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아이의 담임은 명예퇴직을 앞둔 분이셨다. 하고 싶던 것들을 후회 없이 다 하시는 듯했다. 과학 시간에 끓는 물 공부를 하고는 그 물에 즉석 떡볶이를 해먹는 등 남다른 수업 방식과 규칙으로 아이들을 놀래거나 즐겁게 해주셨다. 숙제도 안 내주셨다. ‘집에서는 공부하지 마라’ ‘학원 가지 마라’ 하셨다. 체험학습에서 예상보다 일찍 돌아온 날에는 운동장에서 더 놀다 귀가하라고 지도하실 정도였다. ‘과소 학습’ 아이를 둔 처지에서는 살짝 아쉬운 점이 없지 않았지만 고학년 방과 후 축구 수업의 3분의 1 이상이 이 반 아이들로 채워지고 방학 때에도 수시로 ‘접선’해 뛰어놀고 급기야 다른 반 아이들까지 붙어 노는 것을 보고는 교사의 자리가 넓고도 깊다는 걸 새삼 확인했다.

의외로 학부모들은 교사에게 큰 기대를 걸지 않는다. ‘학대’만 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하는 이도 있다. 교사는 교사대로 방과 후 특별지도를 좀 하려고 하면 학원 시간 늦는다고 항의하는 학부모에게 시달린다. 서로 쉽게 불신하고 쉽게 포기한다. 하지만 아무리 ‘이상한 선생님’이라도 학년을 마치고 돌아보면 좋은 점 한두 가지는 꼭 있다. 아이들에게 영향력 있는 어른은 결국 스승이다. 대략 초등학교 5학년부터 중학교 2학년까지 ‘격변의 나날’에 어떤 교사를 만나느냐가 인생의 ‘오복 중 하나’라고 꼽고 싶다.

ⓒ김보경 그림

본인도 완벽주의자에 가까우시고 두 딸도 심하게 모범생인 어느 반 담임 아래서 그 반 아이들이, 특히 활동적인 남자아이들(과 그 아이들이 혼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는 여자아이들)이 어떤 1년을 보냈는지 자세히 들은 적이 있다. 듣는 내가 다 오줌이 마려울 정도였다. 초등 남자아이들은 여자아이들에 비해 학교생활이 고되다. 여물지 못하고 규범과 질서를 따르기도 힘겨워한다. 한마디로 약간 늦게 ‘인간계’에 진입한다고 이해하면 좋은데, 교실에서는 그 속도의 차이가 두드러진다. 욕구는 큰데 눈치는 안 따라주니 심한 경우 ‘망아지’ 혹은 ‘망나니’ 취급을 받는다.

나는 굳이 따지자면 아이들이 아니라 교사가 문제라고 감히 주장하고 싶다. 교사들은 평균적으로 학창 시절 ‘범생이’군에 속했다고 할 수 있다. 공부를 못해본 적도, 사고를 쳐본 일도 드물 것이다. 스스로 그런 ‘한계’를 인지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교사 대부분이 여자다. 경험과 소신이 남다른 분이 아니라면 열과 성을 다해 가르쳐도 멀뚱대고, 협동과 배려를 일러줘도 울퉁불퉁한 남자아이들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 내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는 꽤 큰 규모임에도 지난해 전 학년 통틀어 남자 담임은 단 한 분이었다. 말도 안 되는 성비 불균형이다. 이 정도의 비율이면 어느 조직이든 건강할 수가 없다. 교무실이라고, 학교라고 예외가 아니다.

교육 현장의 말도 안 되는 성비 불균형

그런데도 임용 단계에서 적극적인 조처는 없다. 교육대학교 입학 단계에서 성비 할당 정책을 펴고 있지만, 점점 수시 비중이 높아지고 그나마 특별전형은 대체로 제외되므로 현재 적게는 20~25%, 많게는 35~40%인 명목상 입학 정원 성비 규정이 실제로는 보장되지 않는다. 이 수치는 임용 단계에서 또 확 떨어져 한 자릿수를 기록하기도 한다. 2017년에는 남자 교원이 단 한 명만 임용된 지역도 있다.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고 방치하는 건 옳지 않다. 특단의 조처가 필요하다. 지혜를 모으면 방법은 있을 것이다.

일찍이 잘 놀다 외환위기 이후 엉겁결에 교대에 합격했던 과거 동네 동생은 부모님이 동네잔치까지 여는 통에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고 다니지 못했다. 대학 시절에도 여학생들에게 “넌 어떻게 이런 것도 모르느냐”고 타박을 받다가 저절로 철이 들어 꽤 우수한 성적으로 교사가 되었다. 망아지 혹은 망나니 취급 받는 남자아이들이 그 교사의 손을 거치면 유니콘 혹은 의인으로 거듭난다는 전설이 따른다. 나는 그가 성장기 때 공부 못해본 남자 교사라서 절반은 먹고 들어갔다고 생각한다.

기자명 김소희 (학부모∙칼럼리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