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넘게 사용한 밥솥이 덜컥 고장 나 새 밥솥을 장만하기로 했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밥솥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3인용을 살 바에야 조금 더 주고 6인용을 사지, 6인용을 살 바에야 10인용을 사지… 흔들렸다. 마음보다는 머리 쪽에 가까운 곳에서의 휘청거림. 가격 비교 앞에 서면 나는 늘 이성적 호구가 된다. 다행히 특별세일 찬스를 통해 10인용 전기밥솥을 6인용 가격으로 샀다. 낚인 걸까, 아닐까. 가격 비교 검색을 해보려다가 관뒀다. 그러나 관둔다고 해도 역시… 비교 완료. 이번에는 성공한 것 같았다. 몇만원 차이. 만원짜리 지폐 몇 장만큼 사람을 쉬이 쪼잔하게 만드는 것도 없다. 당신이 축의금 봉투에 얼마를 더 넣을까 덜 넣을까 고민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같은 부류다. 반갑다.

설거지해둔 헌 밥솥을 마른행주로 닦다가 문득 오래오래 잘 썼다는 생각이 들더니 느닷없이 애잔한 마음이 생겨버렸다. 말 걸고 싶었다. 밥솥에게. 그동안 고마웠다든지, 그동안 고생이 많았다든지, 덕분에 잘 먹고 살았다든지, 덕분에 배곯지 않았다든지…. 쌀이 떨어졌습니다, 돈도 떨어졌고요, 형편이 나아지는 대로 갚겠습니다, 보내주신 책과 쌀은 꼭꼭 씹어 먹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살아계실 적에 뜨신 밥상 한 번 더 차려드려야 할 텐데요, 인사하고 싶었다.

밥솥은, 특히나 헌 밥솥은 먹고사는 생활의 이력을 되새기게 하는 공산품이다. 밥솥에 누렇게 말라 있던 밥을 끓는 보리 물에 넣어 기사회생시킨 후에 푹 익은 오이소박이와 함께 먹은 적이 있고, 밥솥 안을 확인하지 않아서 다 차려놓은 밥상을 두고 밥을 해야 하기도 했고, 마감이 닥치면 밥솥을 내버려둔 후에 편의점 도시락이나 중화요리나 치킨 같은 걸로 끼니를 해결하며 글을 쓰기도 했다.
 

ⓒ시사IN 조남진


처음에는 늘 밥솥에 감격했다. 나만의 밥솥이 생긴다는 건 나만의 공간이 생긴다는 거니까. 자취를 시작하며 사용하게 된 3인용 밥솥도 그러했거니와 취직과 함께 얻었던 6인용 중고 밥솥도 잠깐이지만 인생에 도움을 주었다. 10년을 넘게 쓴 밥솥은 새 밥솥이었다. 새 밥솥에 해 먹는 밥은 새로운 맛이어서 새로운 사람이 되자 마음먹게 했고 새로운 사람에게 새 밥을 해 먹이고 싶게 하는 로맨틱함도 허락했다. 당신이 갓 지은 밥에 잘 구운 파래김 한 장을 얹어 먹으며 새 삶을 살겠다고 결심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같은 부류다.

나는 요리하는 걸 좋아한다. 재능이랄 것까지야 없는데 요리 눈치라고 할까, 요리 눈썰미라고 할 만한 게 있어서 어디서 한번 본 요리는 흉내 내 대충 먹을 만한 맛을 내고, 냉이나 달래, 미나리 같은 제철 채소로 요리해서 제철의 맛은 아니나 제철의 맛이 느껴지는 맛을 내고, 부추겉절이쯤은 고춧가루·식초·설탕·멸치액젓 정도로 뚝딱. 얕고 가벼운 맛은 아니나 얇은 맛 정도는 낸다. 손맛이 아닌 눈맛. 요리의 맛은 눈에서 손으로 옮겨간다. 백반 가게 간판에서 ‘손’을 자주 발견하게 되는 건 그런 이유. 그런데 이상하다. 요리는 그렇게 눈치껏 재밌게 해내면서도 밥은 매번 손대기가 싫다. 밥이란 역시 남이 해주는 밥이 최고라는 생각뿐.

밥이 맛있으면 다 맛있다

밥은 계속된다. 요리를 업으로 삼지 않은 사람으로서 내게 요리는 퍼포먼스지만 밥은 지속하는 행위이다. 요리는 화려하지만 밥은 수수하다. 요리는 보여주기 위한 거지만 밥은 보이는 것이다. 요리는 휴식에 가깝고 밥은 노동에 가깝다. 요리는 육체적인 것이지만 밥은 정신적인 것이다. 그 옛날 아빠나 엄마가 밥을 지으면서 하던 “밥이 맛있으면 다 맛있다”라는 말이나, “수십 년 밥을 해도 오늘 한 밥이 다르고 내일 한 밥이 다르다”라는 말이나, “쌀이 떨어지면 기운도 떨어진다”라는 말이나, “집에 찬은 없어도 밥은 항상 있어야 한다”는 말은 얼마나 인생에 관한 은근한 메타포였는지…. 그런데도 나는 아직 손맛도, 은근한 맛도, 밥을 안치는 인생의 맛도 잘 모르는 사람. 스스로 밥을 지어 먹으며 차츰 깨닫게 되는 인생의 진리라는 것도 있을 터이다. 그래서 그렇게 많은 아내(간혹 남편)들이, 동성 파트너들이 “당신 손에도 물 좀 묻히자”라며 대놓고 상대편에게 권유하는 것이리라. 만약, 당신이 애정이 남은 상대방에게 저런 소릴 듣고도 나 몰라라 하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같은 부류가 아니다. 그리고 둘도 어서 남남이 되는 것이 옳다.

헌 밥솥을 버리자니 그렇고 두자니 또 그렇다. 그렇다고 해도 당분간 밥솥 두 개를 나란히 두어보기로 했다. 이러다 헌 밥솥까지 수리해 사용하게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지만, 언젠가 새 밥솥도 헌 밥솥이 되고 고장이 나며 그럴 때 돌려쓸 게 하나 정도는 필요하지 않을까. 인생도 또한 그럴 수 있다면, 나는 헌 인생과 새 인생 중에 어떤 걸 더 귀중하게 여기게 될까.

기자명 김현 (시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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