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뜨자마자 휴대전화를 찾았다. 뉴스 페이지를 열었다. 무뎌졌을 줄 알았는데 무너졌다. 1073일 만에 세월호가 떠올랐다. 녹슨 창을 보니 그날 의자로 창을 부수려던 아이들의 사투가 떠올랐다. 세월호가 인양된 그날 아침 헌법재판소 탄핵 사건의 보충의견 전문을 다시 읽었다.


김이수·이진성 재판관이 쓴 보충의견은 16쪽 분량이다. 두 재판관은 다수의견과 달리 “대통령의 성실한 직책수행의무 위반은 사법 심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라고 전제했다. 참사 당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행적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휴일이 아니었으므로, 피청구인(박근혜)은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업무 시간 중에는 집무실에 출근하여 업무를 수행하여야 했다.” 언론의 오보로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웠다는 박 전 대통령의 항변도 반박했다. “국가의 지도자는 안전한 상황보다는 위험한 상황에 훨씬 많은 주의와 관심을 기울이는 법이고 그래야 마땅하다. 피청구인의 주장대로라면 피청구인은 상황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보고는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낙관적 보고에만 관심을 가져 상황이 종료된 것으로 판단한 셈이 되는데, 이는 그 자체로 위기 상황에서 피청구인의 불성실함을 드러내는 징표이다.” 박 전 대통령은 참사 당일 오전 10시15분 “단 한 명의 인명 피해도 발생하지 않도록 하며 여객선을 철저히 확인하여 누락 인원이 없도록 하라”고 지시했다고 주장한다. 보충의견은 이 지시에 대해서도 “상황에 맞지 않아 부적절한 전화 지시”라고 결론 내렸다.

5월9일 대통령 선거로 선출될 대통령이 헌법 전문과 함께 이 보충의견 전문을 꼭 읽어보기를 나는 바란다. 아니, 보충의견 전문을 집무실에 배치에 시시때때로 읽어보기를 권한다.

파면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이제는 말해야 한다. 본인을 위해서도, 다음 대통령을 위해서도, 세월호 인양 당일 구름으로 추모 리본을 만들어낸, 하늘로 떠난 304명의 희생자를 위해서라도 진실을 실토해야 한다. 그날 청와대 대응이 왜 잘못됐고 왜 그렇게 판단했는지 낱낱이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앞으로 국민 다수의 지지로 당선된 대통령들이 그 직책을 수행할 것이다. 국가 최고지도자가 국가 위기 상황에서 직무를 불성실하게 수행하여도 무방하다는 그릇된 인식이 우리의 유산으로 남겨져서는 안 된다.” 보충의견에 담긴 결론이 글이 아니라 현실에 적용되려면 박 전 대통령이 입을 열어야 한다.

이 칼럼을 독자들이 읽을 때쯤, 박 전 대통령의 구속영장이 청구되고 법원의 영장 발부 여부가 뉴스를 장식할 것이다. 세월호 참사 당시 행적은 기소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박 전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면책을 받았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진실의 역사에 거짓은 면책받을 수 없다. 늦지 않았다. 진실을 자백하라.

기자명 고제규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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