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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서 쥔 칼자루 드라마에도 휘둘렀네

똑같은 조선 건국 과정을 놓고도 시대에 따라 해석이 다르다. 1980년대만 해도 이성계와 이방원은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기 위해 마지못해 쿠데타에 나서는 영웅으로만 그려졌다. 유신정권의 혹독한 제재 때문이었다.

이승한 (칼럼니스트) webmaster@sisain.co.kr 2017년 04월 12일 수요일 제4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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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면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이 돌아간 삼성동 자택 인근은 연일 태극기를 흔들며 오열하는 지지자들로 붐빈다. 공화국의 심장인 수도 서울 안에, 담벼락을 향해 절을 하며 “마마를 지키지 못했다”라고 서럽게 우는 이들이 넘쳐난다. 시공을 달리하는 듯한 이 초현실적인 광경. 누군가는 이를 두고 “박티칸 시국이 따로 없다”라고 말했다.

다른 이들은 그리 생각할지 몰라도, 거기 모인 이들에게 삼성동 자택은 아마 바티칸이 아니라 두문동(고려가 망하고 조선왕조가 들어서자 고려왕조의 충신들이 조선조에서 벼슬하지 않고 외부와 차단하며 모여 살던 곳)일 것이다. 다수의 주권자가 광장에서 뜻을 모아 결정한 의사를 헌법재판소를 통해 법의 언어로 번역해 확증한 탄핵이, 박근혜 지지자들에겐 여말선초 왕씨의 나라 고려를 이씨에게 빼앗긴 사건처럼 보였을 테다. 왕계만은 살려보겠다며 폐가입진(가왕을 폐하고 진왕을 세움)의 마음으로 총리를 바꿔보려 해봤고, 이 모든 게 신돈 잘못이지 왕씨 왕가는 잘못이 없다는 듯 고영태·최순실 불륜설도 밀어보았다. 하지만 끝내 이씨에게 나라를 빼앗겼다며 가슴을 쥐어뜯는 이 21세기의 고려인들. 그러니 다들 두문동에 들어간 72명의 심정으로 삼성동 자택 앞에 모여 머리를 풀고 마마를 지켜내지 못했다며 통곡 중인 것이다. 이 아찔한 시대착오를 어쩌면 좋은가.

ⓒKBS 홍보실
이성계와 이방원을 입체적으로 묘사한 KBS 대하사극 <용의 눈물>.
물론 굳이 고려시대에 비유하자면 박근혜 전 대통령과 그 아버지 박정희 세력은 왕씨 일가가 아니라 무인 정권을 이끈 세력일 것이다. 본디 서 있는 자리가 다르면 같은 역사를 해석하는 시야도 다른 법이다. 똑같은 조선 건국 과정을 놓고 시대에 따라 해석하는 사람들의 시각이 죄다 달랐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1980년대만 해도, 신군부의 12·12 쿠데타가 난세를 끝내기 위한 ‘구국의 결단’이라고 정당화하기 위한 소재로 조선 건국이 활용되곤 했다. KBS <개국>(1983)은 기획되던 당시만 하더라도 고려 무인 이성계(임동진)와 천민 떡대(백일섭)를 두 축으로 삼아 왕조 중심의 지도층 사극이 아닌 민중사관의 사극을 만들겠다는 포부로 출발했다. 하지만 결국 이렇게 신음하는 민중(떡대)을 새로운 왕조를 창업한 정치 엘리트(이성계)가 구원한다는 내용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여말의 사회적 모순을 해소하기 위해 우국충정에 찬 군인들이 어쩔 수 없이 정권을 잡았다는 내용, 익숙하지 않은가?

물론 작가들이라고 이런 정권 찬양으로 극을 쓰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1976년 KBS <왕도>를 집필한 신봉승 작가는 자신의 저서 <역사가 지식이다>(선 펴냄, 2013)에서 유신정권이 각본의 집필 방향을 집요하게 참견했던 기억을 회고했다.

“두 번에 걸친 골육상쟁인 왕자의 난을 주도하면서 이방원은 마침내 왕위에 오른다. 그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 많은 사람들의 생목숨을 무자비하게 앗아낸다. 바로 그 과정이 박정희 대통령의 이른바 시월유신과 겹쳐지면서 청와대 쪽의 제재가 시작된다. 처음에는 완성된 드라마의 화면을 잘라내기 시작하더니 그 다음부터는 원고의 내용을 이리저리 고치라는 압력을 가했다. 나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제시하면서 역사는 권력이 간섭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님을 역설했다. 그런 당연한 저항도 유신을 앞세운 군사정권의 서슬 앞에서는 무력할 수밖에 없다.” 균형감각을 발휘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환경이었음을 토로하는 신봉승의 회고는 절절하다.

<용의 눈물>은 ‘역사 바로세우기’와 부합


신봉승의 수난사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1983년 MBC <조선왕조 500년>의 첫 주자 <추동궁 마마>는 실로 노골적인 정권 찬양의 맥락에서 소비된 작품이었다. 이성계는 역적이 아니라 희대의 성군이고 조선 창업은 고려에 대한 쿠데타가 아니라 새 역사를 열기 위한 혁명이라는 내용을, 작품은 얄궂게도 오지로 숨어들어간 고려 충신의 후손의 관점에서 서술한다. 쿠데타의 피해자 위치에 서서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이 작품의 반동성은 기함할 정도다. 잠시 작품의 대사를 함께 감상해보자.

“포은 대감을 주살한 일, 두문동에 불을 지른 일, 고려 왕씨들을 수장한 일, 또 얼마 전에는 목은 대감을 독살했고, 두 번에 걸친 왕자의 난 하며….” 고려 왕가의 후손인 선(최명길)이 이방원이 저지른 악행을 조목조목 짚어 말하며 그가 임금의 자질이 없음을 논하자, 승려 석보(박영지)가 말한다. “주상이 되신 정안공이 그 일을 감당하지 아니했다면 다른 사람이 해도 했을 겁니다. 한 나라를 창업하는 일입니다. 창업한 나라의 국기를 다지는 일이지요. 모두가 있을 만한 일이었어요.” 다시 말하지만 신군부가 1980년 5월 광주에서 손에 묻힌 피비린내가 채 가시기도 전에 방영된 작품이다.

이 정도의 작품을 쓰는 데에도 간섭이 있었을까? 다시 신봉승의 회고를 보자. “나로서는 조선왕조 초기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드라마를 쓰고 있는 것이지만, 이른바 기관에서는 ‘무슨 연유로 역사를 빙자하여 청와대를 비방하느냐’고 따지고 드는 것이었다. (중략) 기관에서는 방송국의 심의기구를 강화하고, 원고의 사전 검열을 하면서 삭제를 거듭하더니, 마침내 완성된 드라마의 일부를 잘라내는 등의 혹독한 제재가 가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몇 주일 후, 방송 중단이라는 어처구니없는 폭력이 강행되었지만, 그 주체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면 정보 정치의 전형이 아니고 무엇인가.”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신봉승의 <개국>과 <추동궁 마마>를 보며 그의 작품이 각각 유신정권과 신군부 쿠데타의 정당성을 홍보하는 데 부역했다는 사실을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그조차도 권부의 사랑을 받기는커녕 끊임없이 외압에 시달렸다는 점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권력을 지닌 자들은 이처럼 제 입맛에 맞는 내용들만 방송을 탈 수 있도록 통제하며 조선 개국을 제 알리바이를 대는 데 활용했다.

ⓒKBS 홍보실
KBS <개국>(1983)은 전두환 정권이 집필 방향을 참견하면서 각본을 수정했다.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기 위해 마지못해 쿠데타에 나서는 영웅으로만 그려지던 이성계와 이방원은, 민주화 이후에야 비로소 입체적인 모습으로 묘사되기 시작했다. 이 작업을 해낸 건 KBS 대하사극 <용의 눈물>(1996~ 1998년)을 집필한 이환경 작가였다. <용의 눈물>에서 이성계(김무생)와 이방원(유동근)은 영웅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권력욕을 숨기지 않고 망설임 없이 쿠데타에 나서는 군인이었고, 이는 오랜 정치군인의 역사를 끝내고 하나회를 척결하며 ‘역사 바로세우기’ 사업을 추진하던 문민정부의 사관과도 그 방향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정사와 야사를 모두 아우른 <용의 눈물>의 탁월한 해석 이후, 이성계의 조선 개국을 긍정적으로만 묘사하는 작품이 다시 나오기까지는 제법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군부의 반복된 헌정 파괴 역사를 목격한 현대사에서 이성계의 조선 개국은 마냥 긍정적으로만 묘사하기에는 껄끄러운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정치 엘리트 정도전(조재현)이 민중에게서 진짜 삶이 어떤 것인지 배운 이후에야 비로소 조선 건국의 꿈을 세우는 KBS <정도전>(2014)까지 16년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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