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가끔 밥하기 싫을 때가 있다. 전날 과음으로 몸이 무겁거나(주된 이유다), 반찬이 진짜로 애매할 때다. 저녁 반찬으로 무엇을 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톡 하고 솟아나는 메뉴가 없을 땐 구호물자에 손을 댄다. 라면이다. “김윤~ 라면 먹을까?” “콜” 가끔 가련한 눈길을 보내긴 해도 거절하지는 않는다. 윤희의 눈길에는 “쯧쯧, 어제 조금만 마시지. 이번 한 번만 봐준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라면은 간단하게 한 끼 때울 수 있으면서도, 개인적 취향이 도드라지는 음식이다. 봉지 뒷면에 적힌 설명대로 곧이곧대로 끓이는 사람, 갖가지 부재료를 넣는 사람, 면 따로 국물 따로 끓이는 사람 등등 제각각이다. 꼬들꼬들한 면이냐 푹 퍼진 면이냐에 따라 다양한 변주를 보이기도 한다.

나는 면은 꼬들꼬들하게, 부재료는 달걀과 김치 정도 넣는다. 김치는 물을 끓일 때부터 넣는다. 김치가 푹 익어야 꼬들꼬들한 면과 어울린다. 대다수 라면에는 4분 정도 삶으라는 설명이 있지만, 나는 3분 정도 삶은 뒤 달걀 하나를 넣는다. 바로 뚜껑을 닫고 불을 끈다. 수저와 물을 준비하는 1분 정도 사이에 면을 뜸 들인다. 뚜껑을 열면 라면 특유의 꼬불꼬불한 라인이 온전히 살아 있다. 달걀은 노른자의 겉만 익은, 완벽한 반숙 상태다. 면을 조금 먹다가 노른자를 터뜨려 김치와 함께 먹는 맛을 즐긴다. 그런데 윤희랑 먹을 때는 이제 그 맛을 포기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최근 둘이 라면 먹다가 사달이 났다.

ⓒ김진영 제공

언젠가 라면에 김치를 넣는 게 싫다고 한 말이 기억나기는 했다. 윤희는 희한하게도 김치볶음밥이나 김치찌개는 잘 먹으면서도 김치라면은 좋아하지 않는다.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먹을 때 친구들은 1회용 김치를 사먹어도 윤희는 독야청청 라면만 먹는다. ‘김치가 없었더라면 무슨 맛으로 밥을 먹을까’(김치 주제가) 궁금해했던 가수 정광태씨가 윤희를 만난다면 궁금증이 해소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김치라면을 끓이면 라면만 골라먹었다.

어쨌든 내 식대로 라면을 끓였다. 알아서 골라먹겠지 싶었다. “김윤~ 라면 먹자.” ”라면에 김치 넣지 말라고 했잖아! 왜 아빠 입맛대로 끓이냐고!” 평소와 달리 톤이 높다. 속으로 아차 싶었다. 윤희는 올해 중2가 된다. 겨울방학 들어서기 전부터 감정 기복이 좀 커졌다. 평소에는 그냥 넘길 수 있는 일에 화를 내거나 울음을 터뜨렸다. 일하고 있으면 옆에 와서 귀찮게 알짱거리던 일도 줄어들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대한민국 중학생 부모들을 공포에 몰아넣는다는 ‘중2병’ 초기 증세와 비슷했다.

1초간 윤희랑 눈이 마주쳤다. 100만 볼트 전류가 찌릿하고 흘렀다. 순간 내가 알파고가 된 듯 많은 경우의 수를 떠올렸다. 화내? 말아? 다시 끓여줘? 등등. 일단은 먹는 걸로 결론을 내고 밀어붙였다. “윤, 오늘은 그냥 먹어. 다음에는 안 넣을게.” “아빠는 왜 내 말을 무시해? 내가 싫다고 분명히 이야기했잖아.” “무시한 게 아니고 깜빡했어. 오늘만 그렇게 먹어.” 대답이 없다.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김치 넣은 게 저리 억울한 일인가 싶어 속상했지만, 밥상머리에서 화를 낼 수는 없었다. “아빠가 미안” 하고 말았다. 라면 먹으면서도 서로 말이 없다. 몇 젓가락 뜨던 윤희가 일어선다. 평소 같으면 더 먹어라 붙잡았겠지만 나도 가만히 있었다. 지금 건드려봤자 냉전에 얼음찜질만 더할 뿐이다.

따로 차림으로 밥상 위의 평화를

몇 시간 동안 윤희는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경험상으로 밤 9시쯤 지나면 나올 것 같았다. 아무리 저녁밥을 든든히 먹어도 밤 9시가 넘으면 배고프다는 아이다. 아니나 다를까, 문이 열리는데 방을 나오는 품새가 화장실은 아니다. 내가 너를 모를까. 무르팍에 턱 앉더니 “아빠, 배고파” 한다. “그럼 치킨 먹을까?” “응, 헤헤.” 그렇게 그날 ‘라면 전쟁’은 끝났다.

윤희가 커갈수록 뭐랄까, 전과 다른 묘한 것들이 우리 관계에서 튀어나온다. 앞으로는 김치라면보다 더한 것들과 만나게 되리라. 〈지뢰 찾기〉 게임이 생각난다. 한순간 상황 판단을 잘못하면 게임을 망친다. 상하좌우를 잘 보고 클릭해야 한다. 나는 앞으로 잘할 수 있을까? 아, 그렇다고 김치라면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라면 끓일 때 따로 끓인다. 밥상 위 평화는 각자의 입맛 존중으로 되찾았다.

기자명 김진영 (식품 MD)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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