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이란 지역에 자리 잡은 메디아의 북쪽에는 스키타이라는 유목 민족이 살고 있었어. 그런데 일군의 스키타이인들이 메디아로 이주를 해왔어. 메디아의 왕 키악사레스는 말 잘 타고 활 잘 쏘는 유목 민족 스키타이인들에게 사냥을 시켰는데 웬일인지 이 스키타이인들이 사냥에 실패하고 빈손으로 돌아왔어. 키악사레스는 화를 냈지. “이 사냥도 못하는 머저리들아.” 그런데 스키타이인들은 이런 모욕을 참고 넘길 사람들이 아니었어. 그들은 키악사레스의 아들을 죽이고 오늘날의 터키 지역에 자리 잡은 리디아로 달아났지. 결국 이 문제는 리디아와 메디아, 양 강대국의 전쟁으로 번지게 돼.
역사가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리디아의 기병대는 최강 전력을 자랑했고 메디아 역시 광대한 영토를 지닌 제국이었어. 5년 동안 계속된 전쟁에도 승부는 나지 않았지. B.C. 585년 할리스 강변에서 리디아와 메디아의 대군은 다시 맞부딪쳤어. 전투가 한창 벌어지던 도중 갑자기 양측 군대는 칼을 내려놓고 절규하게 돼. “태양이… 태양이 사라지고 있다.” 개기일식이 시작된 거야.
인간이 무리를 이루고 생존을 위한 투쟁을 시작한 이래 자연은 인류의 가장 무서운 적이자 가장 고마운 은인이었어. 환웅이 하늘에서 데리고 내려온 ‘비·구름·바람’을 비롯해서 태양과 달, 땅과 강, 바다와 숲 모두가 그랬지. 자연이 횡포를 부리면 꿇어 엎드려 분노를 거두어줄 것을 빌었고, 자연의 눈치를 보면서 짐승을 잡고 씨를 뿌리고 배를 띄웠지. 세월이 흘러 웬만큼 문명을 일구고 자연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을 때에도 자연이 보여주는 징후에 대한 인간들의 예민함은 좀체 줄어들지 않았어.
이를테면 B.C. 585년의 인류는 이미 일식에 대한 지식을 보유하고 있었어. 할리스 강변 전투로부터도 자그마치 1500년쯤 전에도 중국이나 오리엔트에서는 일식 관련 기록이 나타나고 있으며, 같은 시기에 살던 그리스의 철학자 탈레스 같은 이들은 그 일식 날짜를 계산하고 있었다고 하거든. 아마 리디아와 메디아의 왕쯤 되면 그게 일식인 걸 모르지는 않았을 거야. 하지만 리디아와 메디아의 병사들이 그랬듯 대다수 사람들은 그것을 신의 계시로 받아들였지. 그 이후 수백 수천 년이 지나도록 인류는 자연현상이 인간의 행동에 연관되어 벌어진다거나, 길하고 불길한 징후들을 예고한다는 믿음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어. 또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는 식으로 사람의 염원이 쌓이면 자연도 그에 응답하는 신호를 보내줄 것이라는 바람도 간직해왔고 말이야.
비록 시대착오적이고 비과학적일망정…
정말 근 200년 동안 어김없이 음력 5월10일에 비가 왔을까? 그거야 알 수 없지만 음력 5월10일은 대개 양력 6월 말이니 딱 장마철이야. 거기다 15세기(태종은 1422년 사망)는 지구적으로 온난한 기후로 장맛비가 요즘보다 풍족했던 것으로 추정되니까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을 거야. 하지만 사람들은 황공하옵게도 나랏님께서 땡볕에 자리 펴고 비를 내려주시옵소서 피를 토하며 부르짖는 모습을 기억하여 후세에 전했고, 장맛비가 오면 사람들은 ‘태종우’를 상기하면서 도롱이(옛날 우비)를 입고 논밭으로 흥겹게 일하러 갔던 것이지. “태종 대왕이 올해도 천지신명에게 비 내려달라고 조르셨구나.”
자연현상의 원리를 거의 꿰뚫고, 한 달 후의 일기예보도 가늠할 수 있으며 아무리 기이한 일이 일어나도 그 이유를 과학적으로 척척 풀이할 수 있는 21세기에 살지만 아빠는 때로 시대착오적이고 비과학적일망정 인류가 오랫동안 간직해온 자연과 인간의 감응에 대해 생각해볼 때가 있어. 태종이 죽어서 하느님을 졸라 태종우를 내렸다는 전설처럼, 신이 해를 가리는 것은 전쟁을 하지 말라는 명령이라고 믿은 리디아·메디아 병사들의 믿음처럼 말이다.
2016년 1월12일 안산 단원고등학교에서는 졸업식이 열렸어. 세월호 참사에서 다행히 생존한 학생 75명을 포함한 졸업생 86명이 아픈 추억을 딛고 학교를 나서는 날이었지. 새로운 희망보다는 함께하지 못하는 친구들 때문에 가슴이 미어지던 졸업식이 한창 진행되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수십 마리의 새 떼가 나타났어. 기이하게도 새 떼는 학교 지붕 위를 빙빙 돌다가 약속이나 한 듯이 옥상 난간에 일렬로 앉았단다. 그리고 학생들이 졸업식을 마치고 교문을 나선 뒤에야 다시 하늘로 날아갔지. 그 생생한 동영상을 보면서 아빠는 하늘나라의 아이들이 졸업식을 보러 왔구나 생각했어. 그렇지 않은 걸 알면서도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어.
그리고 마침내 바다 아래로부터 세월호가 떠오르던 날 강원도 원주에서는 정말 신비한 구름이 나타났다. 아빠 가방 지퍼 고리에 걸려 있는 노란 리본 모양 그대로의 구름. 처음에 그 사진을 보고 아빠는 합성인 줄로 알았고, 합성이 아니라는 걸 안 뒤에는 비행기가 남긴 비행운으로 여겼어. 그러나 공군이 공식적으로 비행운이 아니라고 밝혔고 기상청 역시 ‘매우 특이한 구름 형태’라고 자연이 만든 구름임을 밝혔단다. 어떻게 하필이면 그날, 하늘이 무너졌던 참사로부터 자식 잃은 부모들의 피눈물과 애타는 호소로 얼룩진 1000일을 넘겨, 그토록 밉살스럽게 굴던 대통령이 파면된 뒤 기어코 검은 물속에서 태양빛을 향해 조금씩 솟아오르던 그날, 하늘에 그런 선명한 추모 리본 구름이 새겨질 수 있었단 말이냐. 다시 한번 그럴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아빠는 하늘의 리본 사진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너희들이 그렸구나. 하늘나라에서도 너희들이 지켜보고 있었구나. 미안하다. 이제 그곳에서 편히 쉬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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