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일자리 창출’을 위해 정부는 어떤 구실을 맡아야 할까?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공부문 일자리 81만 개 창출’ 주장을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지난 1월18일 싱크탱크 ‘정책공간 국민성장’이 주최한 포럼에서 문 전 대표의 발언은 다음과 같다. “국민의 생활 안정, 의료, 교육, 보육, 복지 등을 책임지는 공공부문 일자리가 전체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이 21.3%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7.6%밖에 안 된다. OECD 국가 평균의 3분의 1 수준이다. 공공부문 일자리 비율을 3%포인트 올려 OECD 평균의 반만 돼도 공공부문 일자리 81만 개를 만들어낼 수 있다.”

정치권 일각과 재계는 일제히 문재인 전 대표를 비판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박병원 회장은 “(민간부문의) 세금 내는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는데 (공공부문의) 돈을 쓰는 일자리가 얼마나 오래 지탱할 수 있겠느냐”라고 반박했다. 일자리는 민간 주도 경제성장의 결과물이며, 세금으로 만들어지는 공공부문 일자리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의미다. 문 전 대표가 인용한 OECD 일자리 통계에 대한 지적도 있었다. 한국의 공공부문 규모가 과소 집계되었으며, 공공부문 종사자의 보수 총액은 이미 OECD 평균에 근접하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연합뉴스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월6일 서울 노량진 학원을 방문해 공공 일자리 확대 의사를 밝혔다.
대체로 공공부문의 확대를 민간경제 활력 저해로, 경제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비생산적 행위로 전제하는 듯하다. 과연 그럴까? OECD 선진국 대부분은 한국에 비해 절대적으로 많은 공공부문 종사자를 유지하고 있다. 전체 취업자 대비 공공부문 종사자 비율로 볼 때, 덴마크는 34.9%에 이른다. 노르웨이(34.6%)와 스웨덴(28.1%)의 공공부문 일자리 비율 역시 한국의 3~4배다. 이렇게 공공부문 일자리 비중이 가장 큰 3개국은, 형평성과 경제성장을 함께 성취했다는 이유로 몇 년째 계속해서 다보스 포럼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북유럽 복지국가다.

실제로 공공부문이 공급하는 정부 서비스는 시장의 역할을 제한하기보다 공정성을 보장하고 지속 가능하게 만든다. 20세기 이전의 ‘야경국가’는 정부 기능을 최소한으로 한정했다. 20세기 들어 독점·대공황 등의 시장 실패, 전쟁이나 오일쇼크 같은 체제 위기들이 발생하면서 정부 서비스의 영역은 지속적으로 확대되어왔다. 시장 내 불공정을 감시할 뿐 아니라 시장 실패를 교정하고 사전에 방지함으로써 시장과 기업의 방패막이 구실을 수행한 것이다.

선진국에서 공공 사회서비스가 대폭 확대되기 시작한 것은 1950~1960년대였다. 그전에는 시민들이 ‘생애 위험(출산·육아·실업·장애·노후)’에 개인적으로 대처해왔다. 이 시기로 접어들면서 공공 차원에서 생애 위험에 대응하게 된다. 공공 보육원이나 양로원, 고용보험, 장애인 급여 등 다양한 복지제도가 바로 그것이다. 큰 수혜자 가운데 하나가 바로 여성이다. 전통적으로 여성이 부담했던 보육과 노인 돌보기 등이 공공부문으로 이전된 것이다.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대폭 높아진 덕분에 당시 선진국들은 전후 최고 수준의 경

ⓒ연합뉴스한 소방대원이 구조작업 후 생수로 눈을 닦고 있다. 소방, 경찰 부문 등 공무원 수가 부족하다.
제성장을 성취할 수 있었다. 공공부문의 확대와 경제성장이 상호 보완적으로 이뤄졌던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공공부문 종사자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스웨덴의 경우, 195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증가한 일자리의 90%가 공공 사회서비스 부문에서 발생했다.

청년 중심의 공무원 충원 시급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 이전까지는 연간 10% 이상의 성장률과 완전고용 덕에 생애 위험을 개인들에게 맡겨놓을 수 있었다. 외환위기 이후 중국의 부상과 더불어 제조업 중심의 한국 경제는 ‘고용 없는 성장’을 극심하게 경험한다. 생산성 증가로 노동인력이 과거보다 덜 필요하게 된 데다 기업들이 생산기지를 해외로 옮겼기 때문이다. 경제성장이라는 과실이 일자리를 통해 분배되는 경로가 막혔다. 청년들의 체감실업률이 무려 34.2%에 달한다. 공공부문의 선도로 일자리를 창출하자는 문재인 전 대표의 아이디어가 나온 이유다. 특히 인구통계학적으로 청년 구직연령(25∼34세) 인구는 2023년부터 급격히 감소하게 된다. 그 시기까지 5~6년을 겨냥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한국은 1981년 이후 지난 35년간 연평균 5~6% 이상(1990년대까지는 10% 수준)의 경제성장을 달성했다. 같은 시기, 공무원 수는 연간 1.3% 정도 증가했을 뿐이다. 공무원을 포함한 공공부문의 정원과 인건비 총액을 철저히 통제했다. 결과적으로 안전(소방, 경찰 등) 및 사회복지 부문의 공무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게 되었다. 이 부문에는 청년 중심의 공무원 충원이 시급하다.

또한 공공예산이 투입되는 사회서비스 부문의 불안정 노동자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공급하는 방법이 있다. 예컨대 이미 민간 보육원이나 요양원은 대부분이 정부 보조금으로 운영되지만 서비스의 질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종사자의 임금도 매우 낮다. 차라리 가칭 ‘사회서비스 공단’을 설치해서 그 산하에 보육·요양 시설을 두면 어떨까? 정부가 사회서비스를 직접 공급하는 형태다. 종사자의 처우 개선(공공부문의 좋은 일자리 창출)은 물론 대국민 서비스의 질도 획기적으로 강화할 수 있다. 또한 공공부문이 일부 필요 인력을 민간 용역업체에서 공급받는 ‘(정부의) 간접고용’도 개선해야 한다. 지난해 구의역 스크린도어 노동자 사고에서 볼 수 있듯이 이 부문 노동자들은 저임금에 시달리는 데다 안전도 보장받지 못한다. 그렇다면 차라리 공공부문이 직접 고용할 수 있다.

물론 돈이 더 든다. 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미 정부 돈이 들어가던 부문이므로 81만 개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에 따른 추가예산 부담은 5년 누계 21조원 정도로 묶을 수 있다. 상당수 공기업은 자체 수익을 활용하는 것만으로 이런 변화가 가능할 것이다.

일각에서는 한국의 공공부문 종사자 수가 OECD 보고서에 나온 수치보다 훨씬 많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수치는 정확한 국제 기준에 따라 작성된 것이 아니다. 더욱이 OECD는 20만명 이상의 직업군인이나 군무원까지 공공부문 종사자로 분류해놓았다. 다른 OECD 국가들의 직업군인은 한국만큼 많지 않다. 즉, OECD 보고서에서 한국의 공공부문 일자리를 실제보다 과다 집계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정부지출 가운데 공공부문 종사자에 대한 보수가 이미 상당한 규모에 이르기 때문에 이쪽의 일자리를 늘리면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반정부지출(중앙정부와 지자체, 사회보장기금 등의 지출) 가운데 한국 공공부문 종사자 보수의 비율(21%)이 OECD 평균(23%)에 거의 근접해 있다는 것이다. 이는 통계를 잘못 해석한 그릇된 주장이다. 우선 GDP 대비 일반정부지출의 규모 자체가 31.8%로 OECD 평균 45.3%에 비해 3분의 2에 불과하다. 또한 일반정부지출의 구성 요소 중 가장 큰 사회보장지출 비중이 25.6%(OECD 평균 40%)에 불과해 또 다른 구성 요소인 공공부문 보수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크게 나타났을 뿐이다. 예컨대 A국의 공공부문 종사자에 대한 보수가 100만원이고 사회지출이 200만원인 경우, 일반정부지출 중 공공부문 보수는 33.3%로 집계된다. 반면 B국의 공공부문 보수가 200만원인데 사회지출이 600만원에 달하면 공공부문 보수는 일반정부지출 중 25%로 나타날 것이다.

‘작은 정부’로 유명한 스위스조차 인구구조의 변화에 따른 사회적 수요에 부응해 최근 3년간 공공부문 종사자 수를 취업자 대비 15% (2009년)에서 18%(2013년)로 늘렸다. 요양과 의료, 환경보호 분야의 공공 일자리가 주로 증가했다. ‘고용 없는 성장’을 경험하고 있는 한국에서 81만 개의 공공부문 일자리 증가는 필요할 뿐 아니라 현실적으로 달성 가능한 최소한의 목표라 할 것이다.

기자명 김용기 (아주대 경영대 교수·국민성장 일자리추진단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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