 앞부분에 국군의 의도적이고 무차별적인 양민 살상 행위는 일어나지 않았다고 썼다. 하지만 이미 많은 증거가 나왔다. 1980년 5월19일 광주시내 화니백화점 앞길을 걸어가던 김경철씨를 계엄군이 무차별 구타해서 턱이 나가고 그 자리에서 죽었다. 또 광주시 외곽 송암동 저수지에서 목욕하던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M16 소총을 집중사격해 희생되었다. 골목에 나와 있는 임신부를 쏴서 살해하기도 했다. 이런 것들은 5·18 당시 양민 학살의 아주 전형적인 사례다. 그런데도 전두환씨는 회고록에서 재임 중 자기는 군대의 힘을 빌리거나 계엄령을 내린 사실이 없다는 점을 애써 강조하고 있다. 정당하고 평화롭게 나라를 운영했다는 주장만 되풀이했다.

전두환씨는 5·18 발포 책임자로서 자유롭지 않은데?

전씨는 회고록에서 당시 광주에 내려온 적도 없고, 발포 명령을 내렸다든지 계엄군에 영향을 행사한 일이 없다고 주장한다. 즉 최규하 국무총리, 주영복 국방부 장관 등 형식적인 지휘 라인이 가동됐다면서 자신은 관여하지 않았다고 발뺌했다. 우리가 학문적이고 역사적인 평가를 할 때 전두환씨에게 내란 수괴로서 총괄적인 최고의 책임을 따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가 5·18 전후로 실권을 쥐고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군 내부 증언도 많다.

어떤 증언들이 있었나?

광주에서 지휘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이원화됐다는 점은 당시 호남 지역 계엄사령관이던 윤흥정 중장과 정웅 31사단장이 증언했다. 또 주영복 당시 국방부 장관은 1980년 5월16일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자기에게 다음 날 비상계엄 전국 확대를 위한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열어달라고 요구했다고 국방부 과거사위원회 조사에서 증언하기도 했다. 소준열 전남북계엄분소장은 5월24일 정호용 특전사령관이 자기에게 전두환 보안사령관 친서를 전달했는데 거기에 “공수부대 사기를 죽이지 말라”는 지시 내용이 들어 있었다고 증언했다. 전두환 회고록과 배치되는 증언들이다. 그 밖에 우리가 입수한 미국의 기밀문서도 전두환씨가 5·18 당시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 정부의 기록이란?

5·18 관련 미국 정부의 극비 문서를 최초 입수·공개했던 팀 셔록 기자가 그 자료를 광주시에 기증했다. 그는 이른바 ‘체로키 문서’ 등 미국 정부기관의 극비 문서 2000여 건을 정보공개법에 따라 최초 입수·공개한 저널리스트인데, 4~5월 두 달간 여기 기록관에 머물며 우리와 함께 분석하고 있다. 1980년 5월 미국 국방부 정보국이 작성한 문건에는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중앙정보부장 서리를 역임하며 한국 정부의 실질적인 수뇌 구실을 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자료는 계엄군을 배후에서 움직이는 조종자가 전두환 보안사령관이라고 지목하고 있다. 1980년 6월4일자 국방부 정보국 문서에는 계엄군의 광주 발포와 학살 배후에 전두환이 있다고 적시했다. “계엄군이 과잉 반응을 했고, 이것은 전두환의 게임 플랜이었다”라고 적었다. 또 1980년 6월9일 문서에는 계엄군이 광주에서 베트남 전투 경험을 반영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전씨 회고록에 북한군 개입 의혹도 들어 있는데?

주로 북한 관련 문제는 지만원씨 논리를 밑바탕으로 쓰고 있다. 지씨처럼 북한군 특수부대라는 말은 안 썼지만, 전씨는 당시 광주시민 시위대 가운데는 ‘정체불명의 인물들’이 참여해 그 사람들이 무장투쟁을 주도했다고 주장했다.

미국 기밀 자료에는 5·18 당시 북한과의 관련을 어떻게 보았나?

글라이스틴 대사가 1980년 6월10일 미국 국방부 정보국에 보낸 공문에는 “광주시민들의 행동은 공산주의자가 선동하거나 개입한 것이 아니다. 보스턴 차 사건과 같이 자유로운 시민들의 자발적 발화로 타올랐다”라고 표현했다. 또 국방부 정보국 6월2일자 문서는 “공산주의자 개입 가능성이 전혀 없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시민들이 보인 주요 행동의 동기는 공산주의자가 불어넣은 것이 아니다. 이들은 공산당의 노리개가 아니었다”라고 분명하게 적고 있다.

지만원씨의 북한군 침투 주장에 대해 법적 대응을 하지 않았나?

지만원씨 등 극우 세력이 5·18 당시 전남도청 앞 시민군 사진 가운데 황장엽·이을설 등 북한 고위층 인사들이 있다고 지목했었다. 황당한 왜곡과 폄훼를 보다 못해 5·18기념재단에서 그 사진을 확대해서 사진 속 실제 인물들이 나서달라고 공개적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우리 기록관에도 한 사람이 찾아왔는데 광주에 사는 고광덕씨였다. 재단에서 찾아낸 그런 피해자가 8명인데 이들과 함께 지만원씨 등 극우 세력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진행 중이다.

극우 세력은 무슨 근거로 북한군 침투설을 제기했다고 보는가?

자료를 다 조사해봤지만 증거는 없고 다만 선입견이 크게 작용했다. 지만원씨의 책을 보면 평생 군대생활을 한 사람들이 볼 때, 무장한 계엄군에 맞설 수 있는 민간인이란 있을 수 없고, 특수훈련을 받지 않고서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보는 판단을 전제로 삼고 있다. 군부대 근무를 하면서 가졌던 고정관념으로 북한군 특수부대 침투라는 상상의 소설을 쓴 것이다. 그것이 전두환의 회고록에까지 이어졌다.

ⓒ연합뉴스1996년 12월16일 오전 서울고법에서 전두환·노태우씨 등에 대한 12·12 및
5·18 사건 항소심 선고공판이 열렸다.

전두환씨 회고록에 대한 대응 계획은?

〈전두환 회고록〉은 정밀하게 분석해서 철저하게 비판되고 재검토되어야 한다. 공적인 평가와 아울러 회고록을 만들게 했던 근거들을 확인하기 위해 비공개 군 자료를 공개해서 재조사해야 한다. 5·18 진실 규명을 정부가 주도해서 실행하고, 종합보고서를 내야 한다. 또 의도적인 왜곡 폄훼를 처벌할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독일과 프랑스 등에서는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인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면 원칙적으로 처벌하는 ‘홀로코스트 부인 처벌법’이 시행되고 있다. 자료를 보니 2014년 스위스에서도 홀로코스트를 부인하는 글을 올린 작가에게 징역형을 선고했다. 거짓이라고 왜곡한 사람에게도 명예훼손죄를 적용했다. 그래서 우리도 사자 명예훼손까지 포함하는 한국판 홀로코스트 부인 처벌법 법안이 만들어져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좀 더 민주적이고 품위 있는 사회를 지향한다면 그러한 법안을 적극 강화해나가야 한다.

5·18 기록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올랐다.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면 5·18 민주화운동의 역사성이 전 인류사적 보편성을 갖게 되는 것이어서 추진했다. 그렇게 되면 왜곡·폄훼 세력에 대한 하나의 좋은 반증 자료가 될 수 있지 않겠나 싶었다. 우리 스스로 한국 역사를 세계사적 수준으로 업그레이드함으로써 사회 전반과 국가의 위상은 물론 지역민의 정신 모두에 긍정적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생각에서 등재 작업을 했다. 5·18 당시 시민들의 성명서, 선언문, 일기, 취재수첩 같은 자료와 관공서 공식 기록들이 등재되었다. 가장 많은 자료가 피해자 부상자 진료 기록과 그 사람들을 수사하고 재판한 기록, 그리고 청문회 기록과 증언 자료다. 그 밖에 미국 문서와 기록물로, 사진과 오디오 등이다.

앞서 언급했지만 5·18과 관련한 가짜 뉴스도 적지 않은데, 앞으로 기록관이 할 일은?

국제적으로 인류 보편적 문화자산으로 5·18 기록이 평가받았고 전 인류의 값진 기록유산으로 존경받으며 향유되고 있기 때문에 왜곡·폄훼 세력의 준동이 먹혀들 부분이 그만큼 줄어든 건 사실이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정부 차원에서 5·18 종합보고서를 내야 한다. 5·18 관련해서는 부분적 이슈에 따라 법안을 만들고 그 법에 따라 문제를 해결하려다 보니 종합 정리가 안 돼 있다. 가령 ‘제주 4·3 사건 진상 보고서’는 정부의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주체가 되어 종합적으로 정리해서 보고서를 냈다. 그것이 정부 입장이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왜곡이나 폄훼 현상이 별로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5·18은 정부 차원의 보고서가 없다. 그래서 새 정부가 출범하면 진정한 민주정부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한다는 차원에서 정부가 주체가 되는 5·18 종합보고서를 발표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현재 5·18 기록물들도 국가 문화재로 만들고, 헌법 전문에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명시해야 한다. 그래야만 허무맹랑한 왜곡과 폄훼 현상도 불식할 수 있다.

올해 5·18 기념행사를 유엔 본부에서 개최하려고 추진하던데?

민간재단인 5·18기념재단이 주축이 되어 광주 지역 공동체가 힘을 모으고 있다. 5·18은 전 인류의 자산이므로 유엔 본부에서 기념행사를 하는 게 의미가 있고 또 가능하다고 본다.

5·18 진상 규명과 관련해 남은 숙제가 있다면?

이번에 새롭게 제기된 도청 앞 전일빌딩에 대한 헬기 기총소사 문제와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행방불명자 혹은 암매장 문제, 그리고 지휘체계에 관련된 군 내부의 실체적 진실 등이 밝혀져야 한다. 헬기 기총소사는 군의 자위권이라고 보기 어렵고 명백한 양민 학살 증거이다. 반드시 규명되어야 한다. 5·18 진상 규명에 한 발짝 다가서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본다.

그동안 군은 헬기 사격을 인정하지 않았는데?

그렇다.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번에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조사 결과 총탄의 하향 각도 등으로 보면, 그 당시 전일빌딩 10층이었는데 주변에 10층 이상 건물이 없었기에 위에서 아래로 총알이 박혔다는 것은 공중사격을 했다는 뜻이다. 공중사격이라는 것은 헬기가 가장 가능성이 높지 않으냐는 것이 국과수 의견이다.

기자명 정희상 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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