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유족 단식 천막부터 1000만 촛불집회까지, 박원순 시장이 없었다면 광화문광장도 없었다.” 시사만화가 박재동 화백이 최근 SNS에 올린 글이다. 그는 ‘촛불 도우미’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국민감사패를 수여하자고 제안해 누리꾼들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박 시장은 ‘촛불집회 지킴이’ 구실을 수행했다는 평가 속에 정권교체의 주역이 되겠다며 대통령 선거 출사표를 던졌다. 하지만 대통령 탄핵소추안 통과 이후 조기 대선 국면에 접어들면서 그의 지지도는 예상외로 저조했다. 그는 현실 정치의 높은 벽을 절감했다는 말을 남기고 지난 1월26일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 뒤 문재인·안희정·이재명 등 더불어민주당 내 예비 주자는 물론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까지 ‘박 시장 끌어안기’에 나선 모양새다. 박원순 시장을 만나 현재 심경과 향후 대선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등을 물었다.

ⓒ시사IN 조남진

요즘 심경은? 내려놓으니 마음이 편하다. 남은 임기 동안 서울 시정 잘 챙기고 마무리해야겠다는 생각뿐이다. 몇 달 뛰면서 많은 걸 느꼈다. 사람은 경험을 먹고 사는 존재니까, “대통령 선거 과정은 역시 제대로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구나” 하는 걸 절실히 깨달았다. 준비가 부족했다.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낀 것은?시정에 파묻히다 보니 대선에 대한 의지나 결단을 제대로 못했다. 정책이든 주변 조직이든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2015년 메르스 사태 때는 20% 이상 지지율도 기록했다.지지율이야 바람에 나부끼는 새털 같은 것이다. 올라갈 때도 있고 내려갈 때도 있다. 메르스 사태 때도 정치적으로 의도하고 취한 행동은 아니었는데 지지율이 올라갔다.문재인·안희정·이재명 후보로부터 도와달라는 연락은 받았나?불출마 선언 후 모두 전화 통화는 했다. 만나자고 요청해왔지만 경선 과정에서는 중립을 지키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 완곡하게 제 뜻을 전하고 만나지는 않았다. 나는 중립을 지키지만 나를 도왔던 분들은 자유롭게 여러 인연에 따라 각 후보 캠프로 가서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최근 측근인 예종석 아름다운재단 이사장과 김수현 서울연구원장이 문재인 캠프로 갔는데, 사전에 상의했나?그분들도 그렇고 대부분 나에게 말씀을 하고 들어간다. 문재인 캠프에 이미 가 있는 분(임종석 전 정무부시장)도 저랑 굉장히 친한 사이라서 미안해하며 갔다. 내 주변에서 안희정 지사와 이재명 시장 쪽으로 가서 돕는 분도 있다.대통령 선거운동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할 용의가 있나?

선거법상 현직 시장이라서 지원에 한계가 있더라. 유세는 못하고 공동선대위 참여는 가능하다고 하더라. 경선이 끝나고 후보가 확정돼 본선으로 가면 정권교체를 위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당원의 한 사람으로서 더 나아가 중요한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법이 허용하는 역할을 다하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한다.

불출마 선언 전에 ‘야권 공동정부’ ‘범민주 공동정부’를 주장했는데?

공동정부가 만들어지지 않고는 새 정부의 성공이 어렵다. 김부겸 의원하고 내가 이런 주장을 했을 때 당도 그렇고 다른 후보도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그 후에 대연정 얘기까지 나오고 있지 않나. 다음 정부가 성공하려면 야권만이라도 확실하게 공동정부를 구성하는 게 좋다.

야권 내부도 서로 불신이 깊은데 가능하겠나?

물론 서로 사이가 썩 좋지는 않다. 원래 국민의당은 민주당과 한 당이었고, 정의당도 당의 색깔과 이념이 많이 다르긴 하지만 얼마든지 정책면에서 교집합이 있으니 공동정부 설립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공동정책을 내세우면서 함께 비전을 만들면, 선거 승리에도 도움이 되고, 나아가 다음 정부를 성공으로 이끄는 데도 필수적이다. 민주당 단독 집권을 가정해보면, 조기 대선이라 인수위원회 기간 없이 바로 대통령이 취임하는데 첫 내각 구성 과정부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국무총리나 장관을 지명해도 국회 인사 청문회에서 제대로 통과되겠나. 모든 정책이 국회 동의와 입법적 해결이 필요한데, 개혁 작업이든 적폐 청산 작업이든 국회에서 다수가 합의해야 가능하다.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민주당 단독으로 국정을 운영하기가 쉽지 않다. 국민의 기대는 큰데 과연 새로운 정부가 그걸 모두 해낼 수 있을까? 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 등이 범야권 공동정부를 구성해야 가능하다.

서울시장 선거 때 박 시장을 지원했던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와 관계는 어떤가?

지금은 내가 민주당에 발 딛고 있는데 당연히 거기 합당한 행보를 해야 하지 않을까. 앞서 말했듯 어차피 범야권 공동정부가 만들어지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대선 승리 이후 안정적 집권 기반을 만드는 것이 정치가로서 우선해야 하는 일이다. 본선 과정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얼마든지 하겠다.

국정원으로부터 정치공작 피해를 당했다.

국정원이 ‘박원순 제압 문건’을 만든 행태는 헌법과 법률을 유린한 또 하나의 국정 농단 사태다. 제대로 밝혀지지도 못했다. 국정원이 과거 군사독재 시절부터 늘 정치공작을 하고 권력남용을 했다. 민주화운동은 정보기관의 농단에 대한 투쟁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다시 정치에 개입하고 있다.정권교체가 되면 국정원 개혁은 어떻게 이뤄져야 한다고 보나?

국정원이 정치에 개입하면 안 된다는 확고한 원칙이 정립되어야 한다. 국정원뿐만 아니라 권력을 남용하는 어떤 국가기관도 권력을 국민들에게 돌려줘야 한다. 검찰 개혁이 새 정부의 화두인데, 검사장들을 직접선거로 뽑는 것도 고려해봐야 한다. 국정원도 국민의 통제가 이뤄져야 한다. 국회의 예산 통제가 필요하다. 지금 국정원 예산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전혀 모른다. 국회가 예산 통제를 하면 바뀐다. 새로운 정부가 그런 면에서 아주 현명하고 지혜로워야 한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파문을 어떻게 보나?

한마디로 국가권력의 사유화라고 정의할 수 있다. 정부는 공정한 방식과 절차에 따라 공개적이고 합법적인 기준에 맞게 운영되어야 된다. 예술인들을 내 편과 네 편으로 나누고 그걸 절대 선과 악, 적과 동지로 나눠 지원을 차별한다는 건 심각한 일이다. 서울시도 민간단체 지원을 하는데 보수 단체들도 지원한다. NPO지원센터를 만드는 과정에서 보수 단체도 참여하고 그 사람들도 이용할 수 있게 했다. 만일 서울시에서 보수 단체를 배제하는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시행했다면 그 단체에서 가만히 있겠는가?

ⓒ시사IN 신선영지난해 11월2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하야 촉구 촛불집회에 박원순 서울시장(가운데)이 참여했다.
서울시장 재임 5년째인데 자평한다면.

한 도시를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지난 5년은 과거 패러다임을 21세기에 맞는 패러다임으로 바꾸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과거 개발주의 고도성장 시대에 어울렸던 하드웨어와 속도, 효율성 대신 소프트웨어와 사람이 중심이 되는 인간의 도시, 이런 가치가 더 중요한 서울로 바꾸려고 했다. 물론 시간 부족이라든지 중앙정부의 방해 때문에 가로막힌 면도 많았지만 패러다임을 크게 바꾸었다고 자평한다.일각에서 전임 시장들에 비해 가시적 성과가 부족하다고 지적하는데?

시장이 되니까 처음부터 주변 분들이 “이명박 시장의 청계천 복원 사업처럼 한 방 크게 터트려라”고 얘기를 하더라. 정치적으로 보면 서울시장 하고 대통령 됐으니 성공한 모델로 간주하겠지만, 나는 이명박 대통령을 실패한 리더라고 본다. 그래서 가시적 성과를 내는 데 집착하지 않았다. 지난 5년 재임 기간에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수치로 보면 어느 분야든지 확고한 변화가 있었다.어떤 변화가 있었나?전임 시장한테 물려받은 서울시 채무액 가운데 7조6000억원을 줄였고, 사회복지 예산도 4조원에서 8조3000억원으로 2배 이상 증가시켰다. 또 국·공립 어린이집을 5년 전에 비해 17배 늘렸다. 공공임대주택만 하더라도 과거 이명박·오세훈 시장 시절을 다 합친 것만큼 많은 10만 호 정도를 마련했다. 지난해 서울시가 미국 록펠러재단 100RC가 선정한 ‘세계 100대 재난 회복력 도시(100 Resilient Cities.100 RC)’에 이름을 올렸다. 재난 회복력이란 자연·사회 재난을 예방하고 재난이 발생했을 때 최대한 빨리 회복하는 역량을 말한다. 수많은 노력과 예산을 투입한 결과이다. 3·1절을 맞아 서울시가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관’ 건립 사업에 나서기로 했는데?

헌법 전문에도 나오지만,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잇는다. 건국 100주년이 다 되도록 중앙정부에서는 아무것도 안 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오히려 임시정부 법통을 부정하는 건국절 논란만 일으켰다. 임시정부 기념관 하나 없다는 게 말이 안 된다. 서울시가 임시정부 기념관 터라도 마련하려고 예산 250억원 정도를 들여 서대문구의회 건물을 이전하고 부지를 확보했다.촛불집회를 지원해 ‘촛불 도우미’라는 별명이 붙었다.

서울시 공무원들이 촛불집회 때마다 1000명 정도 나가서 안내하고 봉사했다. 그래도 위대한 촛불 시민혁명이 가능했던 것은 참여 시민들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평화롭고 질서를 잘 지키고 집회가 끝난 뒤 쓰레기를 치우는 시민들이 광화문의 기적, 시민혁명을 만들어냈다.광화문광장 세월호 추모 천막 설치 때부터 박 시장이 적극 나섰는데?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 규명 노력이 이 정부에서 왜곡되고 탄압되고 제지당했다. 진실을 밝히고 또 유족들을 위로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하는데 박근혜 정부는 오히려 그걸 모독하고 짓밟았다. 그래서 내가 서울시장으로 있는 한 세월호 추모 천막은 확실히 지킨다고 했다.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에 대한 분노도 있지만,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외면한 이 정부에 대한 분노 때문에 시민들이 촛불을 든 측면도 있다고 본다.박사모를 비롯한 보수 단체들이 서울시청 앞 광장을 점거하고 탄핵 기각 농성을 벌이는데?

누구라도 표현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 또 서울시청 앞 광장 주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니 당연히 사용할 수 있다. 문제는 정상적 법 절차에 따라야 하는데 그들은 불법 점거했다. 그 과정에서 폭력을 행사했다. 서울시가 계속 경고하고 있고, 폭력 사태에 대해 고발조치를 했다.폭력 사태도 있었나?

공무원과 시민들한테 욕하고 심지어 손찌검까지 했다. 서울시도서관 등 공공장소에서 밥을 먹기도 했다. 시민들이 시에 항의하는 상황이라 시 차원의 인내에도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광화문 세월호 천막을 철거하면 자신들도 철거하겠다고 하는데?

차이가 분명히 있다. 세월호 추모 천막은 합법적이다. 처음 시작할 때도 중앙정부가 서울시에 요청한 바도 있었고, 서울시로서도 평화로운 활동을 전제로 허가했다. 더구나 서울시청 앞 광장을 점거 중인 보수 단체는 사전신고도 하지 않았다. 훌륭한 보수도 있지만, 지금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벌이는 행태는 극우적이다. ‘계엄령을 선포하라’는 등 이들의 주장은 민주주의 체제가 용인하기 어려운 내용을 담고 있다.

기자명 정희상 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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