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오를 위한 정의(Justice pour Theo)’라는 슬로건이 프랑스 곳곳을 장악했다. 지난여름 노동법 반대 시위에서 연행 중 사망한 청년 ‘아다마 트라오르’ 사건(〈시사IN〉 제474호 ‘프랑스의 전태일, 아다마가 남긴 절규’ 기사 참조)에 이어 다시 한번 공권력 남용에 대한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지난 2월2일 테오 엘이라는 스물두 살 청년은 경찰관 4명에게 폭력과 폭언, 그리고 그중 한 경찰관한테 성폭행을 당했다. 그를 진찰한 의사는 ‘60일간 노동 불능(Incapacite de Travail)’ 판정을 내렸다. 물론 ‘선제공격’에 대한 양쪽의 증언은 다르다.

테오는 친구들과 함께 같은 동네 친구를 만나러 가다가 경찰관들에게 제지당했고, 인종차별적인 폭언을 들었으며, 친구들 중 한 명이 먼저 경찰관에게 뺨을 맞았다고 증언했다. 반대로 경찰관들은 테오와 그들의 무리가 만나려던 친구는 ‘마약 거래’가 의심되어 검문 중인 청년이었으며, 먼저 폭력을 휘두르고 검문을 방해한 것은 테오라고 주장했다.
 

ⓒAFP프랑스 센생드니에서 한 흑인 청년이 경찰관에게 집단 폭행을 당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민심이 들끓고 있다. 2월18일 경찰과 시위대가 대치하고 있는 모습.

얼마 후 프랑스 국립경찰총감사관(IGPN)이 공개한 CCTV에서는 누가 ‘먼저’ 폭력을 행사했는지에 대한 부분은 의문으로 남은 채, 테오가 경찰관 4명에게 둘러싸여 발길질을 당하고 제압되는 모습만 보였다.

여러 경찰관에게 폭력을 당하는 테오의 동영상은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시민들은 경찰의 두 가지 차별에 분노했다. 테오가 살던 지역이 센생드니라는 파리의 외곽, 즉 우범 지역이라는 점과 테오가 흑인 청년이라는 점이다. 외곽 지역이 아니고 흑인이 아니었다면 동영상에 나오듯 공권력(경찰)이 시민을 ‘통제’했을까 하는 회의감을 표출한 것이다. 게다가 테오의 경우 ‘성폭력 피해’까지 더해져 더 큰 반발을 일으켰다.

사건이 발생한 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은 2월8일 시민들은 테오를 지지하는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국회는 이날 경찰의 무기 사용을 줄이고 위협적 대상에만 공격을 가할 수 있게 한 법안을 채택했지만, 법관 등 법조인은 불필요한 법안이라고 비판했다. 국선 변호사 자크 투봉은 오히려 이 법안으로 경찰관들에게 “더 큰 권위 행사의 자유”를 줄 수 있다며 위험성을 강조했다.

2월8일 파리에서 모인 시위대에 이어 2월11일 토요일, 보비니 지역에서 경찰 추산 2000명에 달하는 시위대가 거리로 나섰다. 시위대는 외모만으로 통제 대상을 판단하고 굴욕적으로 대하는 경찰의 차별과 폭력 행위를 비난했다. 2월18일 파리의 레퓌블리크 광장에서는 시민 2300여 명이 “경찰은 어디에나 있으나, 정의는 어디에도 없다”라는 피켓을 들고 시위했다.
 

ⓒAP Photo2월8일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오른쪽)이 테오를 찾아 위로했다.

반인종차별주의 단체인 SOS라시즘(SOS-Racisme), CRAN, MRAP를 비롯해 좌파 대선 후보인 장뤼크 멜랑숑, 세계적인 프랑스 축구선수 릴리앙 튀랑 등 다양한 인사들이 시위에 참여해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도미니크 소포 SOS라시즘 회장은 “테오 사건은 그저 하나의 사회면 기사가 아니라 프랑스가 개선해야 할 경찰 폭력의 구조적 문제다”라고 주장했다. 폭행을 행사한 경찰관 4명은 조사를 받는 중이며 그 가운데 한 명은 ‘강간죄 혐의’가 있다.

수백명에서 시작한 시위는 수천명으로 늘어났다. 시위대 규모뿐 아니라 시위 양상도 강해졌다. 한국 언론이라면 과격 폭력시위로 보도할 정도였다. 시위대는 차에 불을 지르고, 여러 상가에 있는 공용 휴지통을 불태우는 등 폭력적인 시위를 서슴지 않았다. 2월11일 보비니 시위에서는 한 흑인 청년이 화재가 난 차에서 어린 여자아이를 구하기도 했다. 이날 하루에만 시위에 나선 시민 30명이 연행됐다.

이번 사건은 2005년 일어났던 또 하나의 사건을 떠오르게 했다. 테오 사건과 같은 지역에서 일어난 부나 트라오르와 지에드 벤나 사건이다. 두 10대 청년은 경찰에게 쫓기던 중 감전 사고로 사망했다. 당시 총리 도미니크 드빌팽과 내무장관이던 니콜라 사르코지가 두 청년에 대해 ‘도둑으로 의심된다’고 발언하면서 시민들이 분노했다. 시위는 폭동으로 비화했다. 당시 프랑스 정부의 대처에 격분한 시민들의 시위로 1만 대 이상의 차가 불타고, 시위자 4000여 명이 연행되었으며, 세브랑 지역의 버스 안에서 한 여성이 크게 화상을 입는 등 그 영향은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할 정도로 커졌다. 2015년 3월 경찰관 두 명이 청년들의 죽음을 방관한 죄로 법원에 출두했다. 하지만 두 달 뒤인 5월19일 경찰관들은 무죄로 석방되었다.

외곽 지역 부모들 “경찰을 조심하라”

“폭력적 통제는 우리에겐 일상이다.” 테오 사건이 일어난 센생드니 내 올네수부아 지역의 한 주민이 〈르몽드〉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르몽드〉는 이 지역 경찰들이 숱하게 주민들의 휴대전화를 압수하고, 차창 밖으로 인종차별적 발언을 하며, 주민들을 향해 최루가스를 뿌리는 따위로 공권력을 남용했다고 보도했다. 소르본 대학 철학과 학생 앙브르 씨(22)는 “오로지 올네지앵(Aulnaysiens·올네 지역 사람들)만이 이해하는”이라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운영하며 그들이 받아온 인종차별 경험을 알리기도 했다. 그중에는 “경찰을 조심하라”고 아이들에게 교육한다는 부모의 일화도 소개돼 있었다.

2월14일 경찰의 ‘폭력적 통제’ 사례가 또 폭로되었다. 테오 사건이 일어나기 일주일 전 그의 친구 중 한 명인 모하메드가 담배 가게에서 네 경찰관 중 한 명에게 인종차별적 발언과 폭력을 당한 적이 있다고 증언한 것이다. 보비니 지역 검찰은 이 사건에 대해서도 수사를 벌이고 있다.

이 같은 공권력의 일탈이 외곽 지역만의 문제일까? 중앙정부는 책임이 없는가? 앙리 레이 시앙스포 정치연구소장은 “올랑드 대통령은 외곽 지역에 전혀 관심이 없다”라며 대통령의 ‘미발달 지역’ 정책에 대해 비판했다. 올랑드는 후보 시절, 외모로 인한 공권력의 차별이나 통제를 막고, 검문 때마다 증명서를 발급하며, 5년 이상 거주한 이주민에게 지역 선거권을 부여할 것을 약속했다. 검문증명서란 경찰이 신원 확인을 할 때마다 검문 날짜, 장소, 검문 이유를 적은 일종의 영수증을 의미한다. 경찰의 지나친 통제를 줄이고, 어느 지역에서 검문이 많았는지 통계자료로 활용하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이 중 어떠한 공약도 지켜지지 않았다. 테오 사건이 수도 파리까지 번진 데는 이 같은 대통령의 무책임도 한몫했다.

지난 2월8일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테오를 문병했다. 테오는 ‘법에 대한 신뢰’를 언급하며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하지만 대통령의 방문과 테오의 발언에도 시위는 이어졌고 공권력 피해에 대한 추가 폭로가 계속되고 있다. 이른바 ‘세계의 용광로’라는 프랑스에서 매번 터지는 ‘차별’ 관련 문제들은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화합의 어려움을 드러내고 있다.

기자명 파리∙이유경 통신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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