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쯤, 2학년 담임을 맡았을 때였다. 그 아이는 공부 시간마다 질문을 하면 빠짐없이 손을 들었다. 몹시 흥분된 목소리로 “저요! 저요!”를 반복하면서 시켜줄 때까지 소리를 질렀다. 마지못해 지목하면 질문과 동떨어진 답을 했다. 어떤 날은 눈썹을 자꾸 뽑거나 피가 나도록 입술을 쥐어뜯었다. 아이들과 놀 때면 혼자서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놀이 규칙이나 함께하는 법을 몰라 아이들도 끼워주지 않았다.

부모님은 아이가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로 병원 진료를 받는다고 했다. 그 당시 교실마다 ADHD 증세를 보이는 아이가 평균 1~2명 있었다. 지금은 그 수가 평균 2~3명은 될 것이다. 나는 무모하게도 의사도 원인을 알 수 없다는 ADHD 아이를 고쳐보겠다고 덤볐다. 하지만 그 아이를 관찰하면서 절벽을 마주한 느낌이었다.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 난감했다.

그렇게 6개월 정도 지난 때였다. 수학 시간에 구구단 공부를 하는데 놀랍게도 그 아이가 뛰어난 실력을 보였다. 반에서 수학을 잘한다는 친구도 그 아이와 구구단 문제를 겨루면 모두 졌다. 처음에는 모든 아이들이 그 아이를 우습게 보고 덤볐지만, 반 아이 중 누구도 적수가 되지 못했다. 그날 당장 어머니를 학교로 불러 상담을 했다. 어머니는 아이가 유치원 때부터 과학 관련 책을 좋아했고, 책을 반복해서 읽고 거의 외우다시피 했다고 말했다. 암기력이 뛰어난 아이였다. 나는 그 뒤에도 그 아이의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구구단 시합을 자주 했다. 물론 그 아이가 늘 우승이었다. 친구들의 인정을 받자 자존감이 높아지기 시작했고, 문제행동의 지적에 대해서도 조금씩 수용을 했다. 그렇게 2학기가 흘러 겨울방학을 할 무렵이었다. 그 아이 어머니는 주치의로부터 몇 개월 사이 아이에게 나타난 변화는 의사가 3년 동안 치료해야 가능한 정도라는 말을 들었다.

ⓒ김보경 그림

나는 이 일로 ADHD 아이도 변할 수 있고, 변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인은 자존감이며, 가정이나 학교에서 자존감을 길러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경험을 했다. 나중에 교장으로 간 학교에서 자존감을 길러주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고, 서로 간의 장점을 인정하며 협력할 수 있는 교육과정을 만들어 운영했다. 예상대로 많은 아이들이 변화했다. ADHD 약물치료를 받는 아이가 전학을 왔는데 그 아이는 수업 시간마다 교실 밖으로 나갔다. 그러나 전학 온 지 얼마 뒤 약물치료를 중단했고, 1년 뒤에는 수업 시간에 교실 바깥으로 나가는 일이 줄어들었다. 문제행동은 지속되었지만 이전만큼 거칠지 않았다. 또 틱 장애로 전학 온 아이가 있었는데 거친 말과 함께 다른 아이들을 이유 없이 때리고, 수업 중 무척 산만했다. 그 아이의 경우는 그림 그리는 재능이 있었다. 아이는 이 재능을 활용해 자존감을 회복하고 다양한 교과 프로그램 활동에 참여하면서 틱 장애가 사라지게 되었다. 이 밖에도 많은 사례를 목격했다.

서로 간의 장점을 인정하고 협력하게 해야

지금 근무하는 학교에서도 이런 변화를 보고 있다. 물론 교육 프로그램도 이전 학교와 비슷하다. 어떤 원인으로 아이들이 변했는지 과학적·의학적으로는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아이들의 자존감을 키우고, 협력적·활동적이며 자유로운 표현의 기회를 준다면, 그리고 교사의 따뜻한 관심과 애정이 함께한다면 아이들은 변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학교의 교육과정은 아이들의 정신적 식단이나 다름없다. 아스팔트, 콘크리트, 컴퓨터, 게임, 환경 호르몬, 경쟁, 이기심 등이 가득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결핍된 정신적 자양분을 제공해야 한다. 건강한 교육 내용은 아이들의 삶을 치유하는 구실도 한다고 믿는다.

기자명 이중현 (남양주 조안초등학교 교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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