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중앙대 문과대학 겸임교수.문화평론가)지금 사회는 인문학더러 상품이 되라고 윽박지른다. 고전에서 게임, 영화 따위의 아이템을 찾아 당장 '문화산업'에 납품하라는 것. 하지만 그것을 다루는 철학과 사상 없이는 백날 해봐야 돈이 안 된다.
요즘 ‘콘텐츠’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모든 것을 화폐로 환원시키는 사회는 문화마저 산업으로 만들어버렸다. 오늘날 한국에서 문화는 곧 산업이며, 산업 아닌 문화는 문화로 인정받지도 못한다. 만지는 모든 것을 황금으로 바꾸어놓는 미다스의 손은 문화마저 황금으로 바꾸어놓는다. 대중은 이 변성의 마술에 열광한다.

문화산업이라는 말은, 인문학더러 콘텐츠라는 이름의 ‘황금알’을 낳는 닭이 되라는 것이다. 황금알을 안 낳으면 모이도 안 줄 태세다. 황금알을 못 낳는 닭은 ‘대한 양계장’에 살 자격이 없다. 그런 닭들은 머잖아 대량으로 살(殺)처분될 것이다. 그리하여 인문학은 목하 생존을 위해 달걀을 황금알로 변성시키는 연금술 학습을 받고 있다. 왜들 그러는 걸까?

모든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는 머리 앞에서 진정한 인문정신을 떠드는 것은 무의미할 것이다. 그들은 인문학의 가치마저도 돈으로 환산해줘야 비로소 이해를 한다. 그러니 ‘문화의 산업화가 인문 정신의 타락’이니 어쩌니 푸념하기보다, 차라리 지금 이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문화의 산업화가 결국 돈도 못 벌어줄 거라 얘기하는 게 효과적이다.

문화를 오로지 산업으로만 간주하는 천박함. 그것은 애초에 문화적 태도와는 거리가 멀다. 모든 것의 가치를 오로지 돈으로 재는 사회에는 문화란 게 있을 수 없다. 문화란 돈 버는 수단에 관한 노하우가 아니라, 돈 버는 목적에 관한 성찰이기 때문이다. 성찰 없는 사회에 문화가 없다. 문화가 없으면, 상품화를 할 수도 없으니 당연히 돈도 못 번다.

사회는 인문학에 상품이 되라고 요구한다. 상품이 되지 않는 인문학은 쓸모없으며, 상품이 되어야 비로소 가치가 있다고 윽박지른다. 이른바 ‘문화산업’이 지금 인문학에 요구하는 것은 간단하다. 고전을 뒤져서 게임의 소재가 될 만한 것, 영화의 줄거리가 될 만한 것, 디지털 정보 산업의 아이템이 될 만한 것을 찾아서 즉시 문화산업에 납품하라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얘기되는 ‘콘텐츠’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위한 ‘소재’라는 의미에 가깝다. 거기에 대충 영상 테크닉만 결합하면 된다는 투다. 하지만 같은 소재를 다루어도 수준이 다른 작품이 나올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소재를 처리하는 미학적 능력, 그것을 해석하는 철학적 이해다.

ⓒ난나 그림
그림 솜씨 뛰어난 한국 애니, 왜 세계 시장에서 실패 거듭하나

일본과 한국의 애니메이션을 비교해보자. 일본 애니메이션의 작화도 종종 한국에서 이루어진다고 들었다. 적어도 그림 솜씨만은 한국도 일본 못지않다. 게다가 한국이 어디 납품할 소재거리가 부족하던가? 그런데 왜 한국에서 직접 만든 애니메이션은 세계 시장에서 실패하는가? 그때마다 지적되는 것이 바로 서사와 주제의식의 부재. 한마디로 인문학이 없다는 얘기다.

철학과 사상 없이는 만화영화도 제대로 만들 수가 없는 것이다. 당장 써먹을 소재나 채굴해 바치라고 요구할 때, 인문학은 철학과 사상을 갖출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오랜 숙고와 성찰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사회에서 진행되는 이른바 ‘콘텐츠 사업’이라는 것은 황금알을 얻기 위해 곯은 달걀에 금칠하는 것에 가깝다.

한국 영상산업의 가장 큰 문제는 ‘문학’의 부재. 이는 납품할 소재의 가짓수를 늘린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영상산업에 필요한 인문학적 교양의 깊이를 갖추는 것은, ‘인문학이란 굳이 황금알을 낳지 않아도 그 자체로서 가치가 있다’고 흔쾌히 인정할 때에만 가능하다. 닭은 황금알을 낳을 수 없다. 하지만 닭이 낳은 알을 나중에 황금으로 바꿀 수는 있다. 인문학이라는 닭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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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진중권 (중앙대 문과대학 겸임교수·문화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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