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정부와 국정원의 노력으로 인질들은 풀려났지만, ‘2명의 희생’이라는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6년 전 9·11 테러 이후 완전 소탕된 것으로 알려진 탈레반이 난데없이 대한민국에서 부활했다. 사라진 줄로만 알았던 탈레반이 여전히 아프가니스탄 땅에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하는 나토군과 미군을 상대로 치열하게 싸우는 중이었고, 아프가니스탄 땅의 절반을 통치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 사실을 한국인 23인 인질 사태를 겪으면서 피부로 느꼈다.

탈레반이 본격적으로 부활하기 시작한 시점은 지난해 여름이었다. 필자가 카불에 머무르던 지난해 9월께에는 시내뿐 아니라, 남쪽 칸다하르까지 광범위한 지역에서 자살 폭탄 테러가 하루가 멀다 하고 발생했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아프가니스탄 민심이 탈레반으로 돌아섰다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민심은 탈레반 편

2006년 5월29일, 카불에서는 아프가니스탄 정부를 전복할 만한 큰 사건이 일어났다. 카불 북쪽에서 술에 취한 미군이 아프가니스탄 민간인 두 명을 사살하면서 성난 군중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카르자이를 죽이자!”라고 구호를 외치며 대통령궁으로 향했다. 이 사태로 카불은 삽시간에 흥분의 도가니로 변했다. 그동안 미군과 카르자이 정부의 힘에 눌려 있던 불만이 터져나온 것이다. 위기를 느낀 카르자이 정부는 군중에게 발포했고, 이 과정에서 많은 민간인이 죽거나 다쳤다. 사태는 간신히 진정되었지만, 아프가니스탄 민심이 카르자이 정부와 미군에게 등을 돌리는 분수령이 되었다. 탈레반은 그 기회를 십분 이용했다.

사실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 들어온 미군에 대한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미군과 아프가니스탄 국민의 갈등은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았을 뿐이었다. 한 예로 미군은 아프가니스탄 곳곳에 아스팔트 도로를 건설해 그만큼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편리해졌다고 선전했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필자에게 전혀 다른 이야기를 했다. 카불통신의 아하마드는 “사람들은 이 길을 ‘아메리카 도로’라고 부른다. 미군이 탈레반의 도로 매설 폭탄 테러를 방지하려고 단단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미군은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을 위해 만들었다고 자랑하지만, 정작 이들의 시선은 이렇게 삐딱했다.

미군에 대한 아프가니스탄인들의 최대 불만은 경제 상황에서 비롯되었다. 일자리가 없어진 카불 주민에게 전쟁 이후 외국에서 들어오는 원조는 그림의 떡이었다. 원조 물자는 부패한 아프가니스탄 정부 인사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가기 일쑤였다. 외국 구호단체가 몰려드는 바람에 오히려 카불의 부동산값은 치솟았다. 더구나 전세계 아편의 90% 이상을 생산하던 아프가니스탄 주민의 생업도 큰 타격을 입었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유엔 주도로 아편 밭을 초토화했기 때문이다.

이때 탈레반이 아편 사업에 뛰어들었다. 아편 밭을 초토화하려고 출동한 나토군과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에 맞서는 전선에는 탈레반이 있었다. 이러다 보니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먹고살게 해주는 탈레반이 그래도 낫다’고 생각했다. 아프가니스탄 주민의 이런 반응은 낯선 이방인으로서 충격이었다.

필자가 취재한 바에 따르면, 탈레반은 이미 지난해 9월 이후 외국인 납치를 주요 사업으로 삼았다. 유엔 직원을 납치해 아프가니스탄 정부를 긴장시켰고, 올해 초 이탈리아 저널리스트 납치는 포로 석방이라는 성과를 그들에게 안겼다. 그때 석방된 포로들은 지금 탈레반을 이끄는 주요 세력이다. 특히 그중 한 명인 만수르 다둘라는 현재 아프가니스탄 동부 쿠나 주에서 최고 사령관을 맡고 있다.

ⓒReuters=Newsis우리나라 국민들은 탈레반(위)이 아프가니스탄의 절반을 통치하고, 아편으로 자금을 마련하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탈레반 조직은 단일 지도 체제가 아니라 여러 조직의 연합체 형태다. 현지 파르완 통신의 요세프 기자는 “탈레반은 지역별로 점조직 형태로 되어 있다. 대원 15명을 대장 한 사람이 지휘하는데 한 주에 이런 대장들이 수십명이다. 부족 단위로 대원들을 이끄는 경우가 흔한데, 요즘은 카불에서 일부러 지원해오는 사람이 많아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탈레반에 지원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대부분 경제적 이유에서다. 일자리가 없으므로 한 달에 2백 달러가량 월급을 주는 탈레반 병사가 인기 직업이 된 것이다. 탈레반은 자금을 아편 재배를 통해 조달한다. 탈레반은 이렇게 돈과 사람, 그리고 민심 덕에 아프가니스탄의 권력으로 부활했다.

‘위험 국가’에 대해 알면 알수록 안전

그러나 우리는 이같은 사실을 까마득히 몰랐다. 그같은 무지가 비극을 부른 셈이다.

아프가니스탄 인질 사태는 끝났다. 그렇더라도 우리 국민에게 아프가니스탄과 관련한 정보는 필요하다. 그러나 새로 개정된 여권법은 아프가니스탄을 포함한 이라크·소말리아 등 위험 국가들에 대한 방문을 철저히 막고 있다. 우리 언론은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직접 취재를 차단당했다.

아프가니스탄 인질 사태와 같은 제2의 국가적 위험을 막기 위해서는 이라크나, 아직 우리나라 선원이 잡혀 있는 소말리아 같은 다른 지역에 대해서도 더 많이 알 필요가 있다. 언제 어디서건 정보는 큰 위험을 피해갈 수 있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과 대한민국이 영원히 안 만난다면 몰라도 앞으로 또 맞닥뜨려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 국민에게는 아직도 탈레반에 관한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 앞으로는 외신들에게 “파병 국가인 한국 언론은 왜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에 없냐”는 비아냥 섞인 질문을 더 이상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

기자명 김영미 (분쟁 지역 프리랜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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