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리크 알리의 〈극단적 중도파〉(오월의봄, 2017)를 이 지면에 소개한 직후(〈시사IN〉 제493호 ‘환상에서 현실로 도피하는 좌파’ 기사 참조), 이 책의 한국판이라고 해도 좋을 장신기의 〈진보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시대의창, 2017)가 잇달아 나왔다. 토니 블레어 시절의 노동당이 ‘제3의 길’을 찾는다면서 대처주의에 투항했던 신노동당의 모순을 분석한 것이 알리였다면, 장신기는 ‘이명박근혜’ 시대를 거치면서 점차 자신이 성토했던 신자유주의를 닮아간 한국의 진보 세력을 비판한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정교하게 다듬은 오리엔탈리즘은 서양이 동양을 지배하기 위해 동원했던 갖가지 인식론적 틀(여성화·아동화·신비화·무역사성 등)을 가리키며, 동양이 자신을 인식할 때 서양이 왜곡해놓은 동양관을 자청해서 받아들이는 것으로 완성된다. 동양인이 자신의 기준이 아닌 서양의 기준을 참조점으로 삼는 전도된 현상이 오리엔탈리즘이다. 사이드의 착상을 고스란히 빌려온 장신기의 ‘진보 오리엔탈리즘’은 한국의 진보 세력이 자기 정체성을 보수의 시각에 맞추어 고쳐온 현상을 일컫는다.


진보가 자신의 정체성을 버리고 보수의 요구를 내면화하게 되는 배경에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한국의 정치사회 기반이 보수 우위라는 현실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진보라는 기치만으로는 도저히 승리하기 어렵다는 회의론이 무르익고, 보수나 신자유주의 정책을 따라 하면서 여론과 유권자의 표심을 잡아야 한다는 진보 오리엔탈리즘이 힘을 얻게 된다. 차별금지법 제정이나 동성결혼 합법화를 놓고 박원순·표창원·박영선 등의 민주당계 인사가 줄줄이 말 바꾸기를 한 것이 그런 사례로, 가장 최근에 문재인도 이 클럽에 가입했다.

“진보 오리엔탈리즘은 진보 세력 외부에서는 진보에 대한 왜곡된 편견을 조장하고, 진보 세력 내부에서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근거 없는 회의와 자신감 결여와 같은 의식의 식민화 현상을 초래한다”라고 주장하는 지은이는, 진보가 자승자박에 빠지고 마는 대표적인 진보 오리엔탈리즘 담론을 이렇게 압축했다. ①안보는 보수 ②이념 없는 민생 ③반대만 하는 진보 ④원칙 없는 역사 화해 ⑤탈호남과 반노무현. 장신기는 다섯 항 가운데 가장 폐해가 심각한 것으로 ①을 꼽는데, 실제로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던 시민이 목도하고 있는 것도 더불어민주당의 유력 대통령 후보인 문재인과 안희정의 사드 배치 찬성론이다. 두 사람은 ‘햇볕정책이 안보’이며 ‘진보가 보수보다 안보를 더 중요시하고 잘한다’는 진보 정체성을 내팽개치고 표심이 선호하는 보수적 기준에 자신을 맞추는 자기모순적인 해결책을 선택했다.

문재인 캠프가 지난 대선 때 박근혜 후보를 도왔던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 원장을 영입해서 작은 소란이 일었다. 문 전 대표가 “새로운 대한민국의 비전은 개혁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가 뜻을 모아 만들어야 한다”라고 우기자, 안희정 지사 측은 “안 지사의 대연정을 비판하면서 박 전 대통령의 경제 교사를, 김종인 전 대표에 이어 두 번째로 모셔온 것은 일관된 논리에 맞지 않는다”라고 꼬집었다. 여기에 이재명 시장도 가세하며 이렇게 비판했다. “문재인 후보의 자문그룹인 ‘10년의 힘 위원회’ 60명 중에서 무려 15명이 삼성 등 재벌 대기업을 위해 일했던 사람들이다. 최근 문 전 대표의 ‘묻지마식 영입’이 민주당의 위기를 불러오고 있다.”

진보가 10년 동안 ‘우클릭’을 거듭한 이유

피아를 구별할 수 없는 이런 혼돈은 전임 대통령들의 경제정책을 군말 없이 이어받겠다는 안희정의 발언이 미리 보여주었듯이, 여당과 야당 간의 전통적인 정권교체가 더 이상 새로운 비전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공공연한 비밀을 확인시켜준다. 민주당은 진보의 설계를 위한 비전의 제시 과정에서 반드시 피해야 할 두 가지 함정을 피하지 못했다. 첫째, 이들은 표를 얻기 위한 감정적인 우민정치의 함정을 피하지 못했다. 장신기가 크게 우려한 것처럼, 청산 없는 대연정은 표를 얻기 위해 진보의 가치를 반납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에서 일종의 자해전술이다. 둘째, 무엇보다 이들은 ‘권력은 기업으로 넘어갔다’던 못난 대통령의 한계를 깨트려야 할 숙제로 여기지 못하고, 극복해야 할 한계를 자신들의 로두스로 삼았다. 우리는 저 로두스에서 장미꽃을 입에 물고 춤추는 자들이 누구인지 잘 안다. 리무진 좌파, 캐비어 좌파, 재력가들의 좌파가 그들이다.

신자유주의가 점령해버린 세계의 정치는 텅 빈 민주주의라는 형식으로만 남아 있다. 많은 정치학자와 저널리스트들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면서 좌파가 사라지게 되었다고 말한다. 자본주의가 자신의 대응 세력을 잃게 되면서 자본주의의 전횡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여당과 야당은 ‘극단적 중도’라는 무이념 지대에 혼거하게 되었고, 알리의 말처럼 우리는 이제 야당 없는 세계에 산다. 민주주의는 유명론처럼 텅 빈 이름이 된 것이다.

한병철의 신간 〈타자의 추방〉(문학과지성사, 2017)은 정치에서 야당이 사라져버린 세계에서 생겨나는 끔찍한 폭력을 성찰하게 해준다. 사르트르는 “타인은 지옥”이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그와 정반대다. 인간은 타자에 의해 활력과 성숙을 얻게 되며 사회의 활력과 성숙 또한 타자를 필요로 한다. 마찬가지로 야당은 정치에 없어서는 안 되는 타자라고 할 수 있다. 타자가 지옥이 아니라, 타자 없는 세계야말로 모든 것을 획일화하여 같은 것의 지옥을 만든다. 타자 없는 세계가 지옥인 것은 그 지옥이 정체되어 있어서가 아니라, 획일화를 벗어나기 위해 폭력적으로 차이(희생양)를 만들어내는 때문이다. 2013년 9월4일, 여의도 정치가 획일화의 지옥을 벗어나기 위해 만들어낸 인위적인 차이가 바로 통합진보당이다. 다가오는 5월9일, 제19대 대통령 선거에 나올 후보들의 공약이 하나같이 어슷비슷하다면, 그들을 구하기 위해 마련될 희생양 역시 극단적 중도에 저항하는 세력일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진보 오리엔탈리즘의 구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만의 정치철학”이 없는 리더와 당내에 “진보 진영을 약화시키는 보수적 프레임을 진보 혁신 논리로 오인”하는 전략가들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근 10여 년 동안 한국의 진보가 ‘우클릭’을 거듭해온 원인을 기울어진 운동장에 전가하지만, 이미지 포장과 포퓰리즘밖에 할 줄 아는 게 없는 리더십과 생존에만 급급한 지도부가 기울어진 운동장을 ‘미끄러운 비탈길’로 만들었다. 여기에 “진보 세력의 주된 정치적 기반이 중산층 리버럴 세력”이라는 잠금장치가 합세한다.

기자명 장정일 (소설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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