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재판에서는 보고 싶었던 사람들이 여럿 증인으로 나왔다. 업계 용어로 속칭 ‘뻗치기(무작정 기다리기)’를 하며 만나려던 이들이다. 뻗치기 속성상 만난 사람보다는 못 만난 사람, 반겨준 곳보다는 쫓겨난 곳이 더 많다. 법정을 취재하며 그들의 얼굴을 보고 있자면, 그가 박근혜 게이트에서 수행했던 역할과 위치 등 공적인 기록과 사적인 내 기억이 뒤엉킨다.

‘저 증인의 집 앞에서 뻗치기를 할 때는 경찰이 출동했지. 집주인 허락 없이 아파트 복도에 앉아 있는 게 주거침입죄인지를 두고 경찰과 승강이를 벌였는데’, ‘저 증인의 아내는 무척 힘이 셌어. 빌라 4층에서 1층까지 나를 밀어냈지. 그때 그 여자가 “어딜 건방지게 도둑고양이처럼 몰래 들어와?”라고 했는데’ 등등.

ⓒ시사IN 양한모

나라고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그 집 앞에 갔겠는가. ‘뻗치기’라는 용어는 사실 복잡다단한 개념이다. 추위, 배고픔, 지루함, 떨림, 공포, 생리현상 참기. 그중에서도 가장 곤란한 건 미안한 마음이 들 때다. 예고도 없이 남의 집에 쑥 찾아가는 건 무례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기자의 방문은 당사자뿐 아니라 가족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집 주변을 탐문하며 돌아다니는 기자들 때문에 가족들은 동네에서 부당한 낙인찍기를 당할 수도 있다.

한 번은 취재 대상의 남동생한테서 전화가 왔다. 동생은 처음에 누나의 집주소와 휴대전화 번호를 어떻게 알았느냐고 화를 냈다. 그는 통화를 마칠 때쯤 거의 사정을 했다. “제발 연락도 하지 마시고 찾아오지도 마세요.” 이 취재원이 이번 박근혜 게이트에 연루된 핵심 인사는 아니다. 핵심 인사의 측근인데, 취재를 하다 보니 가족들도 기자들한테 적잖이 시달렸다.

그렇다고 ‘뻗치기=기레기’라는 등식이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뻗치기는 직업 윤리상 기자의 기본적인 ‘의무’에 가깝다. 팩트 확인을 위해 묻고 또 묻고, 그러기 위해서 기다리고 쫓겨나고 또 기다릴 수밖에 없다. 박근혜 게이트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과정에도 곳곳에 기자들의 ‘뻗치기’가 있었다. 실제로 한 언론사의 기자가 뻗치기로 이번 사건의 핵심 정보를 입수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물론 그 기자가 나는 아니다). ‘뻗치기를 안 하는 건 오히려 직무유기다’라고 자기최면을 걸어보지만, 그래도 간혹 드는 씁쓸한 뒷맛은 떨칠 수 없다.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