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수 특검팀에 이어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가 우 전 수석에게 청구한 구속영장마저 기각되었다. 권순호 서울중앙지방법원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혐의 내용에 관해 범죄 성립을 다툴 여지가 있다”라며 기각 사유를 밝혔다. 검찰이 영장을 청구한 혐의 내용으로는 유무죄를 다퉈야 할 정도라 구속 수사가 안 된다는 뜻이었다. 사실상 검찰 수사가 부실했다는 완곡한 표현이었다. 박근혜 게이트 수사에서 우 전 수석은 두 번 영장이 청구되고 두 번 모두 기각된 유일한 인사다.
같은 날 저녁, 수갑을 차고 포승줄에 묶인 채 서울구치소로 향하던 고영태씨가 취재진 카메라에 잡혔다. 검찰은 전날 저녁 고씨를 체포했다. 검찰은 고씨의 집 앞에서 1시간30분 동안 대치하다 문을 부수고 들어가 체포와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했다. 고씨는 세관장 인사와 관련해 돈을 받은 혐의(알선수재)를 받고 있다. 검찰은 “고씨가 (관련 혐의) 언론 보도가 난 다음부터 연락을 끊고 잠적해 체포 영장을 발부받아 집행했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고씨 쪽 김용민 변호사(법무법인 양재)가 밝힌 사정은 다르다. 김 변호사는 “지금까지 검찰·특검 수사에 성실히 임했고, 검찰과 계속 연락하며 출석 날짜를 조율했다. 4월10일 검찰과 통화할 때 변호인이 선임되었다고 했는데도, 선임계가 도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갑자기 체포 영장을 집행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검찰의 우 전 수석에 대한 수사 과정을 되돌아보면 봐주기 수사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검찰은 지난해 8월 우 전 수석을 처음 조사했다. 우병우·이석수 검찰 특별수사팀(팀장 윤갑근)은 우 전 수석의 개인 비리 부분을 맡았다. 가족회사 정강의 횡령, 아들의 의무경찰 꽃보직 논란 등이었다. 윤갑근 수사팀은 우 전 수석의 집과 휴대전화를 압수수색 범위에 넣지 않았다. 우 전 수석 집 앞까지 갔지만 아파트 관리사무소만 압수수색했다. 우 전 수석의 통화 내역 조회도 하지 않았다.
게다가 검찰청사에서 팔짱을 끼고 웃고 있는 우 전 수석의 사진이 보도되면서 ‘황제조사’ 논란까지 일었다. 윤갑근 수사팀은 출범하고 3개월이 지나서야 우 전 수석 및 부인의 휴대전화 추가 압수수색에 들어갔다. 이미 우 전 수석이 휴대전화를 바꾼 뒤였다. 윤갑근 수사팀이 증거인멸 시간만 벌어줬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수사 내용 유출, ‘우병우 사단’ 없이는 불가능
박근혜 게이트가 터지면서 우 전 수석의 혐의는 더 늘어났다. 그는 개인 비리를 넘어 국정 농단의 한 축으로 지목되었다. 최순실씨 등의 비위 사실을 알고도 묵인하고, 롯데그룹 압수수색 정보를 최순실씨에게 유출했다는 의혹이었다. 수사 내용 유출은 검찰 내 ‘우병우 사단’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혹은 ‘우병우’를 넘어 검찰 조직으로까지 번졌다. 지난해 12월22일 국회 청문회 때 검찰 출신 김경진 국민의당 의원은 ‘친정’을 향해 쓴소리를 던졌다.
김경진 의원:독일에 있는 최순실이 내일 검찰에서 압수수색하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대한민국 검찰 내에 최순실의 수족들이 그렇게 쫙 깔려 있었을까? 대통령이 알려줬을까? 우병우 민정수석이 알려줬을까? 검찰총장이 알려줬을까?
우병우 전 수석:알지 못합니다.
김경진 의원:저도 검사 출신이지만 이런 검찰, 이런 썩어빠진 검찰 때문에 대한민국이 여기까지 와 있는 겁니다.
검찰 특수본이 기소한 최순실씨 공소장을 보면, 지난해 10월 최씨는 독일에서 귀국하기 전 자신의 측근에게 증거인멸을 지시했다. 검찰 압수수색 직전이었다. 압수수색과 같이 밀행성이 강조되는 수사 정보를 외국에 있던 최순실씨가 어떻게 알았느냐는 의문이 제기되었다. 그뿐 아니라 안종범 전 수석을 통해 검찰 출석 전 K스포츠재단 직원에게 수사 정보가 유출되었다는 의혹도 일었다. 이것도 우 전 수석이 관여한 게 아니냐는 의심을 샀다. 또 우 전 수석이 민정비서관으로 근무하던 2014년 6월, 세월호 수사를 방해했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검찰이 해양경찰 서버를 압수수색하려 하자, 수사팀 관계자에게 전화해 막으려 했다는 것이다.
우병우가 입 열면 검찰 전체가 흔들린다?
검찰 특수본은 세월호 수사 외압 논란을 우 전 수석 영장 재청구 혐의에서 뺐다. 검찰은 ‘외압은 있었지만 수사팀이 수사를 제대로 했다. 미수에 그친 수사 방해는 혐의가 안 된다’는 취지였다. 대신 국회 청문회에서 외압을 부인한 점은 위증 혐의로 추가했다. 박영수 특검이 청구한 구속영장 분량에 비해 검찰 특수본 구속영장 분량이 3분의 1이나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우 전 수석에 대해 불구속 기소를 할 예정이다. 검찰이 8개월간 수사하고도 불구속 기소로 수사를 마무리하는 경우는 이례적이다. 구속 수사가 만능은 아니지만 ‘초라한 성적표’라는 데는 법조계에서 이견이 없다. 우 전 수석이 ‘배수진을 쳤다’는 말도 검찰 안팎에서 돌았다. 자기 혼자만 죽지는 않겠다는 말이었다. 우 전 수석이 입을 열면 검찰 조직 전체가 흔들릴 것이라는 말이 ‘허언’은 아니다. 실제로 우 전 수석의 상사로 청와대에서 같이 근무했던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업무일지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우병우팀, 허수아비 그림(광주). 애국단체 명예훼손 고발. 신부-뒷조사. 경찰, 국정원 Team 구성→6국 국장급. ⚪케이스 바이 케이스를 할 것이 아니라 ex 산케이 보고 있으면 안 된다-응징해줘야. List 만들어 추적하여 처단토록, 정보수집 경찰 국정원을 팀 구성토록(2014년 8월7일).’
업무일지에서 ‘우병우팀’이라는 단어가 눈에 띈다. 검찰뿐 아니라 경찰·국정원까지 ‘우병우 의혹’에서 자유롭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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