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 〈시사IN〉 제499호에 장정일의 독서일기 ‘투표 거부자들의 정치적 시민권’이 실렸습니다. 이 글에서 〈누구를 뽑아야 하는가?〉가 언급되었는데, 책을 펴낸 출판사 안티고네의 한봉희 대표가 반론을 보내왔습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투표를 하거나 안 하는 건 개인의 선택이다. 마찬가지로 어떤 후보에게 투표를 하는지 또한 개인의 선택이다. 하지만 투표(행위)를 하지 않는 것이 투표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라는 주장은 또 다른 문제이다. 〈시사IN〉에 안티고네 출판사의 신간 〈누구를 뽑아야 하는가?〉를 다룬 글(장정일의 독서일기 ‘투표 거부자들의 정치적 시민권’)이 실렸기에 찾아 읽었다. 이 글에서 소설가 장정일씨는 자신의 주장을 위해 〈누구를 뽑아야 하는가?〉의 극히 일부 문장을 비아냥대듯 인용했다. 책을 만든 사람으로서 변론 혹은 문제제기를 하지 않을 수 없어서 이 글을 쓴다.

〈누구를 뽑아야 하는가?〉
모리치오 비롤리 지음
김재중 옮김
안티고네 펴냄
장정일 소설가의 글은 서두에서부터 사실관계가 잘못되거나 왜곡되었다. 그는 “지은이는 오늘의 대의민주주의와 선거에 대해 아무런 고민도 하지 못했던 이 책에서 고작 이런 말을 한다”라면서 글을 시작한다. 여기서 말하는 지은이가 누구를 지칭하는지는 모호하다. 책의 저자인 모리치오 비롤리라면, 그는 현존하는 정치학자이자 정책가이다. 그런 그를 오늘의 대의민주주의와 선거에 대해 아무런 고민도 하지 못했다고 쉽게 단정할 수 있을까? 〈누구를 뽑아야 하는가?〉는 저자 모리치오 비롤리가 마키아벨리의 말과 글을 빌려와 자신의 주장을 펼친 책이다.

장정일 소설가가 “고작 이런 말”이라고 폄하하며 인용한 문장(“우리는 투표를 해야 한다. 그리고 훌륭한 후보가 없다면 덜 나쁜 후보에게 투표해야 한다. 의식 있는 시민들이 투표하지 않고 집에 머문다면 의식 수준이 낮은 사람들은 의회나 백악관에 가서 공공선을 해칠 정책들을 펼칠 부패하거나 능력 없는 후보들을 뽑을 것이다”)은 마키아벨리의 말이 아니다. 설령 “오늘의 대의민주주의와 선거에 대해 아무런 고민도 하지 못했던”의 주체가 ‘이 책’이라고 하더라도, 그가 말한 ‘이 책’은 마키아벨리 시대의 책이 아니라 저자가 2016년에 쓴 책이다.

장정일 소설가가 인용한 문장은 모리치오 비롤리의 주장이다(책 27쪽 참조). 따라서 저자의 주장이 “고작 이런 말”로 폄하될 이유도 없으며, 저자(혹은 ‘이 책’)가 오늘의 대의민주주의와 선거에 대해 아무런 고민도 하지 못했다는 말은 장정일 소설가 혼자만의 생각일 뿐이다. 더구나 책을 통해 저자는 투표에 관한 20가지 조언을 하고 있다. 그중 하나의 주장이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저자와 책 전체를 폄하하는 것은 과도하다.

또한 장정일 소설가가 ‘선거는 최선이 아니라면 차선을 뽑는 것 혹은 선거는 최악이 아니라 차악을 뽑는 것’이라는 세간의 속설을 끌어와서 저자 모리치오 비롤리를 부끄러움도 모르고 대의제 정당민주주의도 모르는 사람으로 치부한 것도 왜곡이다. 장정일 소설가는 최선/차선, 최악/차악이라는 단어를 비교하면서 유권자의 행태를 비판적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이 또한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그의 말대로 과연 한국 유권자들은 차선을 선택한다면서 최선과 가장 먼 거리에 있는 후보를 찍고, 차악을 선택한다면서 최악과 가장 근접한 후보를 택하는가? 그의 예시 기준을 그대로 차용한다면, 현재의 진보/보수 스펙트럼에서 심상정을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홍준표를 찍고, 홍준표를 최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유승민을 찍어야 한다(이 역도 마찬가지다. 홍준표가 최선이면 심상정을, 심상정이 최악이면 문재인을 찍어야 한다). 정말 과연 그럴까? 더군다나 투표에 참여한 유권자(18대 대선은 75.8%이다) 중 얼마나 많은 사람이 누군가를 찍을 때 실제로 차선/차악을 선택의 기준으로 결정하는지도 의문이다.

더 큰 문제는 장정일 소설가가 자신의 주장을 위해 저자의 문장과 의도를 아전인수 격으로 인용했다는 점이다. 물론 책이라는 것은 쓴 사람의 의도와 읽는 사람의 의도가 결합된 합작품일 수 있다. 그러므로 읽는 이의 의도를 폄하할 생각은 없다. 책의 특성상 쓴 사람은 한 명이고, 읽는 사람은 불특정 다수일 수밖에 없고, 그 다수에게는 각자의 의도가 존재한다. 장정일 소설가 또한 그중에 한 명임을 인정한다.

하지만 책을 만든 사람 처지에서 누군가 최악의 의도로 읽거나 악의적으로 왜곡한다면, 그리고 그것이 널리 유포된다면, 다수의 다른 독자들을 위해, 그리고 저자를 위해 항변 정도는 할 기회는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기성세대로서 이 책을 만들면서 이번에 첫 투표권을 얻은 유권자들에게 고민해볼 만한 조언을 전해주고 싶었다. 그들에게 맘에 드는 사람이 없으면 투표하지 말라고 권할 순 없지 않은가? 대의민주주의의 소중한 가치는 참여에 의해 실현되고, 그 참여는 투표로써 완성된다는 믿음은 여전히 유효하니 말이다.

다시 장정일 소설가가 인용한 문장을 보자. 해당 장에서 저자의 의도는, 투표는 “통치자와 대표자에게 우리가 공공선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것을 알려줄 수 있는 수단의 하나”이며, “우리가 민주공화국을 선호하며, 다른 대안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을 가장 강력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므로 “투표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훌륭한 후보가 없다면 덜 나쁜 후보에게 투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말을 장정일 소설가는 선거는 차선/차악을 뽑는 것이라는 사탕발림이라며 비난하지만, 이는 저자의 의도와는 매우 동떨어진 것이다. 이 문장은 말 그대로 가정문이다. “훌륭한 후보가 없다면”이라는 단서가 먼저이다. 당연히 훌륭한 후보가 있다면 그에게 투표하라는 말이 전제된 말이다. 그런데 누군가에게는 훌륭한 후보가 없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누구에게 투표해야 할까? 장정일 소설가는 투표를 거부할 정치적 시민권을 이야기하지만, 저자는 그중에 “덜 나쁜 후보”에게 투표하라고 조언한다. 간명하다. 둘의 차이는 이것이다.

그렇다면 “덜 나쁜 후보”는 누구를 지칭할까?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사회에서 ‘훌륭한’과 ‘나쁜’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특정 후보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가 ‘훌륭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에서 ‘덜 나쁜’의 의미는 장정일 소설가가 염려한 것처럼 최선과 가장 멀리 떨어진 차선도 아니고, 최악과 가장 근접한 차악도 아니다. 저자의 의도는 각 유권자마다 만약 훌륭한 후보가 없다면, 훌륭하진 못하더라도 그것에 가장 가까운 후보에게 투표하라는 조언이다. 즉 누군가가 보기에 훌륭한 후보는 없고, 그만그만한 후보가 다섯 명 있다면, 그중 가장 덜 나쁜 후보에게라도 투표를 하라는 것이다. 물론 이 책은 전체적으로 과연 어떤 사람이 훌륭한 후보인가에 대한 조언을 담고 있다. 그러니 차선/차악이라는 단어를 끌고 와 혼선을 줄 이유는 전혀 없다(책 속에는 차선/차악이라는 단어는 존재조차 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장정일 소설가는 투표율이 저조한 것은 유권자의 책임이 아니라 정치권의 책임이라면서 몇 가지 제안을 한다. 아마도 이것이 그가 이 글에서 하고자 하는 말의 핵심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를 위해 엉뚱하게도 〈누구를 뽑아야 하는가?〉라는 책을 끌어들인다. 문제는 거기에서 출발한다.

책을 쓴 저자의 의도는 제목에 드러나 있듯 〈누구를 뽑아야 하는가?〉이다. 그런데 장정일 소설가의 의도는 ‘투표 거부자들의 정치적 시민권’이다. 여기에서 저자의 의도와 읽은 이의 의도가 근본적으로 충돌한다. 단순하게 비교하면, 저자는 투표를 해야 한다는 것이고, 장정일 소설가는 투표하지 않을 권리를 인정하고 그 의사를 반영하는 제도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는 투표율이 55%가 되지 않는다면 당선자의 당선을 취소하고, 해당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의 차기 출마권을 영원히 빼앗자고 주장한다.

이 부분은 책 〈누구를 뽑아야 하는가?〉와는 상관없는 부분이니 더 이상 언급하진 않는다. 〈누구를 뽑아야 하는가?〉는 투표 거부자들의 정치적 시민권을 옹호하지도, 폄하하지도 않는다. 다만 하나의 그릇에 너무 많은 것을 뒤죽박죽 담지 않기를 바란다. 특히 자신의 의도를 정당화하려고 다른 이가 쏟은 수고를 함부로 왜곡하고 폄하해선 안 된다.

한봉희 / 안티고네 출판사 대표(antigoneboo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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