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안희태문화일보는 10월18일자 1면에 신정아씨 누드 사진을 게재한 데 대한 사과 글을 실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막무가내 저널리즘’ 정도가 될 듯싶다. 신정아씨 누드 사진을 공개해 큰 파문을 빚었던 문화일보가 한 달여 만에 내놓은 ‘억지 사과문’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이다.

문화일보는 10월18일자에 ‘독자 여러분께 드리는 글’이라는 것을 1면에 실었다. 신정아씨 누드 사진 게재에 대한 ‘입장’을 밝힌 글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독자들에게 사과했다. 하지만 문화일보가 ‘독자 여러분께 드리는 글’을 읽어보면 이 신문이 왜 사과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문화일보는 글에서 “신정아씨 누드 사진 촬영 당시의 상황과 핵심 관계자들의 증언 등에 대해 치밀한 취재를 벌였으며, 그 결과 이들 사진을 지면에 게재하는 것이 이번 사건 전체의 실체를 파악하는 데 필요 불가결하다는 단서라고 판단, ‘국민의 알 권리’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해 보도했다”라고 했다. 또 “신씨의 얼굴과 발을 제외한 신체의 주요 부위를 가리는 등 선정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했다”라는 것이다. “인터넷을 통한 무차별적인 사진 유포 등이 초래할 사생활 침해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라는 말도 했다. 그런데 왜 사과하는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결과적으로 선정성 논란과 인권 침해라는 비판이 제기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 달여 동안 문화일보 편집국 구성원들은 이번 사태와 관련한 사회적 비판을 겸허한 자기 반성의 기회로 삼고자 노력해왔다”라고도 했다.

놀랍다. 상식과 논리가 얼마나 ‘맛이 갈 수 있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문화일보의 말대로라면 왜 사과를 하는가.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그것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 보도했고, 선정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사생활 침해 예방에도 최선을 다했는데 사과할 일이 무엇이 있는가. 되레 자랑해 마땅할 일이다. 그런데 사과했다. 어찌 됐든 ‘선정성 논란’과 ‘인권 침해라는 비판’이 제기됐기 때문이란다. 논리도 없고, 줏대도 없다. 그저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는 식이다. 언론과는 거리가 멀다. 정치인들이나 할 법한 이야기다.

궁금한 것은 어떻게 이런 식의 궤변이 명색이 언론사라는 곳에서 통용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신정아씨의 누드 사진을 게재한 이후 문화일보 내에서도 상당수의 기자들이 문제를 제기했다고 한다. 기자들이 별도의 모임을 갖고 이 문제를 논의하기도 했다. 노사 공동의 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진 것도 이런 내부의 움직임 때문에 가능했다.

기자들, ‘논리’가 서는 언론 자유 외쳐야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문화일보 노조는 ‘억지 사과문’ 게재와 함께 노사 공동의 비상대책위원회도 해체됐다고 밝혔다. 말도 안 되는 ‘억지 사과문’을 노조도 받아들인 것이다. 문제를 제기했던 문화일보 기자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그들을 대표하는 ‘노조’가 그런 억지 해명을 순순히 받아들였다는 사실이 조금은 서글프다.

어디 문화일보뿐일까. 한 묶음으로 이야기할 일은 아니지만, 정부의 기자실 통폐합 조처 등에 반발한 기자들의 ‘농성 투쟁’을 보는 것 또한 그렇다. ‘국민의 알 권리’와 ‘언론 자유’를 앞세우고 있지만 왠지 번지수가 틀린 것 같다는 생각을 떨쳐버리기 힘들다. 이른바 정부의 ‘취재 지원 선진화 방안’을 편들어서가 아니다. 목소리는 높지만, 구체적으로 따져보면 기자들이 무엇 때문에, 왜 그렇다는 것인지 ‘논리’가 서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국민의 알 권리와 언론 자유를 위해 정작 문제를 제기해야 할 때, 진정으로 ‘단결’하고 ‘연대’해야 할 때 그러지 못하다가 임기가 몇 개월 남지 않은 정부를 두고 괜히 위세를 부리는 듯한 모양새도 보기에 좋진 않다.

만약 이들 기자들이 신정아 누드 사진 게재에 항의한 문화일보 기자들과 연대할 수 있었다면 적어도 문화일보의 뻔뻔스러운 ‘억지 사과문’은 읽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기자명 백병규 (미디어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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